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이 흔들리면 다른 쪽도 흔들리고…한쪽 강해지면 같이 강해져
윤과 한, 이의 삼각 권력 구도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독특한 현상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월 23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중앙포럼에서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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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열흘 천하.”
국민의힘 친윤계(친윤석열계)가 지난 11월 15일부터 25일까지 열흘간 집요하게 한동훈 대표를 공격했던 기간을 빗대 표현하는 말이다. 지난 11월 15일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1심 유죄 판결이 나왔고, 열흘 뒤인 11월 25일에는 이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 1심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한 대표 가족 이름으로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비난한 글이 올라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 사이 친윤계는 한 대표에 대대적인 공세를 퍼부었다. 11월 15일 이 대표의 유죄 판결 후 한 대표는 이 대표가 11월 25일 법정 구속될 것이라 예상할 정도로 의기양양했다. 하지만 민주당을 압박하는 그 순간, 칼은 당 내부의 친윤계로부터 들어왔다. 친윤계는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한 대표의 입장 해명을 요구하며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지난 11월 25일 이 대표의 위증교사 사건 1심 판결을 앞두고 김민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공개 석상에서 한 대표를 공격할 정도였다.
야당 ‘김건희 특검’ 압박이 한동훈에 도움
지난 11월 25일 이 대표의 무죄 판결 후 상황은 달라졌다. 친윤계보다 친한계(친한동훈계)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는 형국이 됐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이재명 대표는 유죄 판결 후 위기에 처했는데, 한동훈 대표 역시 수세에 몰렸다”면서 “그런데 이 대표가 25일 무죄 판결 후 대표 체제를 더 굳건히 하면서, 역설적으로 한 대표 역시 수세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고 해석했다. 한 대표와 이 대표, 두 정치인이 희한하게도 한쪽이 흔들리면 다른 한쪽이 흔들리고, 한쪽이 강해지면 다른 한쪽이 역시 강해지는, 묘한 적대적 공생관계에 놓여 있음을 열흘 동안의 상황이 입증시켜준 셈이다.
한 대표가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잡은 뒤 이·한 두 대표는 ‘적대적 공생관계’였다. 사법리스크에 처한 이 대표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검사 출신인 한 대표가 필요하고, 이 대표로서는 정치 초보인 한 대표가 다른 여권 차기 대권주자보다 상대하기 쉽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재명 대표를 상대하라고 전대에서 국민의힘 당원들이 63%에 이르는 지지를 한 대표에게 보낸 뜻이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윤계 내부에서는 소위 ‘김옥균 프로젝트’가 언급됐다. 한 대표가 대표에 선출되더라도 친윤계가 기회를 틈타 한 대표 체제를 무너뜨린다는 계획이 정보지 등을 통해 흘러나왔다. 이 프로젝트는 김옥균의 갑신정변이 ‘삼일천하’였던 사실을 빗댄 것이다. 이 대표의 1심 판결이 잇달아 나오던 열흘간은 친윤계에서 한 대표를 쫓아내려던 1차 시도로 해석된다.
원래 당원 게시판 사태는 한 대표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지난 11월 5일 당원 게시판에 한 대표와 부인, 장인 등 이름으로 윤 대통령 부부를 비난한 글이 올라온 사실이 알려졌다. 한 대표 명의 글에 대해서 한 대표는 ‘동명이인’이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가족 명의 글에 대해서는 분명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 대표는 “없는 분란을 만들어 분열을 조장할 필요는 없다”(11월 14일), “위법이 있다면 철저히 수사되고 진실이 드러날 것”(11월 21일) 등으로 친윤계의 공격을 피해 나갈 뿐 정작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친윤계로서는 ‘뭔가 있긴 있구나’라는 의구심을 가질 만하다.
하지만 친윤계가 더 이상 집요한 공세를 펴기는 어려워 보인다. 여권 내부에서는 친윤계가 힘을 얻을 수 있지만, 당 밖의 사정은 다르다. 당장 민주당은 11월 말로 계획한 김건희 여사 특검법 재의 표결을 오는 12월 10일로 미뤘다. 김 여사 관련 특검법의 세 번째 국회 재의 표결에서 친한계 의원들의 이탈을 최대한 노리는 전략이다. 두 번째 투표에서 국민의힘 의원 4명의 이탈을 확인한 만큼 이제 4표만 더 이탈하게 되면 특검법이 통과된다는 노림수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힘에서는 당내 이탈표를 막기 위해 ‘무기표 기권 투표’를 하는 방안이 거론될 정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대통령실에서는 정진석 비서실장이 지난 11월 25일 국민의힘 의원과 오찬 회동을 하며 결속을 다지기도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1월 28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발언하는 동안 김재원·김민전 최고위원(왼쪽 두 번째와 첫 번째)이 대화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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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8일 야당 주도로, 김 여사 관련 ‘상설특검’ 후보 추천에서 여당을 배제하는 국회 규칙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김 여사 특검과 관련한 야당의 압박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을 둘러싼 친윤-친한 충돌에서 한 대표에게는 뜻밖의 도움이 됐다. 김철현 경일대 특임교수(정치평론가)는 “민주당이 끊임없이 김건희 특검법안을 국회에서 내는 한 용산 대통령실은 김 여사 의혹이라는 아킬레스건을 보호하기 위해서 한 대표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친윤계는 민주당이 김 여사 특검법안을 내지 않거나, 아니면 친한계 의원이 10명 이하이어야 하는 조건을 갖춰야 한 대표를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원 게시판 충돌은 ‘진실 논란’보다 ‘김 여사 문제 처리’가 더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당 내부에서는 한 대표의 사과를 요구하면서도 친윤계의 과도한 공격에 대해서도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야 투쟁의 마지노선에 있는 한 대표를 흔드는 순간, 김 여사 특검안은 물론 ‘채 상병 특검안’의 방어선까지 무너질 수 있다는 논리다. 보수 언론이 최근 국민의힘 내분을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대표 측에서는 당원 게시판 논란이 제기된 데에는 수사기관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까지 있다며 음모의 진원지를 용산 대통령실로 보고 있다.
