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검사로 살아왔고 박근혜를 비슷한 혐의로 감옥에 보낸 사람이 자신도 매우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박근혜가 유죄선고를 받은 죄 중 하나가 공천개입인데, 명태균과 이준석 의원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김영선 전 의원부터 김진태 강원지사, 김태호 강서구청장 등의 공천에 개입했다고 한다. 자신은 검찰 출신이기 때문에 비슷한 짓을 해도 검찰이 봐줄 것이라는 오만인가? ‘명태균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하지만, 시기가 문제일 뿐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특검이 불가피해 보인다.
민생파탄, 친일외교, 민주주의 파괴 같은 정책적 문제부터 김건희의 국정개입, 윤 대통령의 공천개입 의혹에 이르기까지 ‘윤 대통령의 죄’는 끝이 없다. 내가 보기에, 진짜 큰 죄는 국정운영과 정치를 너무 엉망으로 해 물귀신처럼 더불어민주당까지 ‘망쳐’ 버린 것이다. 민주당은 국민들이 촛불항쟁으로 만들어준 정권을 탐욕과 무능, 부패 등으로 망쳐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5년 만에 정권을 내주고도 뼈를 깎는 쇄신은커녕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집단도취에 빠지고 말았다. 이번 총선에서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일사불란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이재명당’을 만들기 위해 공천에서 비명계를 집단학살하는 ‘비명횡사’를 저질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채 상병 사건 외압의혹 주인공을 호주대사로 임명해 출국시키는 등 독선으로 민주당에 171석이라는 압승을 선물했다. 공천학살을 해도 윤 대통령이 더 독선을 부려 압승을 하는데 민주당이 왜 혁신을 하겠는가? 윤 대통령은 ‘국정농단’을 통해 사실상 더불어민주당의 혁신을 막아왔다. 다시 말해, 그는 현재만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까지도 망쳐 버리고 말았다.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의 죄가 박근혜 못지않지만, 아니 더 중하지만, 박근혜와 달리 탄핵은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이다. 대부분 잊고 있지만, 박근혜 탄핵은 정의당, 민주당, 안철수의 국민의당뿐 아니라 국민의힘의 뿌리인 자유한국당에서 최소한 63명이 같이해 가능했다. 초당적 공감이 있었다는 뜻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은 민주당과 야당이 192석이나 의석을 가지고 있어 국민의힘에서 8명만 동참하면 되지만,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윤 대통령이 잘못했더라도 민주당 역시 탄핵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임기단축 개헌도 마찬가지다. 탄핵이나 임기단축 정도는 아니지만 특검도 비슷한 상황이다. 국회만이 아니다. 일반 국민의 경우도 박근혜 탄핵 때는 ‘진보개혁세력’만이 아니라 ‘중도층’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두 가지 때문이다. 촛불의 결과에 따른 허무주의다. 촛불항쟁이 출범시킨 민주당 정권이 5년 뒤 가져온 것이 기껏 윤석열 정권이라니? 다른 하나는 ‘윤석열 이후’를 상징하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등이다. 박근혜 탄핵 때는 민주당이 지금 같은 사법적, 도덕적 결함이 없었다. 이 대표의 사법적 문제 등은 중도층 등이 퇴진운동 참여를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이미 두 재판 중 한 재판 1심에서 유죄를 받았고 줄줄이 재판이 남은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길은 조기 대선으로 대법원 판결 전에 선거를 치르는 것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기에 중도층은 퇴진운동을 순수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집회에 파란 옷을 입지 말라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탄핵 등으로 ‘윤석열의 비극’을 빨리 끝내려면, 민주당이 도덕적·법적 문제, 1인지배체제 등에 대해 발본적 혁신으로 중도층과 일부 여당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아니라면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대립하며 그 덕으로 서로의 지지기반을 유지하는 ‘적대적 공생관계’ 속에 국정은 표류할 것이다. ‘윤석열 이후’도 문제다. 촛불항쟁을 말아먹고도 제대로 된 반성이나 혁신도 하지 않으면서 비명계가 움직이면 “제가 당원과 함께 죽일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협박이나 하는 ‘전체주의 정당’으로는 희망이 없다. 집권해봐야 자기들을 반대하는 국민은 “당원들과 함께 죽이겠다”고 나설 것 아닌가? 퇴진운동 못지않게 필요한 것은 민주당의 혁신, 아니 한발 더 나아가 촛불항쟁과 문재인 정부가 실패한 ‘(탈헬조선) 사회대개혁’이다.
손호철 서강대 정치학과 명예교수 |
손호철 서강대 정치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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