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66만명이 한다는 ‘투잡의 세계’
■ 경제+
일도,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쉬었음’ 인구가 10월 244만5000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동시에 통계청에서 집계한 올 3분기 ‘투잡족’(주된 일 이외에 수입을 목적으로 1개 이상의 일을 한 직장인)도 66만 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백수도 많고, 일을 여럿 하는 이도 많다는 얘기다. 직장인들의 투잡, 어떤 일은 허용되고 어떤 일은 안 되는 걸까. 투잡을 하면 회사에 신고하는 게 좋을까. 투잡으로 발생한 소득의 세금 신고는 어떻게 해야 할까. 투잡을 고민하는 당신이 꼭 읽어야 할 내용을 더 컴퍼니가 담아봤다.
투잡족이 늘어난 만큼 그 유형도 다양하다. 가장 고전적인 유형은 생계형. 직장인들이 월급 이외의 추가 수입을 얻기 위해 저녁이나 주말에 추가로 일하는 형태다.
지방 소재의 한 공기업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A씨(29)는 지난 3월부터 배민커넥트로 라이더 일을 시작했다. 평일 퇴근 후 보통 밤 11시까지 자전거로 배달한다. 통상 주 3~4회 정도 라이더 일을 한다. A씨는 “월급이 230만원 정도로 막막해 젊을 때 최대한 돈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배달 1건당 벌 수 있는 돈은 2000~4000원 정도다. 배달 건수도 그날그날 다르다. A씨는 “하루 3만~5만원 정도, 한 달로는 40만~65만원 정도 번다”고 했다.
김경진 기자 |
자기계발을 위한 투잡족도 있다. IT 기업에서 개발자로 일하는 C씨(32·여)는 퇴근 후에는 프리랜서 데이터 분석가로 활동하고 있다. 프리랜서 마켓 플랫폼 ‘크몽’ 사이트에 등록해 들어오는 일감을 처리한다. C씨는 “향후 창업도 생각 중인데 시장조사 차원에서 일해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무인점포를 여러 개 운영하거나 여러 부동산을 보유하며 임대소득을 올리는 큰손형 투잡족도 있다.
투잡이 늘어난 대표 원인으로는 경기 악화를 꼽을 수 있다. 불경기에 고물가·고금리가 이어지자 본업 수입만으로는 가계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2020년 0.5%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을 거치며 2022년 5.1%까지 치솟았다. 지난해엔 3.6%, 올 상반기엔 2.8%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물가가 오르는 속도에 비해 임금이 오르는 속도는 더 느려, 실질임금은 오히려 줄었다.
김주원 기자 |
지난 6월 노동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1.2%는 ‘추가 수입을 위해 아르바이트 등 다른 일을 병행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투잡을 한 이유로는 생활비 부족(53.2%)을 가장 많이 꼽았다.
기술 환경 변화로 투잡하기 쉬워진 영향도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플랫폼을 활용해 프리랜서처럼 활동하거나 무인점포·스마트스토어 등 새로운 형태로 창업하기 쉬워진 것이다. 직장인들은 유튜브·틱톡 등을 활용해 자신이 만든 콘텐트를 올려 크리에이터로 활동한다. 숨은 고수 찾기 ‘숨고’나 ‘크몽’ 등 플랫폼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재능을 원하는 소비자에게 직접 서비스하기도 한다.
김경진 기자 |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플랫폼 종사자는 88만3000명으로 전년 대비 11.1% 증가했는데, 그중 부업형(21.1→21.8%)과 간헐적 참가형(21.2→22.6%)의 비중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사관리학회장을 맡고 있는 이춘우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인터넷·모바일 등 기술 인프라가 변화하면서 누구나 1인 사업자가 될 수 있는 사회가 됐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이 운영하기 쉬운 무인점포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부터 무인 라면 가게, 무인 편의점, 셀프 촬영관, 무인 공간대여점 등이다. 보안 폐쇄회로(CC)TV로 가게 상황을 원격으로 관리하며, 가게에 얽매여 있을 필요도 없어 여윳돈 있는 직장인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창업 아이템이다.
