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추경호 원내대표, 김문수 노동부 장관 등이 참여한 가운데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노동약자지원법 입법발의 국민보고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가 든 손팻말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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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 사회정책부장
윤석열 대통령이 취약계층으로부터 ‘약자’란 이름마저 뺏고 있다. ‘노동약자’ 보호라는 명목으로 노동자를 구분 짓고, 취약 노동자들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주체가 아닌 국가의 보호가 필요한 객체로 만들고 있다.
마치 박완서의 소설 ‘도둑맞은 가난’을 보는 듯하다. 가난으로 가족을 모두 잃은 주인공 여공은 남자친구 상훈과 동거를 하며 연탄을 아낄 수 있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하지만 갑자기 사라졌다 나타난 남자친구가 사실은 가난을 체험하러 온 부잣집 도련님에다 대학생이란 사실에 치를 떨었다. “내 방에는 이미 가난조차 없었다. 나는 상훈이가 가난을 훔쳐갔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분해서 이를 부드득 갈았다.”
조문영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는 가난을 도둑맞는 현실이 여전히 펼쳐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 후 지자체에서 반지하 주택 세트장을 관광지로 만들려고 했을 때도, 강남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정치인이 스스로를 ‘무주택자’라 칭했을 때도 사람들은 가난을 도둑맞았다며 공분했다”(‘빈곤 과정’, 글항아리)고 했다.
정부와 여당이 노동개혁의 하나로 추진 중인 ‘노동약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법률’(노동약자 지원법) 제정 움직임도 같은 상황이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등을 ‘노동약자’로 호명하고, 소액생계비 대출이나 일·가정 양립 장려금 등 국가의 지원·보호 대상으로 만들려고 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취약계층을 ‘고용이 불안정하고 급여가 낮고, 때로는 위험한 상황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폭넓게 정의한다. 국내에서는 비정규직이나 미조직 노동자로 보다 넓은 의미로 쓰였지만, 이마저도 가사노동자, 이민노동자 등이 배제됐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런데 대상이 아주 협소한 ‘노동약자’가 등장해,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약자들은 약자 지위마저 잃을 지경이다. 동시에 기존 노조는 ‘노동강자’로 등극했다. 노동조합 부패를 ‘3대 부패’라고 하고 화물연대 파업 등 노조 저항에 강경 대응하며 대화나 타협에는 무관심했던 정부가 노동자들마저 구분 짓기를 하는 셈이다.
‘약자복지’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과다 진료’를 핑계로 가난한 이들의 의료의 최저선인 의료급여를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바꿀 계획이다. 가난해서 아프고, 그래서 병원을 자주 찾을 수밖에 없는데 이들의 비용 부담을 늘리겠다고 한다. 동시에 자꾸 병원을 찾아 사회에 부담을 주는 존재로 만들고 있다. 약자복지라지만 약자는 떼고, 복지만 남기는 꼴이다.
연금개혁 역시 정부는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해 그렇지 않아도 낮은 노후소득보장 기능을 더 낮추려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눈에 보는 연금 2023’을 보면 한국의 의무연금 소득대체율은 31.2%로 회원국 평균(50.7%)에 턱없이 못 미친다. 대신 줄어든 노후소득보장은 기초연금을 2027년까지 월 최대 40만원(현재 33만5천원)까지 올려 보충하겠다고 한다. 대통령 선거 공약인데다 최근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당연한 것인데도 큰 인심 쓰듯 한다. 노동력을 잃은 노인들을 시혜 대상으로만 보는 셈이다.
윤석열 정부의 지원은 실제론 부자에게 쏠렸고, 앞으로도 이어질 추세다. ‘부자감세’를 실행해 고소득자와 고액 자산가에게 혜택을 줬다. 앞으론 상속·증여세율을 인하하고, 금융투자소득세도 폐기할 계획이다. 임기 반환점을 앞두고서야 정부안을 내놓고, 처리를 채근하고 있는 연금개혁안에는 개인·퇴직연금 세제혜택을 크게 확대해 고소득자들이 더 이익을 보는 내용이 담겨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민생과 경제의 활력을 반드시 되살려 새로운 중산층의 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사회적 연대를 차단하고 빈곤층 추락 공포를 부풀려 노동자들이 쉼없이 일하도록 하는 식이 아닌지 의심마저 든다. 보편적 복지가 아닌 부분복지로, 노동자를 약자와 강자로 구분 짓는 모습에는 헌법(제34조)에 보장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물론 사회적 연대를 위한 고려는 전혀 없다.
이미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통합’이라는 단어를 한번도 꺼내지 않았을 때 예견된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어쩌랴. 임기 후반기 국정기조로 ‘양극화 해소’를 꺼냈으니 정책 방향을 알아서 바꾸거나,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뒤집길 바랄밖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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