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에게 학창시절 추억을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학교 앞 분식점을 떠올릴 것이다. 분식점에서 팔던 라면, 떡볶이, 김밥 등은 우리 배를 든든히 채워주던 푸짐하고 저렴한 간식이었다. 그런 우리의 분식이 최근에는 우즈베키스탄까지 넘어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점심시간에 잠시 들른 집 근처 편의점에는 학교 수업을 마친 우즈벡 학생들이 바글거렸다. 야외 테이블마다 라면과 떡볶이, 삼각김밥이 올려져 있었고, 자연스럽게 젓가락을 사용하여 음식을 먹고 있었다.
우즈벡 고유 식문화 자체는 한국과 접점이 많지 않다. 빵과 숯에 구운 고기가 주식인 중앙아 한복판에 위치한 이슬람 국가가 우리나라와 접점이 많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능숙한 젓가락질로 필자도 매워서 못 먹는 비빔라면을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보자니, 여기가 어디인지 혼란스러워졌다.
최근 들어 우즈벡에는 한국식 편의점, 마트 등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한국식 편의점에는 즉석 라면 기계가 구비되어 있고 다양한 종류의 라면, 인스턴트 떡볶이, 삼각김밥과 한국 과자도 판매한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분식류는 1020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으며, 한국식 편의점은 어느새 어린 학생들, 젊은 청년들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한국 분식의 인기는 대체로 한류에서 시작했다. 한국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한 한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한국 음식에 대한 수요를 불러온 것이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음식이 이곳에서 거부감 없이 안착할 수 있었던 특수한 이유가 하나 있다.
우즈벡은 CIS(독립국가연합)에서 가장 많은 수의 고려인이 거주하는 국가다. 훨씬 전부터 ‘국시’(물국수), ‘베고자’(찐만두), ‘짐치’(김치) 등 현지에 맞게 살짝 변형된 한식이 고려인들을 통해 소개가 됐고, 그 맛을 인정받았다. 몇 세대에 걸쳐 고려인들은 양국 식문화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즈벡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한국식 편의점인 더마트 역시 고려인이 창립한 브랜드다. 더마트의 창립자 콘스탄틴 김은 한국의 편의점을 참고하여 우즈벡 내에 편의점 사업을 시작했다. 그 역시 고려인으로서 우즈벡과 한국의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현지 수요에 맞춰 보다 효과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창업한 지 불과 4년 만에 타슈켄트 시내에 7개의 지점을 운영중이며, 계속해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고려인 외에도 매년 한국을 방문하는 이주 노동자들, 유학생들 역시 한국 음식을 알리는 전도사다.
한편 러-우 사태로 러시아 시장이 축소된 만큼 중앙아시아 시장이 떠오르고 있다. 예부터 실크로드로 활약했던 우즈벡의 중요도가 주목받고 있다. 올해 5월에는 한국의 비비고 제품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 식품점 안테나숍이 타슈켄트 중앙에 문을 열었다. 그리고 작년에 카자흐스탄에 중앙아시아 1호점을 연 CU 편의점은 우즈벡으로 확장을 고려 중이라고 한다.
우리 기업들의 중앙아시아 식품 사업 확장의 중심에는 든든한 우리 고려인 동포들의 뒷받침이 자리하고 있다. 어쩌면 학교 앞 라면과 떡볶이가 더 이상 우리 국민만의 추억은 아니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한정선 코트라 타슈켄트 무역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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