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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 (수)

이슈 증시와 세계경제

[기자수첩]밸류업 역행하는 한국증시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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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트렌드 자체는 이미 주주자본주의를 넘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증시는 아직 주주자본주의에도 못 가고 있어요."

우리나라 가치투자 1세대로 꼽히는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은 얼마 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한국 증시의 저평가 원인에 대한 질문에 여러가지 문제들을 짚었는데 그 중에서도 지배구조의 후진성 문제가 크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주주자본주의란 말 그대로 회사의 주식을 가진 주주들을 중심으로 자본시장이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주주가 곧 회사의 주인이라는 의미인데 우리나라 자본시장에서는 잘 통용되지 않는다. 주주의 이익과 반하는 회사 경영진의 결정이 빈번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최근 몇 달 사이만 해도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간 포괄적 지분교환,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HL홀딩스의 자사주 재단 증여 등 주주의 이익과 반대되는 결정을 한 사례가 수두룩하다. 정부가 한국 증시의 밸류업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는데도 상장사들의 행보는 오히려 밸류다운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로 주주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를 지적한다. 회사의 지분이 최대주주에 집중돼 있고 이로 인해 회사측에 우호적인 인사들로 이사진이 꾸려지면서 이사회의 독립성에도 문제가 생긴다는 지적이다.

최근 이슈로 떠오르는 건 상법382조의3에 명시된 이사의 충실의무가 회사에 국한되는게 맞느냐는 것이다. 이사회 의사결정이 회사에는 이익이 되지만 주주들에게는 손실을 끼치는 경우 법적책임이 없다는 뜻이다.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상법 조항 때문에 소액주주들이 회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겨도 배상금을 받기 어렵다"며 "이런 얘기를 해주면 대부분 소송을 포기한다"고 말했다.

상법개정에 대한 재계와 산업계의 우려는 이해가 간다. 소송남발로 인한 경영권 침해나 과도한 주주행동주의 가능성이 가장 큰 문제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최근 글로벌 자본시장에서는 "주주자본주의가 만능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중이다. 하지만 한국은 주주자본주의에라도 다가서는 노력을 해야하는 단계다. 한국증시 밸류업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깊고 넓은 고민이 필요한 때다.

김사무엘 기자 samue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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