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6 (화)

시킨 사람은 없는데 처벌 감수하고 위증?… “이례적 판결”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李 위증교사 1심 무죄] 법원 ‘李 무죄 선고’ 3가지 이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위증 교사’ 사건 1심 재판부는 25일 위증을 한 김진성씨에게는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이 대표의 위증 교사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라는 말이 나왔다. 거짓말을 요구한 사람은 무죄인데, 처벌을 감수하고 그 부탁을 들어준 사람만 유죄라는 재판부의 판단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조선일보

그래픽=백형선


이 사건은 이 대표가 변호사이던 시절인 2002년 ‘검사 사칭’ 사건에서 비롯됐다. 이 대표는 ‘분당 파크뷰 분양 특혜 의혹’을 취재 중이던 KBS 최철호 PD가 김병량 당시 성남시장에게 검사를 사칭해서 전화할 때 옆에서 검사의 이름과 질문 내용을 알려준 혐의로 벌금 150만원이 확정됐다. 이후 2018년 경기지사 후보 토론회에서 “PD가 사칭하는데 옆에 있다가 누명 썼다”고 말해 선거법 위반(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됐고, 이 재판에서 핵심 증인이던 김진성씨에게 위증을 요청했다는 게 이번 사건의 취지다.

재판부가 이 대표를 무죄로 판단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조선일보

그래픽=백형선


◇“李, 기억나는 대로 있는 대로 말해달라 요청”

이 대표는 2018년 12월 김씨에게 3차례 전화를 하고, 자신의 변론요지서를 보내주며 위증을 요청한 혐의를 받았다. 재판부는 “이 대표는 김씨가 ‘모른다’고 하거나 모를 것 같은 내용에 관해서는 증언 요청을 하지 않았고, 김씨가 알고 있는 부분만 증언을 요청했다”며 “기억하는 바를 확인하는 방식의 통상적인 증언 요청과 크게 다르지 않아 위증을 요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킨 사람은 살인범이 A를 죽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B를 죽인 경우 B에 대한 살인죄를 인정하기는 어렵다”고도 했다. 김씨가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증언을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대표가 그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李, 증언 요청 때는 위증할 줄 몰랐다”

재판부는 “교사 행위 당시 이 대표는 김씨가 위증을 할 것이라는 점을 알았거나, 미필적으로나마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 대표와 김씨가 (2018년 12월) 통화할 당시에는 김씨가 이 대표 부탁대로 증언을 할 것인지, 또 구체적으로 어떤 증언을 할 것인지 등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고의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통화 이후 김씨가 위증에 이르는 과정에서 이 대표가 개입했다고 인정할 만한 직접적인 증거도 없다”고 했다. 이어 “이 대표가 김씨의 증언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보기도 부족하다”고 했다. 김씨가 위증한 내용에 대해 이 대표 본인도 거짓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변론요지서 보낸 것은 방어권에 포함돼”

재판부는 이 대표가 김씨와 통화한 직후 텔레그램으로 변론요지서를 보낸 부분에 대해서도 “상식에 반한다거나 선거법 위반 사건의 피고인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방어권의 정도를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누명을 썼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필요했던 이 대표가 김 전 시장의 핵심 측근인 김씨에게 자신이 처했던 상황과 그에 대한 의문에 대해 설명하면서 변론요지서를 제공해 당시 상황을 기억해 보게 하는 것은 피고인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증거의 탐색 및 수집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이 전화를 한 2018년 12월은 ‘검사 사칭’ 사건이 있었던 2002년으로부터 약 16년이 경과한 시기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했다.

이에 대해 최진녕 변호사는 “사실 관계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변론요지서나 진술서를 보내 원하는 증언을 허위로 만들어도 위증 교사가 아니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준 판결”이라고 했다.

◇김진성은 처벌 감수하고 왜 위증했나?

김씨는 검찰에서 “이재명이 위증을 요구했다. 안 시켰으면 거짓말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정에서도 ”유력 정치인인 이 대표가 수차례 전화해 요구한 것에 대한 중압감, 반복적인 압박성 요구로 허위 증언한 게 맞느냐”는 검찰 질문에도 “맞는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것에 대해 법원 내부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현직 판사는 “이 대표의 행위가 위증 교사가 아니라면 김진성씨가 왜 처벌을 감수하고 위증했는지가 이 판결 전체에서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며 “판결을 쓰는 과정에서 부분적인 데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큰 틀을 못 볼 수 있는데 그런 경우가 아닐까 한다”고 했다.

한 형사 전문 변호사는 “이 대표가 지사로 있는 경기도 관내에서 백현동 건설사업에 종사하던 김씨의 지위, 김씨가 이 대표와의 통화 내용을 숙지하기 위해 녹음까지 하고 어떻게든 부탁을 들어주려 한 두 사람의 ‘갑을 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이 대표, 향후 재판은 어떻게 될까

이번 판결은 위증범보다 위증 교사를 더 무겁게 처벌해온 최근 경향과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지가 법률 데이터 기업 ‘엘박스’를 통해 2022년 이후 위증 교사 혐의로만 기소된 1심 판결문 65건을 분석한 결과, 위증 교사 판결 중 위증범이 혐의를 인정하는데도 교사범이 무죄를 선고받은 건 단 1건에 불과했다. 이 대표 사건과 달리, 위증 자백 자체를 믿을 수 없어 범행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반면 위증범과 교사범이 동시에 재판받은 41건 중 37건(90.2%)에서 교사범이 더 무거운 처벌을 받았다. 나머지 4건도 형량이 같거나 한 사람이 두 가지 범행을 동시에 저지른 사례였다.

곧 시작될 2심 재판부가 1심과 다른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앞서 영장전담판사는 작년 9월 이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위증 교사는) 혐의가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만큼, 항소심에서 유무죄가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있다.

검찰은 이날 “이 대표에게 범의(犯意·범죄인지 알면서도 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한 것은 법리와 증거 관계에 비춰 납득하기 어렵다”며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해 항소하고, 유죄 입증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양은경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