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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 (금)

[사설]끝없는 망상과 자기부정, 尹 직무배제 한시가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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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과 거짓, 궤변과 억지

남탓과 회피, 망발과 선동

동아일보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2024.12.12.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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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2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에서 제기하는 조기 하야 등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을 거부하고 탄핵 심판과 수사 과정에서 법적 다툼을 벌이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내란죄 수사와 국회 탄핵소추에 대해 “광란의 칼춤”이라고 주장했고, 12·3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서도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 행위”라고 강변했다.

윤 대통령의 29분짜리 담화는 그가 사로잡혀 있는 망상의 끝이 과연 어디인지 다시 한번 고개를 젓게 만든다. 윤 대통령은 헌법기관인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에 총을 든 군대를 보내 침탈하려 한 데 대한 반성과 사과는커녕 시종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억지 주장을 폈다. “도대체 2시간짜리 내란이라는 게 있느냐” “소수 병력을 잠시 투입한 것이 폭동이란 말이냐”고 되묻는 국정 최고책임자의 위험한 인식에선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윤 대통령은 담화 내내 야당에 모든 책임을 돌리며 궤변과 거짓, 변명, 선동적 언사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데 급급했다. 잇단 탄핵소추와 특검 발의, 간첩죄 수정 반대, 대북 편향성, 예산 삭감까지 끌어올 수 있는 이유란 이유는 죄다 들며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반국가세력 아니냐”고 했다. 나아가 “그간 차마 밝히지 못했던 더 심각한 일”이라며 극우 유튜버들이 주장하는 부정선거 음모론까지 꺼내들었다. 선관위가 반박한 대로 ‘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선거관리 시스템에 대한 자기부정’이 아닐 수 없다.

거대 야당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소수파 대통령은 윤 대통령만이 아니었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에선 다 벌어지는 일이다. 대통령은 그걸 감당해야 하고 민심의 결정에 순응해 대화하고 타협하고 인내해야 한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군대를 동원했다. 눈앞의 정치적 난관을 일거에 해소하려 과거 독재자들이나 했던 망동을 벌인 것이다. 그러고도 윤 대통령은 “병력을 국회에 투입한 이유는 거대 야당의 망국적 행태를 상징적으로 알리고 국회 관계자와 시민들이 대거 몰릴 것을 대비해 질서 유지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둘러댔다.

윤 대통령은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은 얘기하지 않았다. 국회의장과 여당 대표를 포함한 주요 정치인 체포와 구금을 지시했고, 본회의장의 의원들을 끄집어내라고 지시했다는 계엄 사태 가담자들의 핵심 증언에 관해선 일절 언급을 회피했다. 궁극적으로 그런 극단적 행위의 원인은 자신과 가족이 직면한 정치적 사법적 위기, 그에 따른 절박감 때문이었을 텐데 그에 관해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오직 ‘나라를 살리려는 비상 조치’라고 포장했을 뿐이다.

윤 대통령은 닷새 전 국회의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낸 2분짜리 담화에서 “매우 송구스럽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며 고개를 숙인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엔 “짧은 시간이지만 이번 계엄으로 놀라고 불안하셨을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만 했다. 국가적 위상을 땅에 떨어뜨리고 국민을 경제 위기와 사회 불안에 빠뜨려 놓고도 ‘짧은 시간 놀라게 한 죄’밖에는 없다는 후안무치에 거듭 혀를 찰 수밖에 없다. 여당이 그런 ‘1호 당원’에게 등을 돌릴 수밖에 없는, 야당이 “극우 세력의 소요를 선동한 것”이라고 분격하는 이유일 것이다.

지난 열흘 동안 윤 대통령은 스스로 위험한 권력자의 본색을 드러냈다. 망상에 빠진 지도자가 어처구니없는 망동을 벌이고도 버젓이 망발을 일삼는 믿기 어려운 현실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자진 사퇴를 통해 최소한의 명예라도 지킬 것이라는 일각의 기대마저 끝내 저버렸다. 이미 모든 기회를 잃고도 “끝까지 싸우겠다”는 벌거벗은 임금님을 이젠 법적 절차에 따라 끌어내는 수밖에 없다. 한시라도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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