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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다시 달궈진 논쟁 ‘비만의 기준’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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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재욱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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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을 해칠 정도로 비정상적이거나 과도한 지방이 축적된 상태’를 비만으로 정의한다. 1996년 세계보건기구가 비만을 ‘장기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규정하면서, 바야흐로 ‘비만과의 전쟁’이 본격화됐다. 단순히 배가 나온 체형의 문제가 아니라 고혈압과 당뇨병, 고지혈증과 같은 질병에 걸릴 위험을 높이고 더 나아가 사망률을 증가시킨다고 본 것이다. 비만의 기준은 체지방률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하지만 나이나 성별에 따라 기준이 다를 수 있고 정확한 측정이 용이하지 않다는 어려움이 있다. 이 때문에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이 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인 체질량지수(BMI)이다. 우리는 2000년에 나온 세계보건기구 아시아·태평양지역 기준에 따라 BMI가 25 이상이면 비만으로 판정해 왔다. 세부 구간으로는 25.0~29.9를 1단계 비만, 30.0~34.9를 2단계 비만, 35.0 이상을 3단계 비만(고도 비만)으로 본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부설 건강보험연구원이 지난 11일 이런 기준을 27 이상으로 올리자고 하면서, 해묵은 비만 기준 논쟁이 다시 달궈졌다. 연구원은 성인 847만명을 21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BMI 25 구간에서 사망위험이 가장 낮고 29 구간에서 증가 폭이 두배로 커진다고 분석했다. 20년 전 분석에선 23에서 가장 낮은 사망위험을 보였지만 한국의 체형과 생활습관, 질병 양상이 서구와 닮아가는 변화를 보였다는 것이다.



현재는 키 165㎝ 여성의 몸무게가 69㎏이면 비만이지만 연구원 제안을 적용하면 74㎏이 되어야 비만이다. 질병관리청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비만율은 2007년 31.7%에서 2022년 37.2%로 늘었다. 연령별로는 40대가 40.7%로 가장 높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2022년)에 비만율을 대입하면, 현재는 비만 인구가 약 1634만명이지만 기준 완화 땐 약 839만명으로 줄어든다. 이에 대해 대한비만학회는 즉각 반대 성명으로 응수했다. 국민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학회는 사망위험 외에 BMI가 증가할수록 비만 동반질환의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건강보험연구원 분석 결과를 보면, 고혈압·당뇨병은 27, 심혈관질환은 29, 뇌혈관질환은 31 구간에서 발생 위험 증가폭이 커졌다.



그동안 BMI 기준 상향 조정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됐다. 미국 등 서구 기준(30 이상)으로 올리진 못하더라도 중국이나 일본수준으로는 올리자는 것이다. 중국은 2002년부터 28 이상으로, 일본은 2014년부터 남성과 여성의 비만 기준을 각각 27.7과 26.1 이상으로 높였다. 원래 세계보건기구는 인종에 관계없이 30 이상을 기준으로 삼는다. 다만 아시아인은 서양인에 견줘 낮은 BMI 구간부터 합병증 위험도가 증가하고 복부지방·체지방률도 높다는 점이 고려돼, 별도 기준이 나왔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비만 기준이 너무 엄격해, 미국 보다도 비만 인구 비중이 높게 나오는 것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이제는 비만 기준을 높여도 된다는 연구 결과가 쌓이고 있지만, 번번이 ‘대한비만학회 반대’라는 문턱을 넘지 못했다. 비만 환자를 진료하는 전문가 단체 의견을 무시할 수 없는 탓이었다.



논쟁의 이면엔 비용 문제가 있다. 2018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비만이 유발하는 의료비 규모가 5조8858억원(2016년 기준)에 달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비만 기준을 완화하면 그만큼의 의료비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같은 해 국정감사에서 남인순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비만 기준을 합리적으로 바꾸지 않는 배경엔) 비만 관련 약을 파는 제약업계와 다이어트·건강식품 관련 업계 반대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황보연 논설위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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