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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범죄·코믹·판타지 버무렸다…볼리우드식 K드라마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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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사제2



‘열혈사제2’는 권선징악을 통한 해피엔딩이야 물론이고, 비범한 인물도 당연히 나온다. 김해일만 비범한 게 아니라, 쏭싹도 비범한 무술가고, 요한도 손에서 전기가 나온다. 젊은 신부는 아역배우 출신이고, 수녀는 타짜 출신이다. 장르혼합이야 말해 뭐하겠나. 전작이 그러하듯, 범죄, 액션, 코미디, 히어로 장르가 결합한 데다 호러, 좀비, 판타지까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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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열혈사제2’의 김해일 신부가 소원을 들어주는 요술램프 ‘지니’로 변신한 판타지 장면. 에스비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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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사제2’가 순항 중이다. 5년 전 큰 성공을 거두었던 ‘열혈사제’ 팬들이 반가움과 의리로 시청률을 사수 중이다. 전작은 40부의 대작이었다. 시즌2는 20부로 기획되었다가 12부작으로 축소되었다. 국정원 요원 출신 가톨릭 사제가 현실의 악과 맞서 싸운다는 전작의 세계관과 멤버들을 계승하면서, 주무대를 부산으로 옮겼다. 그리고 코믹과의 혼종성을 강화하였다. 아뿔싸,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코믹과 혼종성이 지나쳐서, 극의 집중력이 떨어진다. 인물에 대한 묘사도 납작해져서 캐리커처화 되어버렸다. 그 결과 전작에서 느꼈던 카타르시스도 선악에 대한 성찰도 없는 패러디 만발한 분장쇼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열혈사제2’는 국내 최초의 인도 영화식 ‘마살라 드라마’로 꼽힐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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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열혈사제2’의 김해일 신부와 구자영 형사가 상대를 겁주기 위해 조커와 할리퀸으로 분장한 장면. 에스비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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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화된 마약, 고발인지 유머인지



‘열혈사제’의 미덕은 코믹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현실의 악을 성실하게 그렸다는 점이다. 검경, 정치권, 사업가가 결탁한 형태의 ‘적폐 카르텔’이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되었다. 이들은 복지재단을 통한 돈세탁을 시도하다가 이에 방해되는 이영준 신부를 죽이고 성폭력 누명까지 씌웠다. ‘열혈사제2’가 고발하는 현실도 만만치 않다. 검경과 마약조직이 유착된 ‘마약 카르텔’과 마약의 대중화를 그리며, 대한민국을 “겉으론 뻔지르르한 민주주의 법치주의 국가인데, 속은 남미만큼 썩은” 상태로 묘사하다니, 스케일과 심각성이 엄청나지 않은가.



하지만 디테일이 너무 떨어진다. 마약조직은 대략 우스꽝스럽게 묘사된다. 조직 수괴 김홍식은 그럴듯하게 무게를 잡지만, 그 아래 조직원들은 전형적인 개그쇼를 펼친다. 그나마 남두헌 부장검사 캐릭터와 서현우의 연기력이 악의 구체성에 무게를 실어준다. 남두헌 검사는 부산에서 경찰과 유착해 마약조직이 커나가는 것을 눈감아 준다. 대외적으로는 마약조직을 소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존 조직을 제거하고, 동남아에서 온 김홍식 조직을 키우는 중이다. 남두헌은 고위층 자제들의 마약 사건을 무마해주고, 관련 정보들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다. 그는 김홍식에게 농담처럼 “나를 대통령으로 만들어달라”며 정치적 야망을 드러낸다.