지난 11월 28일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한 대표가 모종의 결단을 했다는 설이 흘러나왔다. 한 친한계 의원을 통해 한 대표가 김 여사 특검법 재표결을 앞두고 ‘부결표다, 찬성표다 얘기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한 대표의 입장에 다소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한 대표는 이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김 교수는 “한 대표로서는 당원 게시판 논란에 대해 용산 대통령실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그럼 김 여사 특검법은 어떻게 할 거냐’라는 최후의 카드를 향후 슬쩍 떠보는 행동을 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 정치인이 삼각 적대적 공생관계로 얽혀
당 안팎에서는 한 대표가 이준석 전 대표처럼 쉽사리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을 언급하고 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전 대표처럼 당대표를 고사시키는 방식으로 물러나게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친윤계가 당원 게시판 논란에서 우위를 갖고 있다면, 친한계는 김 여사 논란에서 약점을 쥐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당원 게시판 충돌도 최소한 김 여사 특검법안 재표결이 이뤄지는 12월 10일까지는 소강상태로 갈 것이며, 그 이후에도 양쪽 간 긴장관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홍 소장의 주장이다. 홍 소장은 “당원 게시판 싸움의 승자가 있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번 친윤-친한 충돌에 있어서 김 교수는 한 대표가 우위에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용산은 한 대표를 이길 수 없다”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친윤계가 한 대표를 물러나게 하는 것은 김 여사를 특검의 손에 넘기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야당의 제물로 바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윤 대통령은 결코 선택할 수 없는 카드”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대결은 장기전으로 가게 되며 결국 승자는 한 대표가 되리라 전망했다. 최근 ‘명태균 사태’도 한 대표에게는 유리한 국면으로 흘러가고 있다. 윤 대통령 부부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인물인 명씨를 둘러싼 의혹이 매일 폭로되고 있다. 한 대표의 잠재적인 경쟁자로 주목받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명씨 의혹에 얽혀들었다. 명씨가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 오 시장을 도우려고 미공표 여론조사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가성 여부를 둘러싼 폭로 과정에서 차기 대권주자로서 오 시장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었다. 친윤계가 한 대표의 대안으로 그나마 기대하고 있던 차기 대권주자가 곤궁에 처하게 된 셈이다. 김 교수는 “친윤계가 아무런 대안도 없이 차기 대권주자인 한 대표를 비판하게 된다면, 이 역시 자충수를 두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의 미래 역시 그렇게 창창하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엄경영 소장은 “당원 게시판 논란은 지금은 승자가 누구인지를 밝히지는 못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한 대표에게는 결정적인 약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차기 대권주자들이 추후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 소지를 남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1월 15일과 25일 사이, 윤 대통령과 한 대표, 이 대표를 둘러싼 권력 구도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갔다. 지난 11월 5일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된 후 대외 정세도 국내 정치에 영향을 크게 미쳤다. 거기에다 이 대표의 지난 11월 15일 무죄 판결은 윤 대통령에게 더 이상 한 대표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신호를 줬다. 이 상황에서 당원 게시판 논란이 벌어졌다는 것이 엄 소장의 주장이다. 엄 소장은 “그동안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정면으로 맞붙게 되면 윤 대통령이 지는 구도에서 한 대표를 대신 내세웠는데, 이 대표가 유죄를 받게 되면서 그 필요성이 줄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 11월 25일 무죄 판결은 다시 세 정치인의 역학 구도를 원래 상태로 되돌려 놓았다. 엄 소장은 “현 상황은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적대적 공생관계를 갖고,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역시 서로를 물리고 물린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다”면서 “한 대표와 이 대표 사이 역시 한 사람이 흔들리면 다른 사람도 흔들리게 되는 적대적 공생관계에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세 정치인이 삼각형 구도의 적대적 공생관계로 얽힌, 불안한 국면이 겨우 지탱되고 있다는 것이다. 홍형식 소장은 “차기 대권을 둘러싼 정치적 역학관계의 모든 불확실성은 이 대표의 판결에서 비롯된다”면서 “이 대표의 판결이 내려지게 되면 윤 대통령이든, 한 대표든 확실한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며 여권 충돌의 향후 승부를 전망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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