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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목)

낙관주의자들의 尹 정부: 국민을 비관주의자로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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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연 기자]

수출만 살아나면 아무 문제 없을 거라던 대통령. 부자들에게 감세효과가 집중됐지만, 부자감세는 아니라던 현 경제부총리. 상반기엔 '상저하고上低下高'를, 하반기엔 내년 '상고하저上高下低'를 외치던 초대 경제부총리. 최저임금을 차등적으로 내리자던 중앙은행장. 이들이 모여 '오늘 아니면 내일' 식의 낙관적 경제정책을 쏟아냈다. 그럴수록 국민들의 비관은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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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9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차 경제이슈점검회의에 윤석열 정부 경제팀이 모두 모여있다.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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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경제는 지난 2년 7개월간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들이 운영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팬데믹 이후 반등하지 못한 우리 경제가 수출 하나만 잘되면 문제없을 거라고 말해왔다. 대통령은 실질임금이 2022·2023년 이태 연속 줄고, 소비 지표인 소매판매는 올해 3분기까지 무려 2년 6개월(10분기) 연속해서 감소했지만, 수출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고 믿었다.

수출은 살아났다. 대기업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4분기 3.39%에서 올해 1분기 5.70%, 2분기 6.64%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런데 기업들은 이익 증가분만큼 임금을 올리는 대신 희망퇴직을 늘렸다. 올해 하반기 20대그룹 중 8개 그룹이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올해 실질임금이 3년 만에 전년 대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희망퇴직자가 대거 발생하면 소비심리 위축으로 내수는 살아나기 힘들다.

윤 대통령의 또 다른 경제관은 이른바 낙수효과(Trickle down)였다. 윤 대통령은 올해 1월 10일 "우리는 '(돈이) 있는 사람들한테 더 세금을 뜯어내야지' 하는데 그게 중산층과 서민을 죽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올해 1월 17일에는 "대주주는 주가가 너무 올라가면 상속세를 어마어마하게 물게 된다"면서 부자들 상속세를 깎아주면 한국 증시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결될 거라고 주장했다.

대통령 본인,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수석,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돌아가면서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를 집요하게 주장했고, 관련 증여·상속세법 개정안도 국회에 제출했다.

이 개정안은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지난해 상속세를 낸 사람 수는 자산 규모 상위 0.03%인 1만8282명이었는데, 상속세 최고세율을 적용받은 건 그중에서도 16.3%인 2983명에 불과했다. 이들의 상속세를 줄여주면 어떤 경로로 증시가 살아난다는 것인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낙수효과는 제대로 된 경제 이론이 아니다. 단 한명의 경제학자도 이를 증명하거나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처방처럼 이는 농담에 가까운 말이다. 실제로 1930년대 미국에서 '낙수효과'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당시 정치 풍자글을 쓰던 윌 로저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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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스는 부자감세를 비판하면서 "후버 대통령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흘러내리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돈을 맨 꼭대기(부자)에 퍼부었다"며 "후버는 엔지니어 출신이어서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린다는 것을 잘 안다"고 꼬집었다.

내수를 따로 챙기지 않아도 수출만 잘 되면 그만이고, 증시 부양책으로는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만 한 게 없다니, 이 얼마나 낙관적인 대통령인가. 그런데 윤 대통령의 경제사령탑들도 한결같은 낙관주의자들이었다.

윤석열 정부 초대 경제사령탑인 추경호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상반기에는 '하반기면 틀림없이 경제가 살아날 것(상저하고)'이라고 말했고, 하반기가 되면 다시 '내년 상반기에는 꼭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말해왔다. 최상목 부총리는 대기업과 부자들 위주로 세금을 깎아주거나 면제해 주면서, 부자감세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최 부총리는 지난 6월 기재부 업무보고에서 '부자감세로 세수 결손이 심화했다'는 지적에 "부자들을 위한 감세라는 뜻으로 이해되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며 "법인세가 별로 좋지 않지만, 내년도에는 회복세가 반영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6월 '최저임금 차등화'가 필요하다면서 사실상 최저임금 인하를 주장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두고도 "가사도우미를 사적계약을 통해서 데려오면 최저임금제를 적용받지 않아 위법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세계적으로도 최저임금을 인하한 경우는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던 2012년 그리스가 유일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보고서를 내고 "(시대를) 사실상 역행해 지불능력 등을 이유로 최저임금을 더 낮추는 방향의 차등적용 논의는 최저임금 제도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의 낙관은 끝이 없었다. 금리인하와 관치官治가 세트로 등장했다. 부동산 가격이 다시 급등했는데도, 기준금리는 일단 내리고, 관치로 가계대출 금리만 높이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넘는 일이 자주 발생해 시장에 동요가 커지자 '이제 1400원대가 뉴노멀'이라는 이상한 논리까지 꺼내놨다.

근거는 없지만 어쨌든 환율이 1400원이 넘어도 괜찮고(최상목 부총리), 예산이 부족하면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을 써도 '발권력'으로 환율 방어를 하면 된다(이창용 총재)는 낙관은 정말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는 걸까. [※참고: 외국환평형기금채권(foreign exchange stabilization bond)은 환율변동에 대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가 발행하고 보증하는 채권(국채)을 말한다. 약칭 외평채라고도 한다.]

경제학자들은 경제 관료들의 낙관주의가 경제를 망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후생경제학을 창시한 아서 피구는 "경기순환은 경제 주체가 미래의 경제 발전을 예측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2018년 발표한 '과도한 낙관주의의 거시경제적 결과'라는 보고서에서 "성장 예측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국가일수록 경기침체나 재정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보는 정보가 많을수록 공공 및 민간 부채가 증가하지만 훗날 소득이 그만큼 증가하지 않으면 경제에 부정적인 결과가 나온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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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목 부총리가 10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경제정책 의 운영 방향을 의제로 화상 면담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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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하자 최상목 부총리는 지난 4일 블룸버그TV에 출연해 "비상계엄 사태에도 금융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며 "우리는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잘 해결해 온 경험이 있다"고 여전히 낙관적인 모습을 보였다.

우리에겐 익숙한 모습이지만, 외신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다. 미국 외교 전문지 더디플로맷은 지난 10일 '한국 대통령의 탄핵 지연으로 발생하는 경제 비용'이라는 기사에서 "한국 경제사령탑인 최 부총리의 진단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디플로맷은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의 계엄령 선포 후 3일 동안 10억 달러 이상 주식을 팔았고, 이런 추세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윤 대통령의 탄핵 절차가 빨라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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