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에서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가 추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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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광산 추도식’ 파행과 관련해 정부가 일본에 “유감을 표명했다”고 26일 밝혔다. 하지만 이날 일본 외무상과 약식 회담을 한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일본 쪽에 아무런 항의나 유감 표명도 하지 않았다. 외교부 차원의 주한 일본대사 초치도 없었다. 이번 사태는 일본에 저자세로 일관해온 윤석열 정부의 ‘굴종 외교’ ‘무능 외교’가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부는 이날 “전날(25일) 외교부 당국자는 주한 일본대사관을 접촉하여 추도식 관련 한-일 협의 과정에서 일본이 보여준 태도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지난 24일 일본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도식이 애초 일본의 약속과 달리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역사를 지우고, 희생된 조선인 노동자를 제대로 ‘추모’하지도 않는 행사로 치러졌는데도 정부가 유감 표명조차 안 한다는 비판이 잇따르자 뒤늦게 이런 사실을 공개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유감이라고 한 건 추도식의 형식이나 내용 같은 본질이 아니라 ‘협의 과정의 일본 태도’였고, 그나마도 정확히 어떤 태도인지 분명하지 않다. 의사를 전달한 방식도 상대국 대사나 공사 등을 외교부로 불러들여 공식적으로 항의하는 ‘초치’가 아니라, ‘외교부 당국자의 일본 대사관 접촉’이다. 외교부는 유감을 표명한 당국자의 급이나, 양국이 나눈 대화 내용도 밝히지 않았다.
이날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 회의를 계기로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과 만난 조태열 외교부 장관도 어떤 항의나 유감 표명 없이 약식 회담을 끝냈다. 외교부는 이날 저녁 공지를 통해 “(이탈리아 피우지에서 만난) 양 장관은 사도광산 추도식으로 불거진 문제가 양국 관계 발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고, 이제까지 가꿔온 양국 협력의 긍정적 모멘텀을 이어나가자는 데에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가장 효과적인 의사표시의 기회를 ‘갈등 봉합’에만 급급해 날려보낸 셈이다.
정부가 추도식 불참 결정을 하면서도, 그 이유를 제때 명확히 밝히지 않은 것도 일본이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일 빌미를 줬다. 일본은 야스쿠니신사 참배 전력이 보도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이 정부 대표로 추도식에 참석한다고 22일 밝혔고, 한국은 이튿날 “제반 사정을 고려해” 불참하겠다고 알렸다. 이를 두고 이쿠이나 정무관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는데 정부는 부인하지 않았다. 24일엔 “이쿠이나 정무관이 참의원 취임(2022년 8월15일) 후엔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한 적이 없다”는 일본 정부의 설명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25일 애초 참배했다고 보도한 교도통신이 ‘오보’라고 밝히면서 정부는 망신을 샀다. 일본 정부가 26일 “잘못된 보도로 (한국 정부의 추도식 불참이라는) 혼란이 빚어져 매우 유감스럽다”며 ‘도발’을 하는데도 정부는 대응하지 못했다. 그저 “일본 쪽이 우리 쪽에 제시한 최종 추도식 계획이 사도광산 등재 당시 양국이 합의한 수준에 부합하지 않았다”는 때늦은 해명을 내놓는 데 그쳤다.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취임 뒤 14차례 일본과 정상회담을 열고 한-일 관계 개선에 모든 것을 걸어온 윤석열 대통령의 대일 외교 기조가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3월6일 박진 당시 외교부 장관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하면서 “물컵의 남은 반을 일본 쪽 호응으로 채우겠다”고 했다. 제3자 변제안은 가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긴 강제동원 피해자가 받을 판결금을, 일본 기업 대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란 국내 재단이 지급하는 내용이다. 재원은 한·일 양국 기업들의 기부금이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과거사 배상 문제는 끝났다’는 일본의 주장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것으로, 대법원이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배상 책임을 물은 일본에 정부가 나서서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광복절 직후인 지난 8월16일엔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일본의 과거사 사과 여부와 관련해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고 해 지탄을 받았다. 제3자 변제안을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고 추어올린 데서 드러나듯, 윤 대통령이 일본의 ‘선의’에 기댄 과거사 해법을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나오기 어려운 해법과 발언들이다. 이날도 외교부는 “이 문제가 더 이상 불필요한 갈등으로 비화하지 않고, 개별 사안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긴밀히 소통해나갈 것을 (일본에) 당부했다”고 밝혔다. 이번 일이 내년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앞둔 한-일 관계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어 “일본의 파렴치한 작태에 항의하고 사과를 받아내지는 못할망정, 외교 실패를 숨기려는 행태가 개탄스럽다”며 “일본의 적반하장 외교에 뒤통수를 맞고도 정신 못 차리는 윤석열 정부가 앞으로도 또 어떤 외교 참사로 국익을 훼손하고 국민의 자존심을 무너뜨릴지 걱정”이라고 비판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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