부산의 폐선박 안에 차려진 공장에서 마약이 만들어져 국내로 유통된다. 드라마는 가난한 노인이나 청소년들에게 저가 마약이 공급된 모습을 보여준다. 과거에 마약은 주로 영화 ‘사생결단’ ‘아저씨’ ‘아수라’ 등 느와르 장르에서 다루어졌다. 그러나 영화 ‘극한직업’ 이후 코미디에서 그리는 것이 이상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극한직업’에서 보여주었던 배달음식을 활용한 마약 유통이 괴팍한 상상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 결과 ‘열혈사제2’에서 주택가에서 마약을 배달받는 모습을 보아도 별로 놀랍지 않다. 마약 조직원들이 청소년들을 영입해 ‘볼보이’라고 부르며 건어물 봉지에 마약 소포장을 제습제처럼 집어넣게 하는 광경을 보아도, 그것이 유머인지 고발인지 알 수가 없다. 상황은 충격적이지만, 웃어야 할지, 놀라야 할지 몰라서 어리둥절할 뿐이다.



그래도 드라마가 그리는 마약 제조 장면은 흥미롭다. 영화 ‘아저씨’에선 납치된 아동이 마약을 만들었는데, ‘열혈사제2’에서는 가난한 노인들의 노동을 착취한다. 하기야 아이들은 없고 노인은 많으니, 일종의 ‘시니어 시프트’인 셈이다. 공장에서 죽은 노인을 집으로 옮겨놓고 방에서 자다가 죽은 것으로 위장해도, 검경만 부패하면 무연고 사망으로 처리해 화장해 종결해버릴 수 있다니, 독거노인의 죽음은 얼마나 가벼운가. 노인빈곤율은 높고 독거노인 인구는 계속 늘어날 사회에서 경각심이 높아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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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열혈사제2’의 구대영 형사가 동료형사들에게 미친 척을 하기 위해 푸바오로 분장한 장면. 에스비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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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 완성형 캐릭터들의 분장쇼



‘열혈사제2’가 놓치고 있는 점이 있다. 전작에서는 분노가 응축되고 터뜨리는 지점이 잘 조율되었다. 그렇기에 카타르시스가 더 잘 느껴질 수 있었다. 코믹과 액션과 범죄 사이의 간도 잘 맞았다. 티키타카와 패러디를 구사하더라도 적정선을 유지하여 몰입감을 방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열혈사제2’에서는 절제와 금도가 지켜지지 않는다. 분노가 응축되기 전에 쾌감이 너무 빨리 제시되며, 코믹이 너무 자주 맥을 끊으며 설레발을 친다. 그 결과 모든 인물이 개인기를 난사하며 설익은 콩트를 해대는 개그쇼를 보는 듯하다.



더 큰 문제는 드라마가 인물들에 대한 숙고 없이 인물을 평면화하고 소모품처럼 써먹는다는 점이다. 전작에서 인물들은 선악의 이분법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박경선 검사는 출세 지향적인 인물이었지만, 조금씩 마음이 움직여서 김해일 신부 편에 서게 되었다. 구대영 형사도 원래는 정의로운 형사였으나 동료가 죽은 뒤 겁에 질려 불의한 조직의 일원으로 시키는 대로 하며 살다가 차츰 정의의 편에 서게 된 인물이다. 쏭싹과 요한도 하루하루 무시당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다가, 김해일 신부를 만난 뒤 용기와 자신감을 얻고 자신의 힘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열혈사제2’에서 인물들은 ‘이미 완성형 캐릭터’이며, 기능적으로만 존재한다. 가령 쏭싹은 5회에 가서나 ‘마침 라오스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으로 김해일 신부의 부름을 받는다.



돌아보면 박재범 작가의 전작 ‘김과장’의 묘미도 경계에 선 인물의 변화에 있었다. 김과장은 ‘적당히 해 먹는’ 인간이었는데, “이건 좀 아니지 않나”라고 느껴서 정의의 편에 서게 되었다. 재벌 3세도 내내 반동 인물이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이건 진짜 아닌 것 같아서” 돌아서는 인물이다. 그의 작품에서 인간은 윤리적인 주체로 변화하는 입체적인 존재이기에 흥미롭다. 하지만 ‘열혈사제2’에서 아직 그런 캐릭터는 보이지 않는다. (전편에서 악의 편이었던 고자예프가 2편에선 고독성으로 이름을 바꾸고 김해일을 돕고 있지만, 이는 바뀐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일 뿐 그의 변화가 묘사되는 것은 아니다.) 선악과 능력이 정해진 인물들이 기능적으로 배치되어 온갖 분장쇼를 벌인들 무슨 재미와 감동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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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열혈사제2’의 한 장면. 에스비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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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마살라 드라마인가



