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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 (금)

[루페로 보는 시선]희망은 있다, 연대하는 마음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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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계엄령, 파리의 테러

경향신문

파리 테러 다음날, 희생자를 추모하는 광장에서 무슬림 여성의 손을 잡아주는 추모자의 모습. ⓒ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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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 유니버스 세계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계엄령이 떨어졌고, 무장군인들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로 진입했다. 군인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잠입해 서버를 확인했다. 소식을 재빠르게 접한 시민들이 입구를 봉쇄한 군인들과 대치했고, 야당 국회의원들은 담을 넘어 국회로 들어갔다. 국회 본회의장을 지키기 위해 몸싸움이 벌어졌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며 계엄령이 해제되었다.

며칠 후, 화가 난 국민들이 국회의사당으로 모여 대통령 탄핵안 지지 시위를 벌였다. 대통령 탄핵안이 발의되었지만, 여당 의원들은 표결을 거부하고 본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같은 날, 폭력이 넘치는 세계에서 사랑과 양심을 말하던 작가는 이국땅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에 답하는 연설을 했다. 이 모든 사건이 고작 일주일 안에 일어났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표결권을 버리고 여당 의원들이 줄 지어 본회의장을 나가는 모습이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이다. 권력의 대리자인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자리를 털고 일어나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이보다 더 폭력적인 장면은 당분간 없을 것 같았다. 영하의 날씨에 국회의사당을 에워싼 국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개인의 안위와 권력을 위하는 이들의 날것의 모습. 국회의장이 처참한 표정으로 안건이 폐기되었음을 외쳤다. 희망이 있을까.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이렇게 혼탁한데.

그러나 그럼에도 국회의사당에 모인 이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주변을 정리했다. 집회 현장에 참석하지 못한 이들은 차와 음식을 선결제하고 추웠을 이들의 배를 채워주었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선 젊은이들. 이들은 오래된 민중가요 리듬에 맞춰서 응원봉의 불을 켜주었다. 희망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 서로에게 연대하는 마음에 있다.

10년 전 11월, 테러가 터진 파리 시내를 기억한다. 무슬림계 조직원들에 의해 6곳에 테러가 발생했고, 한 군데는 내가 머물던 곳 바로 옆이었다. 다음날 꽃을 사들고 불에 탄 레스토랑을 찾았다. 레퓌블리크 광장에도 꽃과 초, 편지가 가득했다. 그 순간 내 시야에 들어온 한 장면. 곱게 차려입은 여성이 무슬림계 여성의 손을 잡고 괜찮은지 묻고 있었다. 포용과 이해, 그리고 먼저 내미는 손. 희망은 작지만, 단단하다. 그때에도, 지금도.

레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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