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식 통일연구원장이 지난 8월28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 1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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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형 |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2학년
김천식 통일연구원장이 최근 통일부 장관과 국책연구기관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국회의원들이 맨날 싸움박질만 한다.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을 줘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한겨레 11월13일치 온라인판).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이 최근 ‘국민의 힘 공천 게이트’로 야당 일각에서 대통령 탄핵소추를 주장하자, 이에 맞서 대통령에게도 대응수단 차원으로 국회해산권을 줘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통일연구원장이 대통령의 국회해산권을 거론하는 것은 헌법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전혀 말이 되지 않는 발언이다.
우선, 헌법적 관점에서 국회해산권은 유신헌법과 같은 권위주의 정부의 독선적 헌법 개정을 통해 시행했던 독재 정책의 일환이다. 박정희, 전두환 등 독재자들이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 가지고 있었던 수단 중 하나를 현재 다시 입에 올린다는 것은 공직자로서 굉장히 부적합한 태도이다.
대통령 탄핵소추권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을 줘야 한다는 취지로도 부적합하다. 의회를 해산하는 권리는 입법부 내에서 행정부가 탄생하는 의원내각제 국가에만 있는 기능이다. 의원내각제라는 정치 제도의 특성상 의회에만 내각불신임권을 부여할 경우 잦은 내각 교체로 인한 혼란을 예방하고자 상호 견제의 원리로 내각에 의회해산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대통령제에서 대통령 탄핵소추권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해 국민을 대표하여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징벌적 성격이다. 애초에 삼권 분립을 목적으로 ‘견제와 균형’을 장점으로 고안된 제도인 대통령제에서 국회해산권을 논한다는 사실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정치적 관점에서도 통일연구원장은 자기 객관화가 전혀 되지 않는 모습이다. 김천식 통일연구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한 국책연구기관장 중 한 명으로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대선캠프 소속이었다. 대통령 탄핵을 한번 겪어 탄핵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나라에서 대통령 탄핵의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는 것은 민심이 떠나고 있거나 이미 떠났다는 징조다. 현재 대통령이 가장 많이 지적받는 부분인 불통과 무지함이 통일연구원장의 태도에서도 보인다는 점은, 비단 대통령만이 아니라 지난 대선캠프 출신 등 대통령 주변 인사들도 이 같은 인식을 공유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까지 들게 한다.
대통령의 공천 개입 의혹과 김건희 여사의 각종 논란이 끊이지 않는 지금, 시기적 흐름을 읽지 못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구시대적 발언을 일삼은 통일연구원장은 국회의원들이 싸움만 한다고 한탄하면서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을 주어야 한다는 망언을 하기 전에, 이 정권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왜 떠나는지를 진지하게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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