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투데이 최지현 기자 =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때 이야기다. 어느 날 시종들이 다 함께 '뱀 먼저 그리기' 시합을 겨뤘다. 얼마 후 가장 먼저 뱀을 완성한 시종이 그림을 내놓으며 본인이 우승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를 본 또 다른 시종은 말했다. "그건 뱀이라고 할 수 없소. 뱀에 다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완성된 뱀에는 다리가 달려 있었다. 즉, 쓸데없는 다리를 덧붙여 그림을 망친 것이다. 화사첨족(畵蛇添足). 군더더기를 덧붙여 잘 돼가던 일도 망치는 일, 사족의 본딧말이다.
최근 어수선한 정국을 바라보는 기업들의 생각은 "정치가 기업경영에 사족을 달았다"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도 몸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큰 사족을 정치가 기업들에 붙여놨다고 토로한다.
지금 기업들의 속은 부글부글 끓을 태세다. 당장 환율부터가 그렇다. 정치적 불확실성은 원·달러 환율을 가장 먼저 끌어올린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원·달러 환율은 순식간에 20원 이상 급등하며 1440원대를 찍었다. 상승폭은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킨 뒤에서야 줄었지만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한때 1400원만 넘어도 비상이었던 외환 당국의 심리적 지지선은 1450원까지 상향 조정됐다. '1500원대 환율 시대'가 열릴지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떠도는 게 작금의 상황이다.
치솟는 환율은 기업들의 실적과 재무구조에 엄청난 타격을 가하는 중이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해외 각지에 공장을 운영하고, 수백수천 명의 현지 인력을 고용하고 있는 제조사들은 특히 더 그렇다. '환율 불안'이란 유탄을 맞은 이들 기업들은 당장 내년 사업계획을 어찌 짜야할 지 모르겠다고 아우성이다. 가뜩이나 중동발(發) 위기, 우크라이나 전쟁, 원자재 가격 상승, 트럼피즘 등 복합 위기가 닥친 마당에 정치가 환율 방어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복마전(伏魔殿)을 만들어놨으니 아예 할 말을 잃은 모습이다.
문제는 이 혼란스런 상황이 쉬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국은행이 환율 안정을 위해 외환시장 개입과 국민연금·외환스와프 거래를 포함한 다양한 대응책을 가동하고 있지만 기업들 불안을 달랠 정도는 아니다. 이미 한국을 바라보는 국제 시선은 이번 사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결국 환율 대응도 기업들이 알아서 해야 할 상황이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높은 환율에 감당못할 정도로 치솟는 자재값을 언제까지 기업만의 힘으론 버틸 수 있겠는가.
1995년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기업은 2류, 정치는 4류"라고 일갈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 말은 틀렸다. 정치는 4류가 아닌 5류나 6류에도 못 미친다. 엎지러진 물 주워담기이지만, 그럼에도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다. 그것이 화사첨족을 자초한 정치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그것만이 기업의 희생을 최소화할 길이다. 정치가 기업을 돕기는 커녕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아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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