‘마살라 영화’를 아는가. 한해에 1600편 이상 만들어지는 인도 영화는 두 부류로 나뉜다. 흔히들 알고 있는 군무가 나오는 상업적인 인도 영화를 ‘마살라 영화’라 부르는데, 전체 인도 영화의 25%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사회문제를 다루는 리얼리즘 영화로 ‘평행영화’라 부른다. 점점 제작 편수가 늘고 있다. 마살라는 힌디어로 ‘혼합 향신료’란 뜻으로, 마살라 영화는 뮤지컬부터 무협까지 온갖 장르가 뒤섞인 형태를 가리킨다. 마살라 영화는 영화 보기가 유일한 오락인 인도 서민들에게 영화 한편으로 온갖 장르의 재미를 맛보게 한 가성비 최강의 초장르로, 상영시간이 보통 3~4시간이다. 마살라 영화에는 4가지 요소가 들어있다. 권선징악, 장르혼합, 비범한 인물, 군무이다. 요즘 마살라 영화는 군무 장면이 다소 축소되는 추세다. 갑자기 웬 마살라 타령이냐고? 궁극의 혼종성을 비롯한 ‘열혈사제2’의 특징을 마살라 영화만큼 잘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열혈사제2’는 권선징악을 통한 해피엔딩이야 물론이고, 비범한 인물도 당연히 나온다. 김해일만 비범한 게 아니라, 쏭싹도 비범한 무술가고, 요한도 손에서 전기가 나온다. 젊은 신부는 아역배우 출신이고, 수녀는 타짜 출신이다. 장르혼합이야 말해 뭐하겠나. 전작이 그러하듯, 범죄, 액션, 코미디, 히어로 장르가 결합한 데다 호러, 좀비, 판타지까지 등장한다. 박경선이 자는 방에 귀신이 출몰한다. 고독성이 뜬금없이 좀비 흉내를 내며 물어뜯는다. 급기야 김해일이 지니가 되는 판타지 장면이 등장한다. 미친 짓을 위해 구대영이 푸바오로 분장하는가 싶더니, 패러디를 위해 김해일과 구자영이 조커와 할리퀸으로 분장한다. 김해일과 박경선이 접선하는 장소는 스티커 사진 방, 트릭 아트 전시장 등 갈수록 비주얼이 기상천외해진다. 심지어 성당의 뮤지컬팀이 준비 중이니, 기어코 뮤지컬 장면까지 집어넣을 기세다. 이렇게 되면 ‘열혈사제2’의 추구미가 무엇일지 짐작된다. 바로 마살라 드라마의 완성이다. 하기야 이상할 것도 없다. 드라마가 이미 러시아, 태국, 라오스 등 높은 다국적성을 보이며, 최근 세계 영화계의 관심이 인도 영화에 쏠리고 있는데다, 세계 영화계에서는 한국 영화와 인도 영화의 유사점이 많이 거론되고 있었다.



‘열혈사제2’는 전작의 가치와 매력을 계승한 작품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 최초의 마살라 드라마라는 실험적인 의미를 지닌다. 어쩌면 국내보다 외국에 더 많은 관객이 있을 수 있다. ‘열혈사제2’가 끝까지 한국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는다면 국내에서 마살라풍의 장르혼합이 더 많이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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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 | 대중문화평론가. ‘씨네21’ 영화평론가로 출발하여 티브이 드라마, 예능 등을 두루 평론한다. 인권·역사·여성·장애·인구·성·계급·권력 등 사회과학 전반에 관심이 많다. 원래 전공은 의학·보건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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