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양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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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분열은 엄청난 에너지를 만든다. 원자폭탄이 그 결과물이다. 한순간에 도시 하나를 잿더미로 만들 만큼의 엄청난 힘이다. 그 힘의 원리는 연쇄반응에 있다. 하나의 분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핵이 분열하면서 튀어나온 2개 이상의 중성자가 그 옆에 있는 핵을 분열시키면서 핵분열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생한다.
인간의 사회적 현상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에 의해 시작된 분열의 변화는 연쇄반응을 통해서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과거 수렵·채집 시기에 사람이 흩어져 이동하면서 살았을 때는 이런 연쇄반응이 없었다. 옆에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인류는 도시를 만들고 모여서 살고 있다. 마치 고농축 우라늄 상태를 만든 것과 같다. 이런 상태에서 하나의 핵분열은 엄청난 연쇄반응을 만든다. 그래서 인류사에 각종 사회적 혁명은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가 만들어졌을 때 일어났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은 인구밀도가 높은 파리라는 대도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나라도 1987년의 6월 항쟁은 아파트로 만든 고밀화된 대도시 서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러한 혁명은 사회적 원자폭탄이라 할 수 있다. 폭발력이 세상을 더 좋게 바꾸기도 하고 파괴하기도 한다. 어느 사회에서는 대통령 직선제 같은 민주화의 성과를 이루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문화 대혁명 같은 광기의 파괴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렇듯 제어되지 못한 사회적 원자폭탄은 명암이 있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오픈된 공간에서 광기에 휘둘리기 쉬운 대중은 보통 명(明)보다는 암(暗)을 더 많이 만들어 낸다. 히틀러의 등장, 마녀사냥, 인민재판 등이 그 예다. 그래서 인간은 이러한 위험성 높은 에너지를 한 공간에 가두고 제어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인간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핵분열 에너지를 제어하기 위해 원자력발전소를 만들었다. 거대한 콘크리트 돔을 만들고 그 안에서 핵분열의 연쇄반응을 방지하기 위해 제어봉을 만들었다. 보통 카드뮴으로 만들어진 제어봉은 중성자를 흡수해서 연쇄 작용을 제어한다. 덕분에 우리는 원자력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다. 쉽게 흥분해 연쇄반응하는 대중의 파괴적 사회 에너지를 조절하기 위한 건축 공간을 만들었다. 인류 초기에는 지구라트 신전이나 피라미드 같은 구심점이 되는 건축물을 통해 사람을 한 장소에 모으는 일을 했다. 그렇게 도시를 만들었다. 마치 우라늄을 농축하는 일과 같다. 이후에는 도시 사회를 제어하기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원형극장 같은 공간이다.
고대의 지구라트나 피라미드가 오픈되어 있는 공간이라면 원형극장은 사람을 내부로 모을 수 있는 공간이다. 로마 시대에 이르러서는 천막 지붕이 있는 콜로세움을 만들었다. 콜로세움에서 로마 시민은 격한 감정과 흥분의 상태가 된다. 하지만 그런 광기는 콜로세움 안에서 제어된다. 수백 년이 흘러서 이스탄불의 ‘하기아 소피아’ 같은 거대한 실내 교회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실내 공간에서 사회적 에너지는 통제되고 선용(善用)될 수 있었다. 런던에는 하이드파크라는 도심형 공원도 만들었다. 도시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이드파크나 콜로세움 같은 공간은 원자력발전소의 카드뮴 제어봉 같은 역할을 한다. 높은 인구밀도 사회의 스트레스를 줄여서 연쇄반응을 제어하는 장치다.
대한민국 현대사회에서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는 야구장이나 공연장들도 그러한 장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사회적 에너지를 통제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는 국회의사당이다. 만약에 국회의사당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길거리에서 시위를 통해서 정치적 결정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명화된 우리는 투표를 통해 국회의사당이라는 제어된 실내 공간에서 정치적 결정을 할 수 있게 됐다. 국회 본회장에서 의장은 발언을 제지하거나 결정을 내리거나 주의를 끌거나 회의 질서를 유지할 때 의사봉을 두드린다. 국회의장의 의사봉은 원자력발전소의 카드뮴 제어봉과 같다.
그러나 이러한 제어된 공간이 깨지면 사회는 다시 광기의 핵분열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기존에는 국회의사당에서 자기 의사를 관철하지 못하는 소수 야당이 제어된 국회 공간을 깨고 길거리로 나와서 시위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소수 여당이 국회 내에서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하지 못하자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는 일이 생겨났다. 이는 원자력발전소를 깨뜨리는 행위다.
이제 제어되지 못한 핵분열이 국회 공간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특수한 경우에 계엄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명확한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계엄 선포는 잘못된 일이다. 힘들어도 오랜 시간이 걸려도 참고 국회의사당 공간 안에서 문제를 풀었어야 했다. 그게 민주주의다. 깨진 원자력발전소가 어떤 재난을 일으키는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봐서 알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앞으로 일상 공간에서 핵분열의 연쇄반응과 혐오라는 방사능에 오염되는 상황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불과 몇 년 전에도 그런 경험을 해봐서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안다. 어떻게든 빠르게 이 방사능 가득한 핵분열을 국회 공간 안으로 담아내야 한다.
소련의 붕괴 후 지난 30년은 세계가 점점 하나 되고 번영하는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가 다시 분열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 이스라엘과 이란의 갈등이 진정되지 않고 있다. 중국 대만 갈등과 불안정한 북한 김정은 정권까지 극동 아시아는 그 어느 때보다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강력해진 중국은 우리나라의 정치적 주권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게다가 가장 강력한 변화인 기후변화까지. 이 폭풍 속에서 조각배 같은 대한민국 내부에 큰 혼란이 일어났다. 배가 난파되기 전에 빠르게 수습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한 이성의 상태로 전후좌우 상황을 제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원자로에는 반드시 냉각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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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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