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음모론 경도 우려에도 국민의힘 방관
"싸우겠다"는 尹... 여당 중진은 "곱씹어보자" 호응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2022년 7월 26일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당대표 직무대행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정부질문 도중 휴대폰으로 이준석 대표 중징계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과 텔레그램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다. 메시지 입력창에는 강모 선임행정관의 이름이 입력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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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의 이 한마디는 큰 호응을 얻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5년, 43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비정규직 비율은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구조조정 칼날을 피해 하루하루를 견디던 이들에게 이 질문은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를 돌아보게 했다. ‘내가 경제를 살릴 적임자’, ‘좀 더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하나마나 한 말을 쏟아내던 유력 정치인들과 대비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살림살이 나아졌냐”를 올 대선 시작 첫 메시지로 택했다. 경제는 나아지는데 가계는 힘들어지는 ‘경제 호황의 역설’에 시름하던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필수 생활비·돌봄 비용 급등, 주거 빈곤 확대 탓에 빈곤층이 아니지만 생계 곤란을 겪고 있는 ‘앨리스’(ALICE) 계층이 30%에 육박하던 바이든 정부를 비판한 것이다. 트럼프는 집권 1기 때 50년 이래 실업률 최저치(3.9%)를 기록했고, 임금소득 증가율은 8.4%로 높았다. 소득하위 50% 가구 순자산 증가율은 47%로, 상위 1% 증가율의 3배가 넘었다.
□그런 트럼프도 신념에 찬 정책만큼은 위법행위도 마다하지 않고 폭주했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건 ‘직을 걸고’ 멈춰 세운 참모와 관료, ‘어른들의 축’ 덕이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취임 초 북한을 선제 타격해 한반도를 불바다로 만들려던 트럼프를 막아 세웠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트럼프가 조지 플로이드 사망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연방군을 투입해 진압하려 하자 “권력 남용”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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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위헌적 비상계엄으로 자멸했지만, 몰락을 재촉한 건 여당과 내각이다. 여권 인사 가운데 집권 초부터 부인 김건희 여사의 국정 개입을, ‘명박사’ 같은 비선 실세의 존재를, 음모론에 심취한 대통령 문제를 몰랐다고 부인할 이가 있나.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끝까지 싸우겠다"는 윤 대통령 담화에 "모두 곱씹어보자"며 호응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27년, 다시 위기 경고등이 켜졌다. ‘살림살이 나아졌냐’는 질문은 사치다. 국민은 이제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라고 물어야 할 처지다.
이동현 논설위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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