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리치먼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가 20일 서울 중구 서소문 중앙일보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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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정 정치인을 수사했다는 이유만으로 검사를 해임하는 건 아주 위험합니다. 정치인의 욕심과 야망이 ‘정의의 퀄리티’를 낮추는 원인이 될 겁니다. "
미국 뉴욕남부검찰청 연방검사 출신인 다니엘 리치먼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는 지난 20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국가의 형사사법 시스템이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한 조건으로 “정치권이 생산하는 ‘건강하지 않은’ 검찰권 약화를 멈춰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검찰을 길들이려 하거나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다면 이는 ‘사회의 해악’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다.
중앙일보는 리치먼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검찰과 정치권의 갈등, 검사 탄핵과 예산 삭감 등 한‧미 검찰이 공통으로 처한 위태로운 현실을 비교했다. 인터뷰 당일 더불어민주당은 야당 주도로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28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하겠단 방침을 정했다. 민주당은 내년 예산안에서 검찰 특수활동비·특정업무경비 587억원의 전액 삭감 방침도 정한 상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왼쪽)과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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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먼 교수는 수사기관에 대한 정치권의 압력 행사를 지근거리에서 경험했다. 제임스 코미 전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과 절친인 그는 2017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미 국장에게 ‘러시아 스캔들’ 수사 중단을 요구했다는 내용의 이른바 ‘트럼프-코미 메모’를 공개한 인물이다. 러시아 스캔들은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러시아가 자국에 우호적인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이다. 아래는 리치먼 교수와 인터뷰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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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검찰 압박은 미국도 마찬가지”
Q : 최근 한국에선 야당이 검찰의 ‘수사권 남용’을 지적하며 검사를 탄핵하고 검찰 예산을 삭감해 정치권과 검찰의 갈등 구도가 고착화하는 양상이다.
A : “한국 상황에 대해 쉽게 평가할 순 없다. 다만 정치인의 욕심, 개인적인 야망 때문에 추진하는 검찰권 약화는 매우 위험하고 건강하지 않다. 정치권의 검찰 압박은 결국 ‘정의의 퀄리티’가 낮아지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검찰을 정치 수단으로 전락시켜선 안된다.”
지난 2022년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추진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모인 전국 부장검사들이 청사 밖으로 이동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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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미국에서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검찰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화당을 중심으로 연방수사국(FBI) 폐지 논의가 나오고, 친(親)트럼프 정치인을 수사한 검사를 해임하려는 시도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도 검찰 권력 약화를 공언했다. 그가 법무장관(검찰총장 겸임)으로 지명한 맷 게이츠는 성매매로 기소 직전까지 갔던 인물이다. 미국의 이런 상황과 논의들이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해치는 결과로 이어질까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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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권 감독은 중요…국민은 모든 권력 남용 걱정”
김석우 법무부 차관이 지난 7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에서 위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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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을 비롯한 수사기관에 대한 감시는 필요하지 않은가.
“의회가 검찰을 감독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건 중요하다. 다만 지나친 압박과 간섭은 문제다. 특히 정치인을 수사해 기소한다는 이유만으로 검사를 탄핵하고 검찰에 불이익을 주는 위험한 행위가 반복되어선 안된다. 적절하고 건강한 감시의 선을 지키는 게 필요하다. 미국에서도 의회 다수당이 여당일 때 검찰을 감시하는 기능이 약해지기도 하는데, 이 또한 문제적이다.”
국민들이 검찰의 권력 남용을 걱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은 검찰뿐만 아니라 ‘모든 기관’의 권력 남용을 걱정한다. 인간은 권력을 갖게 되면 언제든 남용할 수 있는 존재이지 않은가. 다만 검찰의 경우 사건의 처분 과정을 외부에 100% 공개할 수 없다는 근본적 한계를 가진다. 밖에서 보기엔 검찰이 투명하지 않은 조직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 간극이다.”
간극을 메우기 위해 검찰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중요한 건 검찰 본연의 역할이다. 국민과 공익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극악무도한 살인자를 공정하게 기소하는 검찰,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검찰이라는 생각이 들면 신뢰는 저절로 쌓일 것이다. 이후에야 비로소 권력형 범죄를 수사할 때 국민이 검찰을 신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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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가 소란을 피워도 내역 지출은 안해”
리치먼 교수는 한국 검찰이 마주한 상황에 대해 “한국 상황을 정확히 모르는 채로 의견을 내기는 어렵다”고 전제했다. 다만 비슷한 이유로 이미 홍역을 치렀거나, 논란을 딛고 해결책이 제시된 미국의 상황에 대해선 명확히 설명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8일 내년도 검찰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를 전액 삭감했다. 사진은 정청래 법사위원장이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는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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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검찰과 경찰이 수사에 사용하는 경비가 삭감될 위기에 있다. 미국에서는 수사 경비를 어떻게 관리하고 감독하는가.
“FBI와 마약단속국(DEA)은 자체적으로 모든 비용 지출을 아주 엄격하게 관리한다. 다만 이 모든 걸 의회에 제출하지는 않는다. 의회가 소란을 피우고 제출을 강요해도 단호하게 거절한다. 업무 기밀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의회는 기관을 감독할 수 있지만 수사기관의 지출 내역을 모두 제출하라고 하면 엄청난 반발에 직면할 각오를 해야 한다.”
Q : 한국 정치권 일각과 법원에서는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기 전에 법원의 사전 심문을 받게 하는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수사의 기밀성을 침해한다는 주장과 신중한 압수수색을 위한 것이란 주장이 부딪힌다.
A :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는 이유는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하는 걸 막으려면 수사의 비밀성을 유지하는 건 필수적이다. 미국에서 판사는 검사가 제출한 서면으로 압수수색의 필요성을 판단한다. 검사나 수사관과 토의하는 과정을 거치진 않는다. 그런데 참고인을 불러 의견을 듣는다? 수사 정보가 흘러나가고 비밀이 유출될 위험이 크다고 생각한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양수민 기자 yang.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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