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총리는 이날 오전 총리 관저에서 한국 계엄에 대한 일본 기자들의 질문에 “타국 내정에 대해 말씀드릴 입장은 아니다”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강제징용 배상금 문제 등 일본과의 관계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왔던 윤 대통령의 거취를 포함해 개선 흐름을 타고 있던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이시바 총리는 “한국에 있는 일본인 안전에 대해 영사 메일을 즉시 보내는 등 가능한 대응을 하고 있다”면서 “일본인 안전을 위해 계속해 만전을 기하겠다”고 설명했다.
4일 오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총리관저에서 한국 계엄 사태와 관련해 "특별하고 중대한 관심을 갖고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지·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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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방한 어려울 듯
이시바 총리는 내년 1월로 조정 중이던 셔틀 외교 차원의 방한 조정에 대한 질문에 “한국 방문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들은 외무성 간부 발언을 인용해 “향후 상황에 따라 영향이 있을 수 있다”거나 “미묘한 상황”이라는 분위기를 전했다.
다치바나 게이이치로(橘慶一郎) 관방부장관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일관계 영향을 묻는 질문에 “한국은 국제사회 다양한 과제 파트너로 협력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이웃 나라”라며 “정세를 주시하면서 적절히 판단해 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한국 계엄 사태와 관련한 국가안전보장회의 개최 여부에 대해선 “의장인 총리 지시에 따라 종합적으로 판단한 뒤, 적절히 개최하는 것”이라며 “개별 스케줄에 대해 답은 삼가겠다”는 원론적인 답을 내놨다.
일본 언론들은 이날 일제히 1면 머리기사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전하면서 개선 기조를 보이던 한·일 관계 영향을 우려했다. 요미우리 신문은 “내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하는 가운데, 1월에 이시바 총리가 방한해 윤 대통령과 정상회담 가질 예정으로 조율 중이었지만 이번 사태로 일정 변경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국교정상화 60주년 관련 행사들도 검토 중이었지만 계엄령이 찬물을 끼얹게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6일(현지시간) 페루 리마의 한 호텔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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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급 인사 방한 줄줄이 취소하나
이달 15일부터 16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1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려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는 일정을 급거 취소했다. 일한의원연맹 회장 자격으로 윤 대통령을 만나 국교정상화 60주년 등에 관한 논의를 하려 했지만 한국 국내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게 되자 취소했다.
방위상 자격으로는 9년 만에 처음으로 이달 중 한국을 방문하려던 나카타니 겐(中谷元) 방위상의 일정 역시 불투명해졌다. 외무성 관계자들 역시 밤새 한국 상황을 지켜보며 대책 마련 등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이 4만여 명으로 이번 계엄으로 ‘불안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요미우리는 실제로 한국 거주 일본인과 기업 관계자들 사이에 혼란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요미우리는 윤 대통령의 계엄 발표에 대해 “이런 수법이 국민 지지율을 얻을지는 불투명하며 또 다른 혼란도 예상된다”는 전망을 내놨다. 여당이 지난 4월 총선에서 대패한 데다, 윤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스캔들 등으로 지지율이 20% 전후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임기 2년을 더 남긴 윤 대통령의 구심력이 떨어져 있다는 설명도 보탰다. 공영방송 NHK도 “한국서 비상 계엄은 1987년 민주화 선언 이후 처음”이라고 속보로 전달하면서 “윤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발표에 혼란이 계속되고 있어 사태가 진정될지 불투명하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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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혼란 장기화 우려
한·일관계 전문가인 니시노 준야(西野純也) 게이오대 법학부 교수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한국 정치 혼란 장기화에 따른 한·일 관계 악영향을 우려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이뤄진 한·일관계 개선은 윤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이뤄진 것으로 이번 사태로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지금 상황으로는 한국의 정치 혼란 상황이 바로 수습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를 고려할 때 이시바 총리의 방한은 한동안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그는 “내년 1월 트럼프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한·일이 협력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번 사태로 한·일 협력이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고 우려를 밝혔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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