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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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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져 외려 드러난 죽음 ‘암장’...몇 명이 죽는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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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23년 3월 타이 출신 이주노동자 분추 프라바세눙이 사망 뒤 농장주에 의해 버려졌던 경기 포천의 한 야산.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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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출생과 사망은 국가 공동체가 관리하는 가장 기초적인 통계다. 시민의 ‘존재’를 셈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나라의 가장 위험한 노동을 감당하는 시민, 144만명 이주노동자 중 한해 사망자는 몇명일까?



촘촘한 기록과 행정의 나라 대한민국 어느 문서에서도 이를 정확히 확인할 순 없다. 한국 사회는 이들이 어떻게 일하고 다치고 병들어 죽음에 이르는지 모른다. 알려고 하지 않는다. 기록 없이 ‘암장’된 죽음들 앞에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있다.



고용허가제 시행 20년을 맞아 한겨레는 이주노동자의 감춰진 죽음과 그 이후 장례, 남겨진 사람들, 송출국의 현실을 추적했다. 위험하고 폭력적인 일터, 열악한 삶과 사회안전망의 부재, 은폐와 사기, 애도의 부재와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무신경 등 눈치채지 않으려 했던 이주노동의 거대한 그림자가 타래처럼 끌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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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사장이 ‘분추 삼촌이 도망갔다’고 했어요. 도망갈 리 없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도망가는지도 모를 거예요.”(‘분추 주검 유기 사건’ 최초 신고자, 몬캄 싱하라치)



타이 사람 분추 프라바세눙(당시 67살)이 지난해 3월4일 경기 포천시 영북면 야미리 야산 고랑에서 발견되기 전까지 그가 이곳에 ‘살다 죽어’, ‘버려졌다’는 사실은 세상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았다. 암장. 남몰래 묻힌 삶이었다. 죽음이었다.



고랑에 놓인 주검이 분추라는 것, 10년 동안 미등록 노동자로 돼지 농장에서 일했다는 것, 지난해 3월1일 오전 대동맥 파열로 돌연사했다는 것, 3월2일 농장주와 아들이 모는 트랙터에 실려 300여m 떨어진 야산으로 옮겨졌다는 것, 산 중간 얕게 파인 고랑에 버려지게 됐다는 사실은 경찰의 변사 사건 수사 과정에서 알려졌다. 그가 한국에서 어떻게 일하고 살았으며, 무엇을 바라고 좌절했는가는 그를 스치듯 본 주변 사람들 얘기로 추정만 할 따름이다. 한국에 머문 10년, 숨진 뒤 사흘 동안 분추는 촘촘한 기록과 행정의 나라 대한민국의 어느 문서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 죽음은 특별하지 않다.



지난 29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인 분석 및 지원 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이하 연구,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연구팀)를 보면, 한국의 행정 시스템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의 기초적인 신원 정보(국적, 성별, 나이, 직업, 사망 시점, 의료적 사인, 비자 형태 등)를 파악할 수 있는 ‘아는 죽음’은 2022년 기준 214명에 그친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출입국본부)에 사망 사실 정도만 신고된 이주노동자 사망자 수(3340명)의 고작 6.4%다. 이주노동자 93.6%의 죽음을 한국 사회는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다. 암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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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숱한 죽음은 대체 어떻게 유실됐을까. 기록 없는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겨레는 김승섭 교수팀 연구의 도움을 받아 이주노동자의 죽음과 그 이후를 추적했다. 존재 없는 죽음은 존재 없는 삶과 동의어였다.





존재는 아는 죽음, 6.4%







연구가 모수로 삼은 출입국본부가 집계한 사망자 3340명은 2022년 노동비자(무비자 포함)로 한국에 체류하다가 숨져 사망 사실이 신고·확인된 외국인 수다. 사망 연도와 국적, 성별, 대략적인 비자 내용, 대부분 ‘기타’로 분류된 간단한 사인만 담긴 자료라, 사망자가 누구이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지에 관한 정보는 전혀 없다.



이 중 6.4%가 그래도 행정 자료에 흐릿하게나마 존재를 짐작할 수 있는 기초적인 신상 정보를 남겼다.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사망 보상을 신청한 169명과 삼성화재 ‘외국인 상해보험’에 업무 외 사망 보험금을 청구한 45명이다.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경제적 보상 여부를 따질 때만 사망자 정보가 수집된 셈이다.



기록된 죽음은 사고사 등 산재를 신청해볼 만큼 분명한 사망 원인, 등록 이주노동자라는 상대적으로 ‘나은’ 처지를 배경으로 한다. 산재 승인을 위해선 업무로 인한 사망임을 입증해야 한다. 외국인 상해보험은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등록 이주노동자만 가입한다.



분추는 ‘미등록’ 상태였다. 심장 질환으로 ‘돌연사’했다. 게다가 사망 직후 야산에 버려졌다. 6.4%에 속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지인들 얘기를 들어보면, 분추는 10년 동안 휴일 없이 매일 새벽 5시부터 오후 4시까지 돼지 1천여마리의 분뇨를 치웠다. 분추 사건의 최초 신고자 몬캄 싱하라치(39)는 “(분추 숙소는) 돼지 있는 곳 바로 옆이고, 비닐로만 쳐 놔서 냄새·유독가스가 다 들어왔다”고 했다. 한달 120만~180만원을 받았다. 다만 이런 노동 환경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노동 시간, 임금 자료는 없다. 따라서 과로로 분추가 죽음에 이르렀음을 입증하기는 매우 어렵다. 분추의 부인 마리 프라바세눙은 한겨레에 “남편이 과로로 숨졌을 것 같다”면서도 “사장에게 뭘 요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존재조차 모르는 죽음, 93.6%





214명을 뺀 3126명의 죽음은 알 수 없는 심연에 있다. 신원 정보는 비어 있거나 부정확하며 각 통계 기준도 중구난방이라 죽음에 이른 사정은 추정으로 메워야 한다.



