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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는 어떤 목적을 위해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부품들을 조립한 것이다. 괘종시계를 분해하여 안을 들여다보면 에너지를 만드는 태엽, 에너지를 전달하는 톱니바퀴, 에너지를 규칙적인 시간의 흐름으로 만드는 탈진기 등의 부품이 있다. 말도 시계처럼 부품들로 분해할 수 있다. 사물의 이름을 나타내는 ‘명사’와 사물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사’가 대표적이다. 명사와 동사를 조립하면 하나의 사건을 표현할 수 있다. ‘자동차가 달린다’, ‘사람을 만났다’,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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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동사에 ‘-음’이라는 도깨비방망이를 붙이면 명사로도 움직임을 나타낼 수 있다. ‘움직임’은 시간이 지나면 이내 사라져 버리는 것이건만, 마치 형체를 갖춘 사물처럼 만드는 것이다. 태엽이 시곗바늘이 된 형국이랄까? ‘걸음’, ‘도움’, ‘울음’, ‘웃음’, ‘잠’. 조금만 생각해 봐도, 이들은 형체가 없다. 그저 말이 만들어놓은 허깨비일 뿐.
이렇게 움직임을 명사로 만들면, 지갑에 카드와 지폐를 두둑이 넣어 다니듯이 마음대로 품고 다닐 수 있다. ‘걷다’라고 하면 다리를 움직여 앞으로 가는 움직임 하나를 나타내는 것으로 끝이지만, ‘걸음’이라고 하면 걸음과 관련된 각양각색의 움직임을 나타낼 수 있다. ‘걷다’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걸음을 내딛다, 걸음을 떼다, 걸음을 돌리다, 걸음을 잇다, 걸음을 멈추다, 걸음을 끊다.’
동사에 ‘-음’을 붙이는 건 자유지만, 그렇다고 그 모두가 ‘명사’의 자격을 얻게 되지는 않는다. ‘때리다, 먹다, 입다, 주다’에 ‘-음’을 붙여 ‘때림, 먹음, 입음, 줌’을 만들어 보아도 이들을 명사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빈 지갑으로는 멀리까지 갈 수 없으리.
말도 사람의 일인지라, 그 안에도 특권이 있다.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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