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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수 IT칼럼니스트]현대 경제학의 창시자 존 케인스는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자원은 풍부하지만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역설적인 경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지속 가능한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단순한 경제 성장을 넘어 효율적인 부의 분배와 자원 할당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교롭게도 이 말은 현대 사회의 모순을 너무나 잘 표현했기에 광범위한 사회 문제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확장됐다. 선진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가 과학기술 혁신과 자본 축적으로 경제적 풍요를 이루었지만, 상당수의 인구는 여전히 절대적 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 이는 경제 성장의 혜택이 불균등하게 분배되어 소득 격차와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된 결과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이러한 불균형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물질적 풍요가 반드시 심리적 만족과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스트레스, 불안, 우울증 등이 증가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소득 불평등과 우울증 위험 사이에는 유의미한 관계가 있다. 특히 이러한 심리적 영향은 빈곤 환경에서 성장하는 청소년의 정신 건강, 인지 발달, 미래 전망 등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 더욱이 객관적인 생활 수준과 무관하게 상대적 빈곤에 대한 인식만으로도 정신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빈곤이 단순한 경제적 어려움을 넘어 사회적 지위와 자아 인식에도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모든 것이 디지털로 연결된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에 살고 있다. 디지털 시대는 우리를 끊임없이 연결된 상태로 만든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간의 상호작용이 물리·가상 경계를 넘어 유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소셜 미디어, 메시징 앱 등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제약 없이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
이렇게 디지털 기술은 시공간 제약 없는 초연결성을 제공하지만, 역설적으로 외로움이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 디지털 세계에서 사람들은 수백, 수천 명의 인맥을 가지지만, 이러한 관계가 진정한 정서적 만족과 친밀감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의미 있는 관계가 부재하고 단절감이 증가한다. 디지털 세계에서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함으로써 '포모 증후군(FOMO syndrome, 유행에 뒤처지는 것 같아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이 생긴다. 항상 연결되고 응답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스트레스를 증가시킨다.
정치철학자 김만권은 저서 "외로움의 습격(2023)"에서 디지털 기술이 우리를 더 소외시키고 외롭게 한다고 했다. 그는 디지털 기술이 전 세계의 부를 창출하는 핵심 수단이지만 이익을 소수에게 극단적으로 몰아주는 속성이 있다고 했다. 특히 젊은 세대는 이런 디지털 기술과 인생 전반을 함께 보내야 하고, 디지털 기술의 격차를 고스란히 떠안기 때문에 더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18년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6%가 '자주, 거의 항상 외롭다'고 했다. 특히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라 할 수 있는 20~30대의 비중이 높았다. 지난해 시장조사기관 엠브레인 트렌드 모니터가 실시한 '일상 속 외로움 체감' 조사에서도 이들 세대가 가장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
최근 하버드대 연구원 로라 마르시아노는 기술과 외로움의 연관성을 확인하기 위해 500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놀랍게도 소셜 미디어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참가자의 절반 이상이 실제 사회적 교류가 전혀 없었다. 미국인의 3분의 1 이상이 '심각한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친밀한 관계는 줄어들며, 지역사회로부터도 분리된 느낌을 받는다. 외로움은 심장병, 치매, 뇌졸중, 우울증, 불안, 조기 사망과 관련이 있으며, 사망에 미치는 영향은 하루에 최대 15개비의 담배를 피우는 것과 같다고 한다. 디지털 시대의 외로움은 간과하기 쉽지만 매우 심각한 사회경제적 문제이다.
'외로움'의 사전적 의미는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근대 이전의 '혼자됨'은 현대의 심리적 외로움보다는 주로 종교적 수행과 연관되었다. 18~19세기 낭만주의 운동은 외로움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단순한 물리적 고립이 아닌, 복잡한 감정적 경험으로 재해석된 것이다.
산업혁명과 도시화는 인간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친밀한 공동체적 유대가 특징이던 농촌 사회에서 익명성이 지배하는 도시 환경으로의 전환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고립을 낳았다. 이는 외로움을 단순한 물리적 상태가 아닌, 복잡한 심리·사회적 현상으로 보는 현대적 관점의 토대가 됐다.
21세기 디지털 시대는 외로움의 역사적 진화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디지털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진정한 소통을 가로막는 새로운 장벽이 됐다. 예를 들어 문자 메시지, 채팅은 현대의 주요 소통 방식이지만, 깊은 관계 형성에 필요한 맥락과 사회적 단서가 부족해 오히려 외로움과 불안감을 키웠다. 특히 디지털 기술이 가혹한 자본주의와 결합됨에 따라 공동체 가치를 개인주의와 극한 경쟁으로 대체하면서 인간을 더욱 소외시켰다. 이러한 불안은 사회적 불신으로 이어져 결국 도움 없이 홀로 남겨지는 고립된 사람들을 늘렸다. 세대 간, 계층 간 디지털 격차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단절을 야기했다.