김경진 기자 |
근로소득 외에 사업소득 등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수입을 올린다면 종합소득세(종소세) 신고 대상이 된다. 종합소득세는 개인이 1년 동안 벌어들인 총소득을 합한 금액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근로소득, 이자소득, 배당소득, 사업소득(임대소득), 연금소득, 기타소득 등 여섯 가지 유형이 있다.
사업소득은 사업이나 임대 등을 통해 얻은 소득을 말하며 매출액에서 비용을 차감한 금액으로 계산된다. 사업소득과 기타소득을 구분하는 기준은 ‘소득의 지속성’ 여부다. 꾸준히 발생하는 소득이라면 사업소득, 원고료·강의료 등 일시적으로 얻은 소득은 기타소득이다. 사업소득은 발생하면 바로 종합소득세를 신고해야 하지만 기타소득은 필요경비를 제외하고 연 300만원을 초과했을 때에 신고의무가 발생한다.
김경진 기자 |
종합소득세 신고를 한다고 해서 모든 경우에 회사에 통보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업으로 인해 소득이 늘어서 건강보험료가 오르면 회사에 통보된다. 그 기준은 ‘보수 외 소득’이 연 2000만원을 초과하는 경우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기준이 연 3400만원이었지만, 지난 7월부터 2000만원으로 하향됐다.
투잡에 법적인 문제는 없을까. 투잡이 엄격하게 제한되는 공무원은 국가공무원법에 겸직과 영리 업무가 금지돼 있다. 위반 시 견책·감봉 등 징계를 받게 된다. 하지만 민간 기업 직원들의 투잡을 막는 법 조항은 없다. 헌법에서 직업 선택의 자유(제15조)와 사생활의 자유(제17조)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대신 기업들은 취업규칙이나 근로계약서에 겸업·겸직을 제한하는 조항을 담거나 윤리행동 강령 등 사규에 겸업·겸직 금지를 명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현대차 취업 규칙 제17조 6항에는 이같이 나와 있다. “회사의 허가 없이 회사 업무 이외의 다른 직무를 겸하거나 영리사업에 종사하지 말 것.”
김지윤 기자 |
LG전자의 취업 규칙 제30조는 다음과 같다. “사원은 다음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회사의 허가 없이 자기가 사업을 영위하거나 타인의 업무에 종사하는 것. 단, 회사 정상 근무에 지장이 없는 한 법과 취업 규칙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회사 생활 중 취득한 지식, 경험과 관계없는 업무를 취업시간 외에 실시하는 경우는 예외로 한다.”
이 외에도 더컴퍼니가 확인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포스코, CJ 등 국내 주요 대기업의 취업규칙은 대동소이했다. ▶원칙적으로는 금하지만 ▶업무 연관성이 없거나 ▶본업에 지장을 받지 않는 선에서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는 것이다.
투잡을 뛰는 직원들은 투잡 사실을 회사에 알릴지, 말지를 두고 고민한다. 경쟁사에 취업하거나 회사의 기밀을 누출할 우려가 있는 등 회사가 금지하는 투잡이 아닌, 배달 아르바이트까지 회사에 알리는 건 꺼려질 수 있다. 한 대기업의 인사담당자에 따르면, 동료 직원의 신고로 겸업·겸직이 회사에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동료의 투잡 소득을 시기해서, 혹은 동료가 회사 업무에 소홀해 자신이 피해를 본다고 여기는 직원들의 신고가 많다는 뜻이다.
투잡 트렌드를 막을 수 없다면 기업은 결국 성과를 정확히 평가해 직원들 스스로 본업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 유병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직원이 얼마나 많이 일했느냐가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가 중요한 시스템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는 ‘기업’입니다. 기업은 시장과 정부의 한계에 도전하고 기술을 혁신하며 인류 역사와 함께 진화해 왔습니다. ‘기업’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더중플이 더 깊게 캐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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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리·오삼권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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