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한 4일 새벽 CNN과 NHK 등 주요 외신에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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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윤석열 대통령)의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대통령직의 앞날에 의문을 제기했으며, 한국 민주주의의 힘을 시험했다.”(영국 이코노미스트)
“한국 민주주의에 입힌 상처의 대가는 너무나도 크다.”(일본 아사히신문)
4일 세계 주요 언론은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 밤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약 6시간 만에 해제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고 평가했다.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계엄령이 선포되고 무장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한 이번 사태로 한국 정치가 과거 군사독재 시절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지만, 사태가 법적 절차에 따라 평화적으로 마무리된다면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를 극복하고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격렬한 정치적 좌우 대립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대선을 통해 정권 교체를 반복하며 민주주의를 지켜왔다. 윤 대통령은 이런 민주화 역사를 고려하지 않았던 것인가”라고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윤 대통령이 실제로 물러나 헌법적 절차에 따라 교체된다면 한국의 시스템은 강력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과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미국 연방 의회 선거에서 한국계 최초로 상원 의원에 당선된 앤디 김 하원의원도 “민주주의는 항상 도전에 직면한다”며 “이는 반드시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과정을 통해 해결돼야 한다”고 했다.
세계 주요 언론은 지지율 저하로 고전하던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이라는 도박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패착이 됐다고 평가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계엄으로 인한) 정치적 롤러코스터는 심각한 양극화와 호전적 정치로 극적인 권력 이동과 반발이 자주 일어나는 한국 기준으로 봐도 극단적이었다”고 전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한국 정치 전문가 다르시 드라우트-베자레스는 이 매체에 “그(윤 대통령)는 한국 정치 문화를 심각하게 오독한 극단적 움직임을 시도했다”며 “자신의 당을 포함한 의회의 신속한 거부는 활기찬 민주주의의 지도자로서 그의 권위를 마비시켰다”고 했다.
외교 매체 포린폴리시는 “궁지에 몰린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비상한 시도로 계엄을 선포했지만, 국회가 만장일치로 이 조치를 거부해 윤 대통령의 ‘셀프 쿠데타’는 굴욕적인 실패로 끝났다”고 했다.
영국 가디언은 “윤 대통령이 자신의 대중적 인기가 바닥난 가운데 처절한 도박을 했다”며 “여당을 포함한 국회가 만장일치로 그의 선언을 뒤집은 것은 그의 계산이 잘못됐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계엄령 발표를 통해 ‘국회를 장악한 좌파 세력이 북한에 동조하고 반란을 획책하고 있다’고 비난한 것은 우익 세력을 결집하기 위한 대통령의 정치적 도박일 수 있다”며 “만약 그렇다면 매우 어리석은 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계엄 선포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행태가 돼 윤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를 악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신문망 등은 ‘이재명, 윤석열은 더 이상 한국 대통령 아니라고 발언’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행보를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중국판 카카오톡 ‘위챗’ 단체 대화방 등에서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위태롭기도 하고, (국회가 조기에 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시켰다는 점에서) 단단하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등의 반응이 나왔다.
각국 조야(朝野)의 반응도 이어졌다. 미국 워싱턴DC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한국의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는 제목의 글에서 “계엄령을 뒤집기 위한 입법부의 신속한 동원, 지지율 10%대에 불과한 대통령에 대한 시위 확산 가능성이 윤 대통령의 종말(demise)을 부를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의 대표적 한국통인 빅터 차 한국 석좌를 비롯해 앤디 임, 지세연 연구원은 이 글에서 “북한이 윤 대통령에 대한 선전 목적으로 이번 혼란을 악용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했다. 시드니 사일러 CSIS 선임고문도 CNN에 출연해 “북한이 이 상황을 기회로 볼 것인지 계속 주시해야 한다”고 했다.
그레그 브레진스키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X에서 “윤 대통령이 한국이 이룬 많은 진전을 훼손하는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다”며 “(민주화를 이룬) 1987년 이후 한국의 지도자가 행한 최악의 일”이라고 했다. 이어 “바이든 정부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훨씬 더 강력한 입장을 즉각 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프리카를 방문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차량 안에서 한국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다고 전해졌다. 백악관은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 선포와 관련된 입장을 번복하고 한국 국회의 계엄령 종료 표결을 존중한 데 대해 안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본지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 명의로 메시지를 보내 “민주주의는 한미동맹의 근간(根幹)이며 우리는 계속 상황을 주시할 것”이라고 했다.
방한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던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한국 방문은 아직 무엇도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당초 일본 언론은 이시바 총리가 내년 초 한국을 방문해 윤석열 대통령과 회담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시바 내각도 이를 부인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시바 총리는 “어젯밤 계엄령이 내려진 이후 특별하고 중대한 관심을 갖고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4일 새벽 뉴욕타임스(NYT) 홈페이지가 톱뉴스로 한국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했다고 전했다. 기사 제목은 "한국 국회의원, 대통령에 저항하며 계엄 해제 요구"라는 내용이다. /NYT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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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은 대변인을 통해 “한국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 외무부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국의 상황을 큰 우려를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며 “민주주의는 승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러시아도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을 통해 “한국의 계엄령 선포 이후 상황을 우려한다”며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가 한국 외교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와 한국의 관계가 어려움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주의 대 독재’의 구도로 외교 전략을 구사하면서 러시아·중국·북한 등 권위주의 국가에 대항하기 위해 한국과 협력을 강화해 왔는데, 한국의 계엄 사태로 그 틀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개선의 물꼬가 트이는 듯했던 한중관계에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지난달 페루 리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윤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회담한 이후 양국 고위급 교류가 탄력을 받았고, 시진핑 주석이 내년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어서 관계 개선의 기회가 만들어졌는데 중국 측이 정치적으로 위태로워진 윤석열 정권과 적극적 대화·협상을 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전 일본 총리가 지난해 양국을 서로 방문하는 ‘셔틀 외교’를 펼치며 개선됐던 한일 관계가 다시 냉랭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시바 총리는 향후 한일관계 전망을 묻는 질문에 “다른 나라 내정에 대해 말씀드릴 입장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요미우리신문은 “외무성 관료들은 한일 관계가 향후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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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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