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자대학교 처장단이 21일 총학생회 학생들과 면담을 하기 위해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 교내로 들어서고 있다. 지난 20일 총학생회는 학생총회를 열고 학교 측의 공학 전환 논의에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2024.11.21/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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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2010년 11월 10일 영국 런던 전역에서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열렸다. 대학 등록금 상한선을 3배 가까이 올리겠다는 영국 정부의 계획에 반발하는 시위였다. 시위에는 최대 5만 명이 모였다. 국내 모 매체 런던 통신원이었던 필자는 현장을 취재했다. 검은색 바탕에 붉은색으로 'X 같은 대학 등록금'이라는 적힌 손팻말이 눈에 띄었다. 백인 학생·흑인 학생·아시아계 학생 모두 '대학 보조금 삭감을 당장 멈추라'는 팻말을 들고 정부를 규탄했다. 로마자 알파벳 'F'로 시작하는 욕설도 곳곳에서 들렸다.
필자는 현장 경찰관에게 시위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왔다. 그들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대답이었다. 시민들도 '시위는 학생들의 권리'라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이 있다. 시민과 경찰이 인정하는 시위는 다소 거친 욕설이 나오더라도 물리적인 폭력을 배제한 시위였다. 영국에서 시위는 'protest'로, 폭력 시위(폭동)는 'riot'으로 구분해 표현한다.
당시 시위는 일부 학생들이 런던 보수당사 본부의 유리창을 박살 내면서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성난 학생 200여 명은 보수당 본부를 점거했다. 영국의 진보 매체인 가디언은 제목에 다음과 같이 쓰고 비판했다. '학생들의 시위가 폭력적으로 변질됐다'(Student protest over fees turns violent). 시위에 참여했던 다수의 학생도 폭력 시위와 거리를 두려 했다. 당시 런던 골드스미스대학 1학년이었던 마타 줄린스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학생들이 본부를 습격한 건 불필요했고, 폭력 시위는 더 많은 경찰을 불렀다"며 "경찰과 학생이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은 보기 거북했다"고 지적했다.
이달 들어 동덕여대의 남녀공학 전환 논의에 반발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연일 기사화됐다. 학교 측이 최근 공학 전환 논의를 잠정 중단하면서 사태는 소강상태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폭력 시위와 젠더 갈등'이라는 후유증은 우리 사회의 큰 숙제로 남아 있다.
학생은 학교의 재정 기반이자 주인이다. 동덕여대 측은 그런 학생들과 충분히 사전 논의를 하지 않은 채 공학 전환을 추진하려다가 사태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렇다고 해도 폭력이 휩쓸고 간 자리를 정당화하기 어렵다. 학생들은 설립자 흉상에 계란·물감을 투척하고 붉은색 스프레이로 학교 곳곳에 과격한 문구를 칠해놓았다. 밀가루와 각종 음식물 쓰레기도 흉상 주변에 놓여 있었다. 일부 학생들은 야구 방망이와 소화기를 들고 총장실 문을 부수려다가 경찰에 제지됐다. 동덕여대가 추산한 '시위 피해 총액'은 24억~54억 원에 이른다.
여론은 사태의 본질인 '남녀 공학 전환'이 아닌 '20대 학생의 폭력성' 또는 '젠더 갈등'에 주목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23일 "남녀공학으로 전환을 하든 안 하든 어떤 경우에도 폭력이 용납될 수는 없다"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이 문제가 정쟁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수십억 원의 피해를 낳은 폭력 시위는 분명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동덕여대 학생의 일명 '래커 시위'와 관련해 어른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본다. 강성 노동자 단체 등이 주도한 대규모 집회 시위에서 물리적 폭력은 단골 메뉴처럼 등장했다. 지난 11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퇴진 집회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10명이 체포됐다. 이들은 경찰관을 폭행하거나 경찰의 해산 명령에 불응한 혐의를 받는다.
이렇게 물리력을 발휘하거나 공권력과 맞서야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어른들의 시위가 보여줬던 게 아닐까. 폭력을 동반해야 우리 사회가 주목한다는 것을, 학생들은 어른들의 시위를 접하며 내면화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폭력은 이제 조폭 세계에서도 통용되지 않는다. 폭력 시위가 용인되는 사회는 민주 사회라 할 수 없다는 것을, 민주 시민을 지향해야 하는 학생들은 알아야 한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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