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개발 현장 가보니
김남건 Q9태스크 책임이 한 대를 높이 들어올리자 로봇은 자연스러운 여성의 목소리로 “어지러워요. 내려주세요”라고 말했다. 지켜보던 같은 팀 우종진 리더가 “얼굴에 눈이 빙글빙글 도는 것을 표현하면 어떨까”라고 했다. 사용자들이 좀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날 찾은 LG전자 가산R&D캠퍼스에는 50여 명의 Q9 개발자들이 상품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작업에 한창이었다. 지난 1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4)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Q9은 내년 출시를 앞두고 있다. CES나 세계 가전박람회(IFA) 등 공식 행사를 제외하고 Q9을 외부에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이곳에서 만난 이향은 LG전자 상무는 “기술적으로는 거의 완성이 됐고, 사용자와 정서적 교감을 할 수 있게 감성을 불어넣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과 교감하는 집안일 도우미
Q9의 핵심 역할은 AI(인공지능) 홈의 허브다. AI 기능이 탑재된 냉장고, 세탁기, TV 등 가전과 연동돼 각종 기능을 제어한다. “재미있는 오락 영화를 찾아서 틀어줘”라고 명령하면 TV를 켜고 영화를 검색해 틀어주는 식이다. “오늘 기분이 좀 처지네”라고 말하면 Q9이 각 가전에 지시해 기분 전환을 위한 음악을 틀고, 조명도 조절해 준다.
개발팀이 Q9의 몸체보다 뇌를 키우는 데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하드웨어는 이미 완성 단계이기 때문이다. 두 다리로 서 있는 형태인 Q9은 다리 하나에 바퀴가 하나씩 달려있다. 전원을 끄면 서 있을 수 없지만, 전원을 켜면 스스로 균형을 잡아 안정적으로 돌아다닌다. 가만히 서 있을 땐 앞뒤로 리듬을 타며 움직인다. 움직일 때 무게 중심의 변화를 실시간 감지해 균형을 잡아 주는 ‘중력보상 장치’ 덕분에 가능하다. 그렇다고 쉬운 기술은 아니다. 지난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에서도 다른 회사에서 집사용 로봇을 선보였지만, 인간의 모형과 사뭇 다른 삼각형 몸체로 중심을 잡거나 보조 바퀴로 균형을 잡는 식이었다. 우종진 리더는 “두 다리로 움직여야 장애물을 피하거나 가벼운 턱을 넘어서면서 집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사람들도 좀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현재 키는 350㎜,몸무게는 5㎏ 정도인데, 내년 출시될 때 변동될 수는 있지만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박상훈 |
◇GPT4-옴니 탑재... 이야기 창작도
Q9은 요즘 기능이나 겉모습뿐 아니라 정서적으로 인간과 좀 더 가까워지는 능력을 키우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파트너십을 맺고 오픈AI의 인공지능 ‘GPT4-옴니’를 탑재했다. 눈길을 끄는 기능 중 하나는 이야기 창작이다.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돌발 주제를 던져도 매끄럽게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이날 태블릿PC에 돼지를 그린 뒤 이야기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하자, Q9은 “사과 숲 한가운데 항상 행복하게 뛰어다니는 돼지가 살았습니다. 어느 날 뒤돌아보니 사과가 모두 사라진 것을 발견했어요. 돼지는 슬픔에 잠기지 않고 친구 토끼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습니다…”라며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기자 이름으로 삼행시도 뚝딱 만들어냈다.
김동희 LG전자 H&A 경험기획팀장은 “아직은 30초 분량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데 남은 기간 이야기 창작 능력도 키울 것”이라며 “이야기를 듣는 아이가 6세인지, 10세인지에 따라 이야기 수준도 달라지게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집에서 몇 주간 테스트를 끝낸 뒤 회사로 가져가려 하니 아이가 Q9을 껴안고 울더라”라며 “아이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인간과의 교감 능력은 상당히 끌어올린 것 같다”고 전했다.
◇2030년 가정용 로봇 시장 60조원 전망
Q9의 정식 상품 명칭과 가격은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가격은 수백만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LG전자의 ‘가전 구독’과 연계해 소비자들의 부담을 낮춘다는 계획이다.
내년엔 Q9 외에도 삼성전자의 볼리, 중국 하이센스의 ‘할리’ 등 여러 집사 로봇이 출시될 예정이다. 로봇 청소기 등 특정 목적의 가정용 로봇 외에 인간의 비서나 집사 역할을 해줄 로봇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드마켓에 따르면, 집사 로봇 등에 힘입어 가정용 로봇 시장은 지난해 135억달러(약 19조원)에서 2030년엔 436억달러(약 60조원)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집사 로봇
집 안에서 인간을 대신해 세탁기, TV, 에어컨 등 가전제품을 제어하는 로봇. 생성형 AI 탑재로 단순한 가전 제어뿐만 아니라 일상 대화나 일정 관리 등 집사나 비서 역할까지 한다.
[윤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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