일하다 죽었다면, 우선 산업재해보험 체계에 들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노동 시간 기록 등을 구할 수 없어 산재 신청을 포기한 노동자, 보험에는 가입했지만 존재를 모르거나 보상 신청 방법을 몰라 배제된 이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애초 산재보험 가입조차 못 한 채, 짐작할 수 없는 다양한 형태로 일하는 미등록 노동자도 적잖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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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경찰과 보건복지부가 관리하는 변사와 무연고 사망 자료는 그나마 ‘주검’이라는 단서를 남긴 죽음이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 사망해, 누군가 발견해 신고하면 변사로 분류돼 경찰 조사를 받는다. 2022년 기준 이주노동자 변사자는 755명으로, 분추의 죽음도 여기 속한다. 다만 분추의 죽음은 ‘농장주에 의해 유기’된 사건의 실체가 지역 활동가와 언론에 알려지며 이름, 나이, 의료적 사인, 유가족의 존재 등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예외적 사건’이다. 통상 변사자 사인은 자살·타살·과실사·재해사 등으로만 기록될 뿐이며, 심지어 57.5%가 그조차 모르는 ‘기타 사망’으로 적힌다. 특별한 범죄 혐의점이 없으면 경찰은 사망자의 구체적 사인이나 산재 여부 등은 파악하지 않는다.



유족을 찾지 못한 ‘무연고 사망자’도 같은 해 기준 104명이다. 이들의 죽음을 적은 행정 자료 목록에는 이름, 국적, 성별, 직업, 비자 형태가 대부분 비어 있다. 실제 파악이 되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모르는 척하는 죽음’인 경우도 있다. 사망한 이주노동자 유가족과 연락이 닿고도 무연고 사망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연구에 담긴 현장 활동가들의 증언이다. 사망한 이주노동자의 장례를 치르고 주검을 고국으로 돌려보내는 일련의 과정에는 사망 전 병원비, 안치비, 장례비, 화장비, 운구비 등 상당한 비용이 든다.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유족은 많지 않다. 연구는 “이주노동자의 무연고 사망 처리가 ‘최소 비용으로 시신을 처리하기 위한 대안’으로 형식화되는 것”을 우려했다.





새기지 못한 죽음, 100%







미등록, 돌연사한 이주노동자 분추의 이름은 다른 죽음들처럼 심연으로 향할 뻔한 숱한 고비를 넘어, 충격적인 유기 사건으로 세상에 드러나 한겨레에 적혔다. 아내 마리는 분추와 연락이 닿지 않자 한국에 있는 지인 몬캄에게 연락했다. 몬캄은 돼지 농장을 찾아갔다. “분추가 도망갔다”는 농장주 설명을 믿지 않고 신고했다. 지역 이주 활동가에게 부고가 전해졌다. ‘충격적 사건’으로 보도됐다. 농장주 김씨는 지난 7월 2심에서 시체 유기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에 분추의 이름과 의료적 사인(대동맥 파열), 주검 유기 상황이 담겼다. 다만 가까스로 남긴 분추의 죽음에서, 한국 사회는 무엇을 깨달았나.



연구팀은 ‘존재를 아는’ 것으로 분류한 6.4%의 죽음을 포함해 모든 이주노동자의 죽음이 끝내 한국 사회에 교훈을 남기지 못한 점에 집중했다. 근로복지공단과 상해보험 보상 자료가 상대적으로 자세한 신원 정보를 담고 있다고 해도, 사인은 의료적으로만 간단히 기록됐고 일정한 기준도 없다. 노동자의 죽음이지만, 일터의 어떤 환경이 문제였는지 알 수 없다. 이주노동자가 왜 그 일터에서, 몬캄이 본 분추처럼 “도망가는 법도 모른 채” 일해야 했는지 또한 알 수 없다.



애초 모수(3340명)로 삼은 사망자 출입국 행정 자료 또한 전체 죽음의 수로 확신할 수 없다. 사망 뒤 신고 없이 조용히 매장·화장·유기됐다면 이 통계에 잡힐 수 없기 때문이다. 야산에 몰래 버려진 분추 또한 ‘충격적 사건’이 되지 않았다면 모수 자체에 포함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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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경기 포천의 한 돼지 농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뒤 야산에 유기된 타이 출신 이주노동자 분추 프라바세눙의 장례가 고국에서 치러지고 있다. 유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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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죽음의 기록을 전방위적으로 수집한 끝에 연구는 적는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자료는 이주노동자 사망보다 출입국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그 외 외교부, 고용노동부, 해양수산부, 여성가족부 등 이주노동자 관련 부처는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해 파악하거나 공식 발표하지 않는다. 체류 단속에 따른 이주노동자의 사망, 외국인보호소에서의 사망, 결혼이주민의 친밀한 파트너에 의한 사망 등은 파악되지 못하거나 사망 사실이 분산되어 정확한 사망 이주노동자 수도 알 수 없다.”



분추의 몸은 ‘운 좋게’ 존재는 드러난 채 고국으로 귀환했다. 가족과 마을 사람들은 분추의 영정과 화려한 금빛 제기를 나눠 들고 마을을 돌았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는 한해 ○○○○명 죽는다. 빈칸에 들어갈 죽음의 수는 아직 누구도 정확히 적을 수 없다.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2023년 기준 144만4천여명으로 추정된다. 한국 정부는 2021년 5만2천명대였던 고용허가제 쿼터를 올해 16만5천명까지 늘렸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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