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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우크라이나 전쟁발 가짜뉴스에 돈 내야 할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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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우크라이나가 지난 20일 영국의 스톰 새도 미사일로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을 공격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진은 한 군인이 2018년 7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에어쇼에 전시된 스톰 섀도 미사일 앞을 지나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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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 | 국제부 선임기자



지난 21일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언론 브리핑 도중 휴대전화를 받았다. “탄도미사일 공격 보도에 대해 절대 언급하지 마라”라는 상대의 말이 마이크로 흘러나와 공개됐다. 앞서, 이날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공격했다고 발표했다. 전세계 언론들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실전에 사용된 것은 처음이라며, 러시아가 미국이나 유럽을 위협한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자하로바의 통화 내용은 러시아가 이를 확인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다음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가 쏜 것은 신형 중거리 미사일이라고 직접 밝혀, 전세계 언론을 머쓱하게 했다. 우크라이나의 대통령까지 나선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주장 직후에 서방의 한 당국자는 ‘과장된 주장’이라고 확인했다. 일부 언론 보도에서 이 당국자 확인은 취급되기는 했으나, 비중은 크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전세계 언론은 우크라이나발 ‘가짜뉴스’에 자진해서 낚인 꼴이 됐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놀아나는 언론에 뒤통수를 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가짜뉴스’가 홍수다. 특히, 북한군 파병 논란 이후 더욱 자심하다.



지난 24일 ‘아르비시(RBC) 우크라이나’라는 언론 매체는 군사 전문 매체라는 ‘글로벌 디펜스 코퍼레이션’을 인용해, 우크라이나가 지난 20일 영국의 스톰 섀도 미사일로 쿠르스크 지역을 공격해 북한군 500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미사일 개발 이후 아마 최대 전과가 분명할 것이다.



군사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 보도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알 것이다. 이게 가능하려면, 그 미사일이 러시아 방공망을 뚫고, 북한군 500명이 한데 몰린 곳을 타격해야 한다. 혹은 수백발의 미사일이 방공망을 뚫고 가서는 북한군 병사들이 있는 곳들을 족집게처럼 찾아서 타격해야 한다. 한국 언론들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말미에 근거나 정보 출처는 없다고 덧붙이기는 했다.



북한군이 러시아 영토인 쿠르스크뿐만 아니라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지역인 하르키우와 마리우폴까지 모습을 드러냈다는 시엔엔(CNN) 보도를 한국 언론들은 더 크게 받아 적었다. 이번에는 우크라이나 당국이 나서 이 보도를 부인했다.



사브리나 싱 미국 국방부 부대변인은 25일 북한군 500명 사망이나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영토 파병을 모두 확인할 수 없다고 사실상 부인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군에 대해 “우리가 앞서 그들이 그 지역(쿠르스크)에 있고 확실히 우크라이나군과 교전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 바 있다”고만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북한군은 “교전할 준비” 상태일 뿐이고, 아직 전투에 참전하지 않았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도 23일 “그들(쿠르스크에 주둔 중인 것으로 믿어지는 약 1만명의 북한 병사)이 훈련받고, 러시아 편제로 통합되는 방식을 근거로 하여, 그들이 곧 전투에 관여할 것으로 완전히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군이 현재까지 전투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는 뚜렷한 보고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럼 도대체, 북한군이 쿠르스크 전투에 참여했다는 지난 한달 동안의 보도는 뭐란 말인가? 북한군은 유령 군대인가? 한국 국가정보원은 지난 20일에도 국회에서 북한군 1만1천명이 쿠르스크에서 러시아 공수여단과 해병대에 배속됐고, 일부는 전투에 참여했다고 보고했다. 국정원은 24일에도 “북한군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구체적 첩보가 있어 면밀히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국정원과 서방 당국자들에 따르면, 북한군은 지난 10월 초에 파병됐고, 11월 들어서 쿠르스크에 배치됐다. 그동안 온갖 가짜뉴스가 난무했다. 전투에서 부상당한 북한 병사가 푸틴을 욕하는 동영상, 쿠르스크 전선에서 펄럭이는 북한 인공기, 도주하는 러시아 탱크를 따라가는 북한 병사의 동영상, 북한군이 먹는 개고기 통조림과 컵라면 등….



러시아와 북한은 파병을 구체적으로 확인 않고, 양국이 최근 비준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에 따라 필요한 협력을 할 것이라며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마치 그 가짜뉴스들을 즐기는 듯하다. 하지만, 그 가짜뉴스에 대한 비용은 다른 곳이 치른다. 한국이다.



루스템 우메로우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의 특사단이 27일 한국을 찾았다. 한국에 무기 지원을 요청하는 방한이다. 한국이 그동안 우크라이나발 온갖 북한군 파병 ‘가짜뉴스’를 즐긴 비용 청구라 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차기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하는데,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야 하는 호구가 되고 있다.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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