<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12·3 내란사태’ 발발 열하루, 그날의 진실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내란 주도자들의 발뺌은 몇몇의 양심 고백과 폭로, 국회 질의, 검찰·경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속에서 힘을 잃고 역사의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고 있다. 엄정하고 명확한 책임 추궁과 처벌을 통한 재발 방지는 역사 앞에서 더는 부끄러워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이 사태에 누가 어떤 책임이 있는지 온 국민이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모든 사태의 발단은 전두환을 꿈꿨던 윤석열이다.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의 요구를 수용하여 계엄을 해제”했다는 뻔뻔한 거짓말은 한때 같은 배를 탔던 이들의 증언으로 힘을 잃었다. “‘이번 기회에 (정치인들) 싹 다 잡아들여라’고 지시했다”(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끄집어내라고 말했다”(곽종근 특전사령관), “계엄 발령 3시간 전 안가에서 관련 지시사항을 전달받았다”(조지호 경찰청장).
이런 ‘내란 수괴’ 곁에서 내란 계획을 입안하고 실행한 총책임자는 ‘충암파’ 핵심 김용현 전 국방장관(구속)이다.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하고, 선포 뒤엔 현장출동 지휘관들에게 쉴 새 없이 전화를 걸어 작전 진행을 압박한 그는 얼치기 친위쿠데타가 수포로 돌아가자 “중과부적”이란 말을 남겼다. 계엄에 저항한 시민들은 적이었다는 얘기다. 북한 쓰레기풍선 부양 원점을 타격해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려 했다는 의혹도 받는 그는 지난 8일 새벽 홀연히 검찰에 자진 출석하고, 사흘 뒤 수감돼 있던 동부구치소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김용현과 지난 8월 ‘경호처장 공관 회동’한 여인형 방첩사령관(구속영장 청구), 곽종근 특전사령관(직무정지), 이진우 수방사령관(체포)도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로 무거운 처벌이 불가피하다. 지금까지 드러난 상황을 보면, 여인형은 계엄의 전체 그림을 그리고 야당 인사 체포 계획 등을 세운 머리 구실을, 곽종근·이진우는 병력을 동원해 실행에 나선 행동대장 역할을 했다.
세 사령관의 참모와 부하 지휘관들 상당수도 ‘상관 잘못 만난 죄’일지언정 처벌이 불가피하다. 방첩사에선 정성우 1처장(비상계엄 계획 수립)과 김대우 수사단장(체포조 운용)이 직무정지된 상태고, 이경민 참모장, 박성하 기획관리실장, 나승민 신원보안실장, 이창엽 비서실장 등이 수사선상에 올랐다.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로 출동한 특전사 이상현 1공수여단장, 김정근 3공수여단장, 안무성 9공수여단장, 김현태 707특임대장, 김세운 특수작전항공단장, 수방사 김창학 군사경찰단장, 조성현 1경비단장 등도 조사가 진행 중이다.
군에서는 이들 외에도 선관위 등에 병력을 출동시킨 문상호 정보사령관(직무정지), 포고령 발동 주체이자 계엄 해제 뒤 윤석열·김용현과 합참 지하벙커 밀실 회의를 진행한 박안수 계엄사령관(육군참모총장·직무정지)의 정확한 역할도 규명돼야 한다.
12월3일 밤 10시20분께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 선포를 알리는 윤석열 대통령.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경찰에서는 조지호 경찰청장(구속)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구속)이 내란 동원 컨트롤타워 구실을 했다. 이들은 계엄 발령 3시간 전 윤석열로부터 야당 지도자 체포 등을 지시받고, 계엄 발령 뒤엔 국회를 봉쇄하기 위해 경력을 동원했다. 여기에 김준영 경기남부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 오부명 공공안전차장, 주진우 경비부장, 목현태 국회경비대장 등도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절차적으로 계엄 선포를 가능하게 했던 국무회의 참석자들의 책임도 무겁다. 12월3일 밤 10시17~22분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는 한덕수 국무총리,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조태열(외교)·김영호(통일)·박성재(법무·직무정지)·김용현(국방·구속)·이상민(행정안전·사퇴)·송미령(농림축산식품)·조규홍(보건복지)·오영주(중소벤처기업) 장관, 조태용 국정원장이 참석했다.
한 총리와 박성재 장관은 11일 국회에서 “ 국무위원 전원이 반대 의사를 밝혔고 윤 대통령의 계엄 의지를 (꺾도록)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계엄에) 찬성한 사람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앞서 5일 이상민 장관은 “반대라는 표현을 쓴 분 자체는 두어명 ”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부부처 고위 관계자도 한겨레에 ‘최상목, 조태열, 조규홍 장관이 반대 뜻을 밝혔다’고 증언했다. 결국 비겁한 침묵을 이제 와서 ‘반대’ 또는 ‘찬성하지 않았다’로 포장한 이들이 다수였던 셈인데, 이들에게 내란방조죄를 적용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이 가운데 박성재·이상민은 계엄 이튿날 저녁 서울 삼청동 안가에서 김주현 민정수석, 이완규 법제처장과 회동했다.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라는 초유의 상황에, 검찰과 경찰을 관할하는 부처 장관과 대통령실 핵심 참모, 윤석열의 ‘찐친’ 등 4인방이 모였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기에, 이날 모임의 목적이나 배경 등도 규명이 필요하다.
정치인 가운데서는 4일 새벽 국회 계엄해제 요구안 결의 때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표결 연기를 요청하고, 여당 의원들을 국회가 아닌 당사로 모이도록 한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수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윤석열 탄핵 촉구’ 경희학원 구성원 평화행진이 열린 12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청운관 들머리에서 경희대학교·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연구자·학생들이 2차 시국선언을 마치고 청량리역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실시간 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