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편성한 당초 예산안(677조4000억원)에서 4조1000억원을 감액한 내년도 예산안을 거대 야당이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정국의 긴장이 가팔라지고 있다.
김영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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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감사원·경찰 등 3대 사정기관의 특정업무경비·특수활동비(특경·특활비) 678억원과 대통령실 특활비 82억원 전액을 삭감하고, 정부 비상금 예비비(4조8000억원)를 반쪽으로 줄인 감액 예산안이다. 지난달 29일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예결위에서 단독 처리한 이 예산안에 대해 박찬대 원내대표는 1일 기자간담회에서 “여당과의 합의가 불발되고 기획재정부가 증액에 동의하지 않아 부득이하게 법정시한인 2일 본회의에 감액 예산안을 상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실 특활비를 삭감했다고 국정이 마비되지도 않고, 검찰 특활비를 삭감했다고 해서 국민이 피해를 보지도 않는다”며 “여당에서 (이재명 대표) ‘방탄 예산’이라고 하는 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5년도 예산안 등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
그간 정부·여당 주도로 야당과 합의 없이 새해 예산안을 강행 처리한 적은 수차례 있었으나, 야당이 예산안을 단독 처리한 적은 없다. 정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국회에서 특정 항목 예산을 늘리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어, 이른바 ‘지역 민원 예산’을 늘리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이와 관련,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중앙일보 통화에서 “단독 예산안 처리 시나리오를 꽤 오랜 기간 검토해 왔다”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지금은 지역 예산 확보할 때가 아니다. 이해해 달라’라고 양해도 구한 상태”라고 말했다.
지역구 민원 예산까지 포기하면서 강공에 나선 민주당의 태도에 비춰볼 때 감액 예산안의 본회의 처리 시도가 단순한 엄포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실행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왜 이런 한국 정치사에 없는 전대미문의 시도를 강행하려는 걸까. 정치권에선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에 대한 탄핵소추에 이어 예산 버전의 사정기관 탄핵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 감사원장과 이 지검장 등에 대한 인적인 탄핵에 이어, 예산을 통해 윤석열 정부 사정 기관을 고사시키겠다는 '예산 탄핵'을 민주당이 도모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민심의 역풍 등을 의식해 '대통령 탄핵'을 공개적으로 주장하지 못했던 거대 야당이 탄핵소추권과 예산 두 축을 앞세워 대통령의 수족을 잘라내는 권력기관 무력화에 나섰다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검찰이 탄핵에 이어 특활비 삭감까지 반발할수록, 국민은 ‘칼자루를 쥔 이들이 아무 통제도 안 받으려 한다’고 명확히 인식하게 된다”며 “개혁 동력이 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감사원 등 권력 기관이 핍박하는 야당’ 프레임을 분명히 강화함으로써 윤석열 정부와 야당의 전선(戰線)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의도다.
이밖에 향후 진행될 여야 협상에 있어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목적이 깔려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 예산결산위원회 간사인 허영 의원은 이날 “예결위 감액안 (단독) 의결은 정부에 의해 무시되고 유린당한 국회 예산심의권을 철저하게 회복하는 과정”이라며 “예결위에서 사흘간 증액심사를 했으나, 이에 대한 정부의 답변은 없었다”고 말했다. 어차피 정부 측 예산 수정안이나 추경 등을 통해 여야가 다시 머리를 맞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선 제압의 효과를 노릴 수 있다는 계산인 셈이다.
김주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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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헌정사상 유례없는 막가파식 행태”라고 민주당을 비판했다. 추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예결위 날치기 처리에 대해 국민과 정부, 여당에 사과하고 즉각 감액 예산안을 철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선(先) 사과와 감액 예산안 철회가 선행되지 않으면 예산안에 대한 그 어떤 추가 협상에도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번 예산안을 바라보는 민심의 동향에 대해서도 양쪽은 극명하게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어느 국민이 검찰·대통령실의 특활비 삭감에 반대하겠느냐”(민주당 초선 의원) "지역 예산 증액까지 포기하는 이념·정쟁 정당엔 국민이 등 돌린다. 결국 자해극으로 끝날 것”(국민의힘 원내 관계자)의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국회 처리와 관련해 남은 변수는 국회 본회의 의사봉을 손에 쥔 우원식 국회의장이다. 우 의장이 2일 본회의에 예산안을 올리지 않으면 멈췄던 여야 협상이 재개될 수 있다. 야당 핵심 관계자는 “우원식 의장 스타일로 볼 때 곧바로 처리하진 않을 것으로 본다”며 “이 경우 며칠 시간을 갖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야 입장이 워낙 강경하고 예산안 법정 기한(12월 2일)이 정해져 있는 탓에 곧바로 처리될 거란 전망도 적지 않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우 의장은 과거 국회의장과 다르게 할 때는 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만약 우 의장과 민주당이 2일 감액 예산안 처리에 나설 경우 여야의 강 대 강 대치는 극단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2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되는 검사 3명과 감사원장 탄핵 소추안이 4일 표결에 부쳐진다. 가결되면 서울중앙지검장과 감사원장이 동시에 직무 정지 상태가 된다. 민주당은 4일 본회의에서 해병대원 순직 사건 국정조사 실시계획서도 채택한다는 방침이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 재표결도 10일 국회 본회의에 오른다. 특검법이 부결되면 민주당은 상설특검도 발족할 계획이다.
이준한(정치학) 인천대 교수는 “특활비 삭감은 검찰·감사원이 자초한 측면이 있으나, 민주당의 이례적인 예산안 처리 역시 ‘이재명 구하기’ 의도로 비칠 수밖에 없다”며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된 민주당과 검찰의 전쟁이 한국 정치를 극단으로 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현석·윤지원·김정재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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