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과 국방부로 들어가는 서문 진입로에서 경찰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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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3일 저녁 국방부가 있는 서울 용산 삼각지에서 국방부 사람들과 저녁을 먹었다. 2시간가량 이어진 저녁 자리는 밤 9시쯤 끝났다. 2차 술자리가 이어졌는데 밤 10시가 가까워지자 술자리 분위기가 묘하게 변했다. 국방부 사람들이 전화 통화를 하러 나가더니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밤 10시30분쯤 뉴스 속보가 떴다. ‘윤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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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헛것을 봤나 싶어 눈을 몇 번 비비고 다시 봤지만, ‘비상계엄 선포’였다.
일단 출입처인 국방부 기자실로 걸어가기로 했다. 밤 10시35분쯤 국방부 서문 출입구에 도착했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안팎 경비병력 규모, 출입 절차는 평소 야간과 다를 바 없었다.
밤 10시40분쯤 국방부 청사 1층에 있는 기자실에 도착해 불을 켜고 자리에 앉았다. 타사 기자들이 하나둘 기자실로 들어왔다.
밤 11시 계엄사령부의 포고령 1호가 발표됐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며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처단한다’고 했다.
밤 11시20분께 전투복 차림의 군사경찰(옛 헌병)이 갑자기 기자실에 들어와 “국방부 청사 내부에 있는 민간인들은 모두 나가야 하니 기자들도 나가라”고 말했다. 기자들은 “퇴거 명령의 근거가 뭐냐. 책임 있는 당국자가 와서 설명하라”고 맞섰다.
5분가량 뒤 군사경찰이 다시 기자실에 들어왔다. “안 나가면 테이저건(전기 충격용 권총)을 쏠 수도 있다. 특임대가 투입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퇴거 요구에 따르지 않자 군사경찰은 “강제력을 행사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최후통첩을 남기고 돌아갔다. 멀리 있던 포고령의 ‘처단’이 테이저건으로 쑥 들어왔다.
이러다 테이저건에 맞거나 포승줄에 묶여 끌려나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들었다. 30년간 기자 생활하며 겪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1996년 강릉무장공비침투 때는 강원도에서 보름간 취재를 했고, 내무반 총기 난사, 서해교전,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전 등을 취재했다. 어지간한 일은 놀라지 않는데, 이번 일은 상상도 못 한 일이다.
기자실에서 나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타사 후배 기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배,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해요?”
“미안해. 나도 비상계엄은 처음이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지난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무장한 군인들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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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에 상황을 알리니 “위험하니 기자실에서 나오라”고 했다. 비상계엄이 터진 직후 “역사의 현장을 잘 기록해달라”던 한 국방부 공무원의 당부도 떠올랐다. 자정 가까운 시간에 기자실 밖으로 나가면 기사 쓸 곳도 없으니 일단 기자실에서 버티자고 마음먹었다.
기자실 안에서 기자들이 버티는 동안 기자실 밖에서는 군사경찰들이 기자실과 대변인실로 이어지는 통로를 닫아 청사 현관에서 기자실을 들어가려는 기자들을 막아섰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청사 입구에는 바리케이드가 설치됐다. 국방부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기자들은 대통령실과 국방부 맞은편 전쟁기념관 입구 쪽에 모여 있었다.
국방부 청사 안팎에서 기자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밤 11시50분쯤 장교 한 명이 “기자실까지는 민간인 출입을 허용한다”고 말했다. 국방부 대변인실은 “민간인을 내보내라는 지침 하달 과정에서 군사경찰의 오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기자실 퇴거 요구가 정말 일선 군사경찰의 오해인지 국방부가 말을 바꾼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이번 비상계엄을 계기로 경찰도 아닌 군이 테이저건에 관심이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군사경찰이 기자실에서 안 나가면 기자들에게 테이저건을 쏠 수 있다고 말하던 무렵 특전사도 시민을 향해 테이저건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건의했다. 지난 5일 오후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한 박안수 육군참모총장(당시 계엄사령관)은 계엄 당시 곽종근 특전사령관과의 통화 내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테이저건과 공포탄을 쏘아야겠다고 건의한 부대가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박 총장은 “테이저건과 공포탄은 국민에게 위해가 될 수 있으니 (허가) 할 수 없다고 금지 지시를 했다”고 말했다.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지난 5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해제 경위와 관련한 긴급 현안질의가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선호 국방부 차관.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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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새벽 1시.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됐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계엄해제 요구안 가결로 계엄령 선포는 무효가 됐다”고 밝혔다. 이를 기자실 텔레비전 화면으로 지켜보며, “테이저건에 맞을 일은 없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국회 결의안 가결에도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풀었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다. 기자실에서 일부 기자들은 윤 대통령이 계엄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해제한다는 계엄법 조항을 악용해, 국무회의를 안 열어 계엄을 해제하지 않는 꼼수를 부릴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긴데,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을 하는 윤 대통령이라 그렇게 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새벽 3시40분쯤 국방부 당국자가 기자실에 와서 “상황이 조금 뒤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하고, 기자들이 묻지도 않았는데 “비상계엄 선포 건의는 김용현 국방장관이 대통령께 했다”고 말했다. 계엄법에 따르면 국방장관과 행정안전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를 건의할 수 있으니, 이번 비상계엄이 법적 절차를 지킨 합법 조처란 점을 강조한 것이다.
새벽 4시 국방부 비상소집령이 해제됐다. 국방부 경내 도로에는 퇴근하는 차량들이 쏟아져 나와 차들이 길게 늘어섰다. “이제 정말 끝났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김용현 신임 국방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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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이 새벽 4시27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무회의를 열고 계엄을 해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벽 4시32분 ‘군 입장문’이 나와 “4일 오전 4시22분부, 투입된 병력은 원소속 부대로 복귀하였다”며 “현재까지 북한의 특이 동향은 없으며, 대북 경계 태세는 이상 없다”고 밝혔다. 남한에 특이 동향을 만들어놓고 북한의 특이 동향이 없다는 ‘군 입장문’이 특이했다.
밤을 새우고 아침 7시 동료 기자 몇 명과 삼각지 식당에서 내장탕으로 쓰린 속을 달래는데, 옆자리에도 밤을 새운 경찰관들이 지친 표정으로 밥을 먹고 있었다. 밤에 평지풍파를 일으킨 한 사람 때문에 애꿎은 국민이 고생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 대통령의 앞날을 생각하다 “이러다가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박노해 ‘노동의 새벽’)라는 시구가 떠올랐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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