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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박소란의시읽는마음] 어제 쉽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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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희

오랫동안 나는 모두가 알아듣는 이야기를 위해

난해함의 독해와 무지함의 이해에 전념해 왔다

최초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

최후의 대화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에

나의 세계를 전달하려던 게 아니라

당신의 세계를 가지려던 게 아니라

우리의 세계 속에 머물고 싶었다

우리가 머물 세계를 가지고 싶었다

그러나 어제 동료에게

나는 너무 쉽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금 더 어려워져서 돌아오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하략)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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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을 두고, 어떤 사건이나 사안을 두고, 혹은 어떤 시를 두고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면 “쉽다”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조금도 어렵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단번에 파악이 되어 버렸다고? 아니면, 특별한 구석 없이 그저 예사롭고 흔할 뿐이라고? 어느 쪽이라도 몰지각하긴 마찬가지다. 세상에 그처럼 쉬운 것은 없기 때문에. 쉬운 사람도, 쉬운 문제도, 쉬운 시도. 쉽다고 느꼈다면 순간의 착각이기 쉽고, 오독이기 쉽고, 그런 오독은 지극한 옹졸(壅拙)에서 기인한 것임을 저 혼자만 알지 못한다.

세계는 넓고 깊다. 저마다의 다양한 소세계가 밀집해 있다. “최초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최후의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도 있는 것. 단 한 번의 대화를 위해, “모두가 알아듣는 이야기를 위해” 사력을 다하기도 하는 것. 그 대단하다는 ‘비밀’이 아니라 철저한 ‘누설’을 위해서 말이다.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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