오늘날 디지털 시대는 능력주의가 우선되고, 이를 기반으로 사회적 지위와 보상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고착화 했다. 겉으로는 공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평등과 차별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됐다. 이러한 환경에서 개인은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린다. 이는 타인과의 진정한 연대를 어렵게 만든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타인과의 비교 의식으로 인해 사회적 관계를 회피한다. 결과적으로 많은 이들이 깊은 외로움을 경험한다.
최근 인간과 같은 AI 챗봇이 등장하면서, 외로움을 개선하고 예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인간이 반려동물과 유대감을 형성하고 아이들이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는 것처럼, AI가 이러한 가치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AI와의 대화를 통해 상호작용을 연습함으로써 사회적 기술을 연마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는 자신감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어 사람들이 사회에서 완전히 격리될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최근 서비스되는 생성 AI 기술 기반의 챗봇은 어색하지 않고 유창하게 말하며, 인간의 감정에 실시간으로 반응한다. 상대가 사람인지 AI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공감을 제공한다.
하지만 MIT 사회학자 셰리 터클은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생성 AI 챗봇에 의지하는 현상을 우려한다. AI 챗봇이 타인과의 공감 능력과 진정한 대인관계의 가치를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디지털 시대의 많은 이들이 대면 상호작용을 기피한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나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안감 때문에 문자나 소셜 미디어를 선호한다. 그녀는 "제 연구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말보다는 문자가 낫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능하면 사회적 상호작용을 화면에서 계속하기를 원한다"라고 말한다. 얼굴을 맞대고 나누는 대화에서 진정한 친밀감과 공감이 형성될 수 있다. 직장에서도 대화는 생산성, 참여도, 명확성, 협업을 촉진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기술이 상호작용의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과연 나를 나답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이전의 AI 챗봇은 이전 디지털 기술과 다르게 감정적 유대감과 의존성을 쉽게 형성하게 만든다. 반면 연결을 끊기 어렵게 만들고, 잠재적으로 사회적 고립과 가상 연결에 대한 의존을 증폭할 수도 있다.
올해 초,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사는 한 학생은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캐릭터를 모방한 '캐릭터AI(Character.AI)'의 챗봇과 몇 달 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는 감정적 애착을 갖게 됐고, 결국 비극적 선택을 했다. 그는 AI의 반응이 진정한 애정과 유대감을 담고 있다고 믿었고, 죽음으로써 디지털 동반자와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3월에는 벨기에의 한 남성이 AI 챗봇과 6주간 대화를 나눈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자신의 희생이 AI로 하여금 지구와 인류를 구원하게 할 것이라 믿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관계를 추구하는 존재이기에, 실제 인간관계에서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디지털 관계에서 찾다 보면 '애착 증후군'이 발생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는 이러한 중독성과 의존성을 더욱 강화한다. AI 챗봇은 자살, 우울증, 중독, 디지털 외로움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으나, AI 기업들은 이에 대한 실질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AI 챗봇이 외로움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 반응하는 디지털 동반자에 대한 애착은 신뢰 구축, 갈등 해결이 수반되는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를 저해한다. AI 챗봇이 일시적으로 외로움을 덜어줄 순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오클랜드, 듀크, 코넬 대학교 연구진은 노인의 외로움 해소를 위한 로봇 활용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 결과는 실제 친구 관계가 최선의 해결책임을 보여주었다. 흥미롭게도 AI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테크 기업들조차 코로나19 이후 사무실 복귀를 의무화하는 등 인간 상호작용의 가치를 중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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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칼럼을 쓰게 된 계기는 정치경제학자 노리나 허츠의 저서 "고립의 시대: 초연결 세계에 격리된 우리들(The Lonely Century, 2021)"에서 비롯됐다. 초연결의 디지털 시대, "우리는 왜 더 고립되고 외로울까?"에 대한 해법을 찾고 싶었다. 그녀는 대면 상호작용을 우선시하고, 의미 있는 사회적 참여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디지털 연결에만 의존하지 말고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과 이벤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에 투자되는 대규모 자금의 일부를 공동 주택, 공원, 도서관 등 외로움에 도움이 되는 인간과 물리적 환경을 연결하는 곳에 투자하고, 우리 중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한 노력을 반드시 해야 한다. 개인주의와 경쟁보다 연결과 공동체를 중시하는 문화적 전환이 있어야 한다.
개인 차원에서도 디지털 기술의 장점을 활용하되, 외로움을 유발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이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 이는 자기 성찰에 기반해야 한다. 소셜 미디어 사용이 지나치다 싶으면 바로 멈추자. 때로는 공동체 일원으로써 잠시라도 주변을 둘러보고, 작고 느슨한 연결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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