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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목)

[최병일의 이코노믹스] 분열의 정치로는 ‘트럼프 스톰’ 막아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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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앞에 다가온 트럼프 2기 출범, 혼돈 속 한국



중앙일보

최병일 이화여대 명예교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휘두르는 관세 채찍의 공포가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추수감사절 연휴를 보내고 있는 트럼프의 플로리다 마러라고 자택으로 날아갔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보내려는 편지를 텔레비전 중계로 공개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첫날인 내년 1월20일 멕시코와 캐나다에는 관세 25%, 중국에는 자신이 공약한 추가 관세에 10%의 관세를 더 부과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하겠다는 예고가 불러온 파장이다.



트럼프, 마약·불법이민 풀려

캐나다·멕시코에 관세 위협

경제·안보 전략 연계할 미국에

국익 지킬 초당적 노력 필요해

정국 혼란에 위기 대처 어려워

정치 불확실성 최소화 방안 절실

관세 부과 이유가 ‘무역수지’와 ‘일자리’가 아니라는 것이 눈길을 끈다. 트럼프는 멕시코와 캐나다 국경을 통해 유입되는 이민자들이 범죄와 마약 문제를 일으킨다고 주장하고, 멕시코 정부와 캐나다 정부에게 이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는 관세 채찍을 맞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트뤼도 총리는 트럼프가 관세 폭탄을 예고한 바로 그날 트럼프와 통화했고, 며칠 후 플로리다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세상이 다 아는 견원지간인 트럼프에게 자신의 정치생명을 구하기 위해 트뤼도는 바짝 몸을 낮추는 수모를 감수했다. “그렇게 관세가 무서우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든지”라는 섬뜩한 농담까지 받아내야 했다. 12월 초 멕시코 정부는 불법으로 미국 국경을 넘어가려던 이민자 5000여명 체포, 역대 최대 규모 펜타닐 단속 사실을 공개했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 위협’ 후 정확히 일주일 만이다.

중앙일보

차준홍 기자


관세 폭탄 으름장만으로도 트럼프는 자신의 핵심 공약이었던 불법이민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트럼프 2기’가 펼칠 세상의 예고편이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미국과 국경을 접하는 이웃 국가이며 최대의 무역상대국이다. 1990년대 초반 ‘미국-캐나다-멕시코 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로 공동경제권이 탄생했다. 미국의 자동차 기업은 멕시코와 캐나다로 공급망을 확장했다. 자유무역협정(FTA)의 혜택을 노리고 세계 최대의 미국 소비자 시장을 겨냥한 외국기업의 투자가 임금이 싼 멕시코로 몰려들었다.

트럼프 1기 때 NAFTA가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트럼프의 압박에 견디다 못해 미국에 유리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으로 거듭났다. 기존의 협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신이 재협상해 체결했던 국가간 협정도 트럼프는 필요하면 얼마든지 무시할 태세다. 25% 관세가 USMCA 위반이라는 반박에 그의 충성스러운 관료들은 어떤 명분이라도 만들어 낼 뻔뻔함을 가지고 있다.

관세, 트럼프 대외 정책의 핵심 수단

트럼프의 귀환은 ‘관세맨(Tariff Man)’의 귀환이다. 그가 선거 유세에서 내걸었던 10~20% 보편관세, 중국을 겨냥한 60% 관세에 대해 사람들은 “협상용”“진심”이라며 저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세상의 이런 논란과 혼동을 트럼프는 즐긴다. 그는 이런 상황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데 활용한다. 트럼프는 끝날 때까지 상대방이 자신의 게임에 끌려왔다는 인상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어한다. 4년 만에 백악관에 귀환하는 트럼프의 첫 번째 관세 폭탄이 멕시코와 캐나다로 향할 것을 예상한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이민과 마약을 핑계로 삼을 것을 내다 볼 수 있었을까.

중앙일보

차준홍 기자


미국의 달러 패권 유지를 위해서도 트럼프는 관세 폭탄을 발사할 준비가 되어 있다. 최근 그는 중국·인도·브라질 등 비서구 거대경제국 연합체인 브릭스(BRICS)를 겨냥해 관세 부과를 경고했다. “새로운 브릭스 통화를 만들거나 미국 달러를 대체할 다른 통화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 그렇지 않으면 100% 관세에 직면할 것”이라는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트럼프는 어디로 튈 줄 모르는 풋볼 공과 같다. 트럼프 자체가 불확실성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관세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추구하는 트럼프 대외 정책의 핵심수단일 것이라는 점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보조금을 내건 미국 투자 유인정책을 트럼프는 맹비난했다. 유세 기간 내내 관세 채찍을 휘두르면 관세 수입이 증대할 것이고, 관세 채찍이 두려우면 외국 기업이 미국에 투자해서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공언했다. 11월말 서울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미국 측 참가자는 “관세 장벽으로 요새화하는 미국에 투자하는 것이 한국이 살 길”이라고 트럼프 손을 들어 줬다. 바야흐로 ‘닥치고 투자’의 시대가 열리는 것인가.

