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평화상 메달 들어올린 90대 원폭 피해자···“4000개의 핵탄두, 나가사키 피해 수천 배”

니혼히단쿄 다나카 데루미 대표위원(왼쪽)과 미마키 도시유키 대표위원(오른쪽)이 각각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노벨 평화상 시상식에서 각각 메달과 증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UPI연합뉴스

“상상해 보세요. 즉각 발사될 준비가 된 핵탄두가 4000개입니다. 이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발생했던 것보다 수백, 수천 배 더 큰 피해가 당장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10일(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 열린 노벨 평화상 시상식에서 일본 원폭 피해자 단체 니혼히단쿄를 대표해 수상 연설을 한 다나카 데루미 대표위원(92)은 “핵무기가 인류를 파괴하지 않도록 모두 힘을 합쳐 핵도 전쟁도 없는 사회를 만들자”고 호소하며 이렇게 말했다.

니혼히단쿄는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 피해자들이 1956년 결성한 단체로,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노벨위원회는 “이들의 활동이 전 세계에 걸쳐 핵무기 반대 여론을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선정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날 노벨 평화상 시상식은 ‘핵 금기가 깨지고 있는 세계’에 대한 경고로 가득 채워졌다. 다나카 대표위원은 수상 연설에서 전쟁 중인 러시아와 이스라엘의 핵 공격 가능성을 언급하며 우려했다. 그는 “핵 강대국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위협했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무자비한 공격을 퍼붓고 있는 이스라엘도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했다”며 “핵에 대한 금기가 깨지고 있는 데 슬픔과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핵무기 제거를 위해 뭘 해야 할지 함께 논의하고 각국 정부에 행동을 요구하기를 전 세계 모두에게 요청한다”며 “핵무기금지조약을 더 보편화하고 핵무기 폐지를 위한 국제 협약을 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르겐 바트네 프리드네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위원장도 미국, 러시아, 이스라엘, 북한 등 공식·비공식 핵보유국 9개국을 거명하며 “핵무기를 보유한 9개국 중 어느 나라도 핵 군축과 군비통제에 관심이 없고, 오히려 핵무기를 현대화하고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리드네스 위원장은 “전 세계적으로 핵 위험이 커지고 있는 지금 수상자들의 증언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프리드네스 위원장은 같은 날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트라우마와 기억에 관한 한강의 글은 그가 수상자로 선정된 이유 중 하나”라며 “기억의 작업은 저항의 행위, 변화의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다나카 대표위원을 비롯해 미마키 도시유키(82), 다나카 시게미쓰(84)도 단체 대표 자격으로 노벨 평화상 메달과 증서를 받았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인 정원술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81)과 원폭 피해 2세인 이태재 한국원폭피해자 후손회 회장(65)도 한복 차림으로 시상식에 참석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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