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은 1998년 골관절염 치료제 '인보사' 개발을 결정했다. 성공 가능성이 0.00001%에 불과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주저할 수 없다는 생각에 19년간 1000억원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1남2녀를 둔 이 명예회장은 '인보사'를 '넷째 자식'이라고 부를 정도로 각별하게 여겼다.
하지만 2017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허가를 받은 인보사는 결국 '아픈 손가락'이 됐다. 2년 뒤인 2019년 미국의 임상 3상 시험 중 신고 내용과 다른 성분이 확인된 것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시험을 중단시켰고, 식약처도 판매 허가를 취소했다. 국민 건강과 안전을 고려하면 당연한 조치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FDA는 섞여 들어간 세포가 무엇인지, 안전에 문제는 없는지 과학적으로 검토했다. 안전성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결론이 나자 2020년 임상 재개를 승인했고, 1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인보사 생산과 판매가 중단된 것은 물론이고, 회사와 경영진은 검찰 수사와 민사·형사·행정 소송에 매달려야 했다.
코오롱생명과학이 식약처를 상대로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은 회사 측이 1심과 2심 모두 패소했다. 하지만 경영진에 대한 형사소송 재판부는 결이 다른 판결을 내놨다. 재판부는 신약 개발 과정의 시행착오를 범죄로 볼 수 없다는 데 주목했고, 이 명예회장 등 경영진이 고의로 성분을 속인 것이 아니라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의약품 안전 관리는 철저해야 한다. 의약품 부작용이 수년 후에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하지만 그 판단 기준은 오로지 과학이어야 한다. 신약을 자식처럼 여기고 긴 세월과 막대한 비용을 투자한 기업이 행정 편의주의나 기소 만능주의의 희생양이 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인보사 재판은 과학에 대한 사법적 통제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숙제를 남겼다.
[이은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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