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안 70장→20여장 줄였지만, 생산규제·재원 등 합의 불발”
지난달 28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1전시관 앞에서 환경운동연합과 지구의 벗(Friends of the Earth) 소속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UN 전문가들의 성명서에 대한 지지입장을 밝히며 국제플라스틱 협약에서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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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국의 ‘생산 규제 반대’에 막힌 협약
2일 정부에 따르면 플라스틱 오염 방지 국제협약 마련을 위해 지난달 25일부터 부산 벡스코에서 시작된 INC-5가 이날 오전 3시 폐막했다. 마지막까지 치열한 협상이 지속되면서 기한(1일)을 넘겼지만 협약 마련엔 실패했다.
국제사회는 2022년 5월 제5차 유엔환경총회(UNEA)에서 플라스틱 오염에 대응하기 위해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 협약을 올해 말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2년6개월간 네 차례 협상을 거쳐 이번 부산 회의가 마지막 논의 자리였다.
루이스 바야스 발디비에소 정부간협상위원회(INC) 의장은 협상안 일종인 ‘제안문(논페이퍼)’을 다섯번 내놨다. 5차 제안문은 플라스틱 생산 감축 법적 강제 여부가 핵심이었다. 아예 이를 논의하지 않는 것(옵션1)과 글로벌 감축목표 설정 문안을 기반으로 감축 대상을 플라스틱 원료인 폴리머에서 플라스틱 제품까지, 관리 방법도 감축·유지·관리 등 다양한 옵션을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방식(옵션2)이 제안됐다.
하지만 국가들간 이견을 좁히는 데 실패했다. 최대 플라스틱 생산국인 중국이 예상보다 전향적 입장을 보였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산유국이 플라스틱 생산 규제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는 협약에 생산 규제 조항을 포함하는 것을 ‘레드라인’(한계선)으로 규정하고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러시아는 모든 국가가 수용할 수 있는 조항에 집중하자는 논리를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달 27일 2차 본회의에서 이미 “우리는 뚜렷한 진전 없이 3일을 낭비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플라스틱의 생산 규제 여부, 제품과 우려화학물질 규제 방안, 재원 마련 방식 등에서 국가간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100여개가 넘는 국가가 플라스틱 생산 감축 협상을 요구했지만, 산유국은 해당 안건 논의 자체를 반대한 것이다. 플라스틱 제품 디자인, 폐기물 관리, 협약의 이행과 효과성 제고 방안 등에 대해서만 의견 수렴이 이뤄졌다.
◆2025년 INC-5.2로 넘어간 협상
회원국들은 부산 논의 내용을 기반으로 2025년 추가 협상회의(INC-5.2)를 열어 협상을 지속하기로 했다.
이번 부산 회의의 주최국인 우리나라는 김완섭 환경부 장관이 우루과이, 프랑스, 케냐, 캐나다, 노르웨이와,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INC 의장과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 미국, 일본, 중국, 프랑스, 마이크로네시아 등과 면담을 갖고 의견을 나눴다.
김 장관은 회의 기간 플라스틱 회의를 주체한 국가들의 수석대표와 만찬 자리를 갖고 플라스틱 생산 감축 및 제품 설계 등 주요 규제에 대한 일반적인 기준과 지침을 마련해 법적 구속력은 유지하면서 구체적인 정책은 국가이행계획 등 국가별 자발적인 조치를 통해 설계하도록 자율성을 부여하자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조 장관은 폐회식 발언을 통해 “기존에 70장이 넘는 협약 문안을 20여장으로 줄이는 실질적인 진전을 이뤘다”며 “협상 결과를 기반으로 미래 세대를 위한 플라스틱 오염 대응이라는 대의를 위해 각국이 협력과 타협의 정신을 발휘해 조속히 협약을 성안할 것”을 촉구했다.
정부는 “향후 이어질 추가 협상회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플라스틱 협약 성안을 통해 국제사회의 플라스틱 오염 종식 노력이 진전될 수 있도록 선도적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플라스틱 협약 필요성과 韓 책임론
2년6개월 여정에도 플라스틱 협약을 마련하진 못했지만 협약 필요성에는 국제사회가 공감하고 있다.
세계자연기금(WWF) 연구에 따르면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1950년 200만t에서 2000년 2억3400만t, 2019년 4억6000만t으로 급증했다. 세계 플라스틱 폐기물도 2019년 3억5300만t으로 2000년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산유국 등은 플라스틱 재활용을 대안으로 꼽지만 2019년 생산된 4억6000만t 가운데 재활용된 플라스틱은 2900만t에 불과하다. 일회용 플라스틱 생산량도 전체의 60%나 된다.
2040년 플라스틱 생산량은 현재의 2배가량인 7억6400만t으로 늘 전망이다. 해양으로 흘러 들어가는 플라스틱도 3배로 증가하고, 플라스틱으로 인해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도 2019년 19억t에서 2040년 31억t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적절하게 처리되지 못한 플라스틱으로 인한 해양 생태계 오염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는 플라스틱 원료 생산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의 배경이다.
플라스틱 오염을 줄여야 한다는 데 국제사회는 공감하고 있다.
세계자연기금이 지난 4월 세계 32개국, 2만472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90%는 인간의 건강, 야생동물, 환경에 유해한 화학물질 금지에 찬성했고, 87%는 재활용이 어려운 등급의 플라스틱 사용 금지에 동의했다. 87%는 전 세계적으로 생산되는 플라스틱 감축을 지지했다. 이에 강력한 플라스틱 협약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2년6개월간 먼 길을 달려왔다.
계획상 마지막 회의가 열린 부산에서 협약 마련이 무산됐다는 점에서 우리나라가 제 역할을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나라 그린피스 플라스틱 캠페이너는 “이번 INC-5 회의에서 한국 정부는 강력한 협약을 지지하는 우호국 연합(HAC) 소속 국가이자 협상회의 개최국이었다. 그만큼 많은 영향력을 가졌던 한국 정부는 그간 언론을 통해 언급한 것과 달리 생산 감축을 포함한 강력한 협약을 위한 적극 행보를 일체 보이지 않았다”며 “이는 이번 협약에 참석했던 회원국, 국내외 시민사회, 그리고 강력한 협약을 기대했던 세계 시민을 실망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환경단체 연대체인 플뿌리연대도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회의 기간 중 한국정부 대표단의 장관급 참여는 초반 이틀 김완섭 장관 참석을 제외하고 전무하다”며 “회의 막바지에 이르러 많은 국가의 장관들이 속속 부산에 도착해 협상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장관급의 부재는 한국 정부가 개최국으로서 얼마나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고 밝혔다.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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