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겸 코차이경제금융연구소장 정유신 |
미국의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공급망 강화전략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오히려 커져 관심의 대상이다. 중국은 올해 1~10월간 대아세안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10.8% 증가해 중국 총무역액의 15% 이상 된 데다 4년 연속 아세안의 최대 교역국으로 등극했다.
특히 IT·디지털부문에서 중국의 입김이 두드러진다는 평가다. 예컨대 올해 3분기 아세안 8개국(10개국 중 브루나이, 미얀마 제외)의 스마트폰 생산 톱 7개사 중 5개사가 오포(Oppo), 샤오미(Xiaomi)를 비롯한 중국 기업으로 점유율 합계는 무려 76%에 달했다. 전자상거래도 마찬가지다. 아세안 6개국(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베트남)의 전자상거래 1~3위 점유율(2023년)을 보면 싱가포르 3위 아마존과 인도네시아 3위 부칼라팍(Bukalapak)을 빼면 모두 중국의 영향권에 있는 기업이었다. 예컨대 6개국 모두 1위인 쇼피(Shopee)는 모회사 시(Sea)의 대주주가 텐센트(지분 18.7%)고 2, 3위 라자다(Lazada)와 틱톡(TikTok) 역시 각기 중국 업체인 알리바바와 바이트댄스의 자회사다.
왜 이렇게 아세안 IT·디지털부문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셀까. 전문가들은 아세안 경제·사회의 IT·디지털화를 중국의 스마트폰이 주도했다는 점을 첫 번째 이유로 꼽는다. 2010년대 들어 싼 중국 스마트폰이 급속히 보급된 데다 이를 기반으로 전자상거래, 간편결제 등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한 게 주된 요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값싼 중국 브랜드들이 시간이 경과하면서 품질도 향상돼 초기의 영향력을 더욱 키운다는 평가다.
둘째, 아세안에 핵심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할 때 중국 기업이 대거 참여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해저케이블엔 HMN테크놀로지와 차이나유니콤(China Unicom), 데이터센터 건설에는 화웨이 클라우드와 알리바바 클라우드, 5G 구축엔 화웨이와 ZTE(중싱통신) 등이 이름을 올렸다. 그 결과 2020~2023년 아세안에서 중국 기업이 건설한 데이터센터 수는 싱가포르 14개, 인도네시아 11개로 총 43개다. 셋째, 디지털인재 양성도 빼놓을 수 없다. 중국 기업들은 아세안 각국의 공공기관, 지자체, 대학과 제휴해 현지 인재들에게 IT·보안·전자상거래 등과 관련된 교육을 지원, 2023년 말까지 8만명을 교육했다. 또 화웨이는 2019년엔 태국, 2020년엔 말레이시아, 2021년엔 자카르타에 '화웨이 아세안 아카데미 엔지니어링 인스티튜트'(Huawei ASEAN Academy Engineering Institute)를 설립·운영 중이기도 하다.
이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와 달리 아세안 국민과 정부의 중국 기업에 대한 인식과 호응도는 높은 편이다. 미국 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국에 대한 호감비율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에서 60~70%로 일본의 10%보다 훨씬 높다. 특히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선 중국에 대한 호감도가 67%와 64%로 미국(48%, 35%)을 크게 앞지른다. 아세안 정부들의 반응도 경제발전엔 IT·디지털기술 활용이 필수라는 인식이어서 중국 업체의 진출과 협력에 대해 상당히 수용적인 입장이라고 한다. 트럼프 2.0 시대엔 더욱 강력한 미중 무역갈등과 공급망 디커플링이 예상된다. 앞으로 중국 정부의 대응과 특히 아세안 지역에서 미중의 '한판 경쟁'이 관전포인트고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대응도 세심한 시나리오 분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장 겸 코차이경제금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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