대통령 당선인으로 신분이 바뀐 첫 번째 관세 관련 언급에서 트럼프는 관세를 이민과 마약문제 해결 수단으로 변신시켰다. 이쯤 되면 “관세는 영어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는 그의 관세 예찬론은 허풍이 아니다. 재무장관으로 지명된 스콧 베센트 역시 관세를 협상 무기로 활용해 미국에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하고 중국의 안보 위협에 대응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로 낙점된 제이미슨 그리어도 관세 채찍의 신봉자다.

방위비 증가와 기업 보조금 삭감 우려

파격적인 방위비 증가와 대미 무역흑자 해소, 보조금 약속을 믿고 급증했던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분야 투자에 대한 보조금 폐지·삭감 등 트럼프 스톰이 한국을 향해 몰려오고 있다. 트럼프 2기의 협상은 과거처럼 분야별 협상이 아닌 이질적인 분야가 연계된 협상을 예고하고 있다. 그들과 협상해야 할 한국은 어떤 협상 능력이 있는가. 트럼프는 경제와 안보를 거리낌없이 마음대로 연계하는 전략을 구사하는데, 한국은 어떤 준비가 되어 있는가.

중앙일보

차준홍 기자


몰려오는 트럼프 스톰에 대해 차분하고 냉정한 대처나 내줄 것은 내주고 원하는 것을 받아내자는 등의 여러 조언은 넘쳐난다. 상황에 따라 일리 있고 적절한 조언이지만, 강자만을 상대로 인정하는 트럼프의 태도와 변덕스러움, 연속되는 불확실성 속에서 국익을 지키고 확보하려면 관건은 국내 정치다.

극단적인 정치적 대립에도 미국의 공화·민주 양당은 “중국은 미국 안보와 경제의 최대 위협”이라는 합의를 형성했다. 공화당 트럼프가 쏘아 올린 중국을 향한 관세 폭탄을 민주당 바이든은 그대로 유지했다. 트럼프가 시작한 중국의 기술굴기 봉쇄를 바이든은 더 세밀하고 정교하게 정밀타격했다. 트럼프 2기는 그 연속선 상에서 시작한다. 미·중 패권경쟁이 중반전으로 치닫는 지정학의 충돌은 이념과 국경을 초월한 세계화 시대를 역사의 저편으로 밀어내고 있다. 그 충돌의 단층선에 한국이 서 있다. 한국을 선진 경제 강국으로 밀어 올렸던 세계사적인 상황과 구조들은 흔들거리고 무너져 내리고 있다. ‘트럼프 2.0 시대’는 더 급속한 단절과 해체를 재촉하게 될 것이다.

한국, 트럼프 대응할 정치리더십 실종

상상을 초월하는 태풍이 불어 닥치는데, 느닷없는 계엄령 선언과 해제, 탄핵 정국의 전개는 한국의 위기 대처 역량과 준비 태세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트럼프 2기 출범까지 이제 한달여 남았다. 첫 단추를 제대로 꿰어야 하는데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할 정치 리더십도 실종됐고,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을 추진할 실무 라인, 행정시스템 등 어느 하나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 이후의 정치 상황에 대한 극도의 불확실성이 국민의 마음을 짓누르고, 시장을 혼동 속으로 몰아넣고, 동맹국을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세계는 한·미·일 공조의 미래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불확실성은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환율은 출렁이고, 증시는 ‘셀 코리아’ 패닉 상황이다. 정책당국자들이 시장 안정을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며 분투하고 있지만, 시장의 의구심과 힘겨운 시간 싸움을 하고 있다.

탄핵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 촌각을 다투는 경제 관련 법안들은 정처없이 표류하고 있다. 경제와 안보가 연결되는 각자도생 시대에 미국과 유럽, 일본, 중국 등 경쟁국은 보조금을 앞세운 산업정책으로 반도체와 배터리 등 미래를 결정지을 산업의 생산 기반 확충에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한국 정치는 “산업정책은 대기업만 혜택받는 정책”이라는 우물 안 개구리 시각에 막혀 아까운 시간을 놓치고 있다. 세계와 경쟁하는 한국 기업에 불리하게 기울어지고 있는 운동장을 평평하게 하려는 초당적인 노력을 한국 정치에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일까.

저성장이란 부메랑으로 돌아온 규제

경제가 정치의 인질이 된 우려스러운 상황은 첨단 반도체의 절대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대만 TSMC의 창업자 모리스 창까지 경쟁사인 삼성전자를 걱정하게 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 체력은 이미 우려할 만큼 약해졌다. 국내외 기관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 저지선을 뚫고 1%대로 추락할 것이라는 섬뜩한 예측을 쏟아내고 있다. 혁신보다는 현상 안주를 추구하게 하는 규제 환경과 사회 분위기가 기업가 정신의 발현을 막은 지난 시간이 누적된 결과다.

환경과 안전·공정 등 각종 규제가 나름의 미세적인 정당성은 있겠지만, 그 모든 규제의 합이 한국 경제의 역동성과 생태계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 올지에는 무관심했다. 5년 단임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그들만의 새로운 정책을 고집하는 동안, 정권의 수명보다 훨씬 더 긴 장거리 경주를 해야 하는 기업의 경영 환경은 파편화되고 분절화됐다. 그 결과가 한국의 허약해진 경제 체력이다. 성장이 멈추어 가는 한국이 주변 국가의 위세에 휘둘리는 나라로 전락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그 끔찍한 겨울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지 않다면,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에 미칠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최병일 이화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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