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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목)

이슈 미술의 세계

달을 닮은 항아리에게 묻다… 진정한 美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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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여숙화랑, 20일까지 이헌정 개인전

찌그러진 달항아리로 완벽에 대한 질문 던져

조선일보

이헌정, 항아리, 51×54cm, 2023. /박여숙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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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같은 우윳빛 백자 항아리를 ‘달항아리’라 부른다. 미술사학자 최순우는 “흰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이 그려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 한국미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곡선의 아름다움에 반해 수화 김환기도 달항아리를 집중적으로 그렸다.

서울 이태원 박여숙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이헌정 개인전 ‘달을 닮은 항아리에게 아름다움을 묻다’는 한국적 아름다움의 표상인 달항아리에 대한 이런 믿음을 무너뜨린다. 비틀어지고, 쭈그러지고, 바닥이 내려앉은 달항아리가 여기저기 놓였다. 못난 항아리를 버젓이 내놓은 중견 도예가 이헌정(57)은 달항아리가 품고 있는 절대적 미감에 대한 우리의 기억 문화에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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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그러지고, 구멍 나고, 바닥이 주저앉은 항아리들이 전시장에 놓인 모습.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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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찌그러뜨린 건 아니에요. 작업 중 옮기다가 바닥에 떨어뜨리거나 가마에서 굽다가 의도치 않게 쭈그러지고 갈라진 걸 그 상태로 완성한 겁니다. 제작자 입장에서 달항아리가 특히 매력적인 건 만드는 과정인 것 같아요. 완벽한 구를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완벽하게 만드는 게 불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그는 “내 의지대로 무언가를 실행해가는 것과 예기치 못했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그 사이 균형의 접점을 찾게 되는 과정은 제작자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라며 “그 과정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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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이헌정이 전시장에서 일그러진 달항아리와 함께 서 있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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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의 예술가로도 유명하다. 건축가 노먼 포스터, ‘빛의 마술사’ 제임스 터렐, 인도 작가 수보드 굽타,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도예에서 출발해 도자 가구, 도자 벽화, 도자 건축, 영상과 설치까지 작업을 확장해온 그가 흙과 불이라는 본질로 돌아왔다. 그는 “1년에 한 번씩 집중적으로 물레를 돌리는데 내게는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초심”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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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정, 항아리, 61×61cm, 2024. /박여숙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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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달을 닮은 항아리가 아름답다는 이들에게 달항아리가 진정 아름다운 것인가, 아니면 달을 닮았다고 배웠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받아들이는 것인가 묻는다. 그는 “달항아리의 미감은 이미 18세기에 완성된 것이다. 강요된 ‘전통’을 깨뜨리고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21세기의 달항아리를 만들고 싶었다”며 “예술은 이미 만들어진 가치를 재생산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했다. 달항아리 16점을 포함해 사발, 함 등 100여점이 나왔다. 20일까지. 무료.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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