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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깜깜이 예산 전액 삭감” 벼르던 野, 정작 예산 심사는 깜깜이로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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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박정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장이 지난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 등에 대한 조정소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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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은 양당 간사 의원들끼리 따로(비공개로) 협의하기로 했습니다.”

경찰청 특수활동비에 대한 감액 심사 안건이 올라오자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박정 예결위원장은 이같이 말하며 심사를 보류했다. 앞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민주당 단독으로 전액 삭감한 경찰 특활비가 예산 증·감액 마지막 논의 단계인 예결위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에서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것이다. “사용 증빙을 철저히 하고 있으니 마약·사이버 수사 등을 위해서라도 원안을 유지해달라”는 조지호 경찰청장의 호소도 먹히지 않았다. 25일 국회 예결위 소위원회에서 생긴 일이다.

보류된 사업은 엿새 동안 하루 평균 20~30건에 달했다. 경찰 특활비뿐 아니라 ▶대왕고래 프로젝트(동해 심해 가스전) 예산 ▶공적 개발 원조(ODA) 예산 ▶정부 예비비 예산 등 민주당이 단독으로 삭감을 주장하는 사업이 대거 포함됐다. 예결위 소위원회는 보류된 사업을 다시 심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27일 “법정 처리 시한(12월 2일)에 맞춰 예결위 전체회의를 29일로 잡아놨다”며 “사실상 예결위 소위원회의 활동 기한은 내일까지”라고 말했다.

이렇게 보류된 예산들은 예결위 ‘소(小)소위원회’(소소위)로 넘어갈 예정이다. 소소위란 법정기한에 처리하지 못한 예산의 증·감액을 효율적으로 심사하기 위해 꾸려지는 비공식 협의체다. 여기엔 예결위원장, 여야 예결위 간사, 기획재정부 차관 정도만 참석한다. 속기록이나 회의록을 남기지 않고 쟁점을 조율한다. 이미 박정 예결위원장은 26일 오후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를 찾아가 소소위 등 향후 심사 방안을 논의했다. 여야 예결위 간사 간의 소소위 사전 협의도 수면 아래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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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29일 당시 자유선진당 류근찬 원내대표와 김낙성 사무총장, 권선택 의원이 비교섭단체를 배제한 채 밀실야합으로 예산안을 나눠먹기 심사한다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회의실을 항의 방문했지만 국회 경위들에게 가로막혀 회의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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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위는 국회법상 근거 조항이 없다. 현행법(헌법54조·국회법85조의3)에도 예산의 최종 심의를 예결위 소위에서 다루도록 돼 있지만, 매년 소소위에서 주요 예산을 결정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국회 예산 심사가 ‘깜깜이 밀실 심사’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익명을 요청한 예결위 관계자는 “회의록이 공개되는 예결 소위는 ‘역할극’에 가깝고, 비공개 소소위에서 지역구 ‘쪽지 예산’이 밀실 거래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2018년 ‘소소위 예산심의 문제점’ 보고서를 통해 “예산 증액을 결정하는 절차와 방법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국민이 알 수가 없어 문제”라고 비판했다. 민주당도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지난 8월 16일 상임위 심사를 강화하고 소소위 심사 권한을 축소하는 국회법 개정안(민형배 의원 대표발의)도 발의했다. 하지만 같은 당 원내대표인 박찬대 의원이 위원장을 맡은 국회 운영위원회는 이 법안을 계류시키고 있다.

당에서는 “그간 민주당의 예산 삭감 논리와도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윤덕 사무총장은 “검증되지 않은 예산, 즉 ‘깜깜이 예산’에 대해 단호히 삭감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국회가 사용내역을 요청했지만, 증빙자료가 제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찰 특정업무경비(507억),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 특활비(82억5100만원) 등을 전액 삭감했다. 예결위에서 근무했던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이 내역을 자세히 알 수 없으니 전액 삭감하겠다는 논리를 펴면서, 정작 세금 편성은 국민 모르게 할 태세”라며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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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성남시장 시절 모습.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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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성남시장 시절인 2011년 4월 장애인의 날 기념식 인사말에서 예산안을 시민 모두가 든 계(契)에 비유하며 “시민은 주인으로서 곗돈을 쓰고 관리하는 정치인들을 잘 감시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정치집단끼리 싸우느라 누가 진짜고 가짜인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 말에 따르면 내년도 예산(677조)을 위해 우리는 1인당 1308만원의 계를 든 셈이다. 이 곗돈을 마음대로 관리하는 게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국민의 눈을 가리고 있는 건 누구일까.

김정재 기자 kim.jeong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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