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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태 | 전 헌법재판관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일 밤 10시28분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는 계엄 선포의 이유로 ‘민주당의 입법 독재는 자유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서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라는 점 등을 들었다. 그러나 이 계엄은 선포 후 3시간가량 뒤 국회가 본회의를 열어 참석한 여야 의원 190명의 만장일치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함에 따라 효력을 잃었다. 윤 대통령은 새벽 4시27분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수용해 계엄을 해제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곧이어 열린 국무회의를 통해 해제됨으로써 한밤중의 비상계엄은 종료되었다.
이 비상계엄은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계엄 얘기는 최근 풍문으로 떠돌기는 하였으나, 현실에서 실제 상황이 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같다. 헌법 77조는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1항)고 정하고 있고,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3항)고 정하고 있다. 즉 비상계엄은 전시 등과 같은 비상 상황하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정치·경제·사회 등 국가 활동 전반을 군의 통제하에 둠으로써, 국가 위기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인 것이다.
현재까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당시 우리 사회가 군사상의 필요가 있다거나 군에 공공의 안녕질서 유지를 맡겨야 할 정도로 위기에 처해 있었다고 보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보도에 의하면, 윤 대통령은 계엄 해제 당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을 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민주당의 폭거에 맞서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비상계엄 선포밖에 없었다”고 계엄 선포 배경을 설명했다고 한다. 이 설명은 이번 계엄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고 하는 헌법적 요건을 결여하고 있음을 자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국회에서 해야 할 일을 군의 힘을 통해 강제로 풀려고 했거나, 계엄을 통해 국회를 제압하려고 했다는 말이 된다.
국회는 야당 발의로 지난 7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본회의에 회부하였다. 이 안은 여당인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표결 직전에 퇴장함으로써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의안 불성립으로 부결되었다. 탄핵소추가 부결된 직후 윤 대통령은 담화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이번 계엄 선포와 관련하여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 ‘임기 문제를 포함하여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국민의 힘에 일임하겠으며, 향후 국정 운영은 국민의힘과 정부가 함께 책임지고 해나가겠다’는 것이었다. 그가 말한 ‘법적·정치적 책임’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어떤 방식과 절차를 거쳐 언제까지 그 책임을 이행하겠다는 말은 없었다.
다음날 국민의힘 당사에서 한동훈 대표와 한덕수 총리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회견 내용의 요지는 윤 대통령의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을 위해 당과 정부가 협력하여 정부를 꾸려간다는 것이었다. 한 대표는 질서 있는 대통령 조기 퇴진으로 국민들의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안정적으로 정국을 수습하겠으며, 퇴진 전이라도 대통령은 외교 포함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헌법상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71조)할 뿐이고, 탄핵에 의하지 않는 한 그 직무가 정지되지 않는다. 따라서 헌법이 정한 사유가 아니면 그 누구도 대통령을 대신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고, 직무를 넘겨줄 수도 없다. 설사 그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대통령 본인이 사후 이를 부인하면 그만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정국 안정 방안을 당에 일임하였다’는 내용은 문제가 있고, 대통령에 의하여 언제든지 백지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질서 있는 퇴진론’이 위헌적 요소로 비판을 받는 중에, 돌연 윤 대통령은 재차 이번 비상계엄이 정당하다는 취지의 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거대 야당이 지배하는 국회가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괴물’이 되었으며, ‘대한민국을 간첩 천국, 마약 소굴, 조폭 나라로 만들려는 반국가 세력’이라고 지칭했다. 그는 특히 군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진입한 이유는 헌법기관으로서 강제수사가 불가능한 선관위가 정부의 개선 요구를 거부하므로 이를 바로잡기 위한 목적에서 선관위 전산시스템을 점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윤 대통령의 이 담화는 법적·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는 앞서의 입장을 번복한 것처럼 보인다.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을 반복해온 한동훈 대표도 위 담화 직후 ‘탄핵 절차로써 대통령의 직무집행을 조속히 정리, 정지해야 한다’며 ‘우리 당은 당론으로 탄핵에 찬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현재 내란죄 등의 형사 피의자로 입건되었으며, 출국금지 조치가 되었다. 그에 대한 탄핵이 한번 부결되었으나, 곧 두번째 탄핵이 시작될 예정이다. 한동훈 대표가 탄핵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번에는 탄핵 표결에 출석한다는 여당 의원들도 있어 결과를 속단하기 어렵다. 더구나 이번 담화는 윤 대통령의 판단 능력에 심각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 돌출적인 그의 행위로 인한 국가적 위험을 완화할 조처가 필요한 듯하다. 특히 헌법기관인 선관위에 대하여 군을 동원하고자 한 행위가 그렇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자진 사퇴를 권유해야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의 퇴진을 기약 없이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 기회를 놓치기 전에 시급히 그를 체포하여 수사하고, 그의 직무를 정지시키기 위한 탄핵이 필요하다. 사안의 절박성에 비추어 이는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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