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4 (일)

“한 회에 1등만 63명, 조작 아냐?”…로또 생방 현장 가보니 [르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23일 서울 상암 MBC에서 대국민 로또 6/45 추첨 생방송 ‘2024 로터리데이(Lottery Day)’ 현장. [김민주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오후 8시 35분. 생방송 시작합니다. 스탠바이 큐”

23일 서울 상암 MBC에서 대국민 로또 6/45 추첨 생방송 ‘2024 로터리데이(Lottery Day)’가 개최됐다.

매주 토요일 약 20명의 일반인을 초청해 로또 추첨을 진행하는데, 이번 로터리데이는 평소 인원의 5배인 100명의 참관단이 함께했다. 최근 불거진 ‘로또 조작설’을 해명하고 복권 추첨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하겠단 의도로 풀이된다. 참관단은 지난 6개월간 로또·연금복권 방청 경험이 없는 19세 이상 일반인으로, 지난 12일까지 MBC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된 신청자 중 추첨을 통해 선정됐다.

매일경제

추첨 장비는 보안을 위해 CCTV, 이중 잠금장치와 봉인이 설치된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 메인 추첨기 1개와 예비 추첨기 2개를 관계자들이 창고에서 꺼내는 모습. [김민주 기자]


복권 추첨 장비 보관창고는 이중 잠금장치로 봉인돼있었다. 특히 커다랗게 자리 잡은 온도, 습도계가 눈에 띄었다. 이는 폴리우레탄으로 만들어진 추첨볼이 희박한 확률이지만 온도·습도에 의해 변형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추첨볼 세트는 경찰관 입회하에 봉인 이상유무 확인 후 봉인을 해제한다. 추첨볼 둘레와 무게를 체크한 후 일반인 참관인이 직접 방송에 사용될 볼 세트를 선정한다.

추첨기는 메인 한 대, 메인이 망가졌을 때를 대비한 예비 두 대 총 세 대가 준비돼있다. 본 추첨 전 한 대 당 3번씩 총 9회 시험 작동을 한다.

이날 오후 6시 10분부터 시작된 준비과정은 창고 개방부터 세 번의 리허설까지 장장 2시간 25분이 소요됐다.

5분짜리 추첨방송만 봐왔던 참관인들은 모든 과정에 참여하는 동안 “이렇게 까다롭고 오래 걸릴지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매일경제

추첨볼은 총 5개 세트가 준비돼있으며, 보안을 위해 봉인(잠금장치)이 돼있다. 추첨볼 세트의 봉인 이상유무를 경찰관 입회하에 확인해 봉인을 해제한다. 지난주 봉인 시 기록해 둔 번호를 일일이 체크해 확인이 되면 봉인을 해제한다. [김민주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날 역시 조작설에 힘을 싣듯 1등 8명이 배출됐다. 1147회 1등 당첨금은 33억2342만원이다.

매회 당첨자 1명이 나올까 말까 하고 당첨금은 200억~400억원대를 우습게 찍던 과거 로또 추첨 풍경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는 숫자다. 벼락 맞을 확률(28만분의 1)보다 로또 1등 확률(814만분의 1)이 더 낮다던데, 매회 10명 가까이 나온다는 점도 의심의 여지를 키운다.

이에 복권수탁사업자 동행복권의 임초순 상무는 “회차별 복권 판매 수가 2000년대 초기 200만건에 불과했지만 최근엔 50배가량 늘어난 1억1000건에 달한다”며 “복권 판매가 늘어 확률상 당첨자가 많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첨금에 대해선 “현재 매주 1등 당첨금 총액은 280억원정도 되는데, 당첨자가 회차당 평균 12명 이상 나오기 때문에 한 명에게 돌아가는 금액이 100억원 이상 되기는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같은 이유로 이월도 어려워졌다. 이월은 해당 회차 당첨자가 나오지 않을 시 당첨금을 다음 회차로 넘기는 것이다. 최근엔 매회 당첨자가 나와 당첨금이 이월돼 불어날 일이 없어졌고, 당첨자의 수 자체도 많아져 당첨금을 더 촘촘히 배분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매일경제

생방송에 사용될 추첨볼이 PC에 제대로 인식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모습. 이후 추첨볼을 추첨기에 넣고 테스트해 리허설을 준비한다. [김민주 기자]


임 상무는 ‘무더기 당첨’ 역시 확률상 이상한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7월 13일 1128회차 때 1등 당첨자가 역대 최다인 63명 배출되며 로또 음모론을 키운 바 있다.

임 상무는 “복권 구매인들이 선호하는 번호 조합이 있는데, 1128회차 당첨 번호 조합이 이에 해당됐기 때문”이라며 “이 회차에서 5만727명이 같은 번호 조합에 배팅했는데, 이 조합이 뽑혔다면 1등은 5만727명, 당첨금은 52만원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조합은 ‘일렬로 쭉 찍기’ 등이 있다”고 부연했다.

해외 사례에서 영국의 경우 7의 배수(7, 14, 21, 35, 42)를 선호하는데, 이 조합이 뽑힌 회차에 4082명의 1등이 나온 적이 있다. 필리핀 사람들은 9의 배수(9, 18, 27, 36, 45, 54)를 좋아해, 해당 조합이 나온 회차에서 1등은 433명에 달했다.

추첨기는 프랑스 Akanis Technologies사의 ‘비너스’를 사용하며, 매년 제조사에서 이상여부를 검사한다.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전 세계 40여개 복권기관에서 동일 제품을 사용 중이다. 해외 제품을 사용하는 것은 신뢰성을 제고시킬 수 있고 무엇보다 기술력에 있어 우수하기 때문이라고 동행복권 측은 설명했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 했던 복권 판매 종료 시간인 오후 8시 정각이 아닌 8시 35분에 추첨 생방송을 시작하는 이유도 밝혀졌다.

임 상무는 “동행복권과 복권위원회는 위·변조를 막기 위해 발권 마감 후 20~25분간 감사 작업을 진행한다”며 “복권 판매 정보 저장 공간은 총 5개이며, 동행복권은 메인DB, 백업DB, 파일DB 일치 여부를 확인하고 복권위원회는 감사DB, 감사백업DB의 데이터를 확인하고 최종적으로 값을 서로 비교검증한다”고 말했다.

이어 “데이터 검증 이후 시스템 점검, 추첨 볼 점검을 거쳐 티켓판매마감(오후 8시)으로부터 35분 지난 8시 35분에 생방송이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어쩐지 여기서 1등 많이 나오더라니…‘로또명당’의 비밀
이날 로또 추첨 전 진행된 토크쇼에서 유명 과학 유튜버 궤도와 뇌 과학자 장동선 교수는 로또 추첨과 당첨 번호에 숨은 과학, 우리 뇌의 작용과 연쇄작용 등에 대해 토론했다.

이들은 로또 당첨을 많이 배출하는 ‘로또명당’은 확률에 따른 착시효과라고 꼬집었다. 그곳에서 복권이 많이 팔렸기에 확률에 따라 많은 당첨자가 나오는 것뿐이란 뜻이다.

실제로 서울시 노원구 로또명당의 판매금액 대비 당첨건수 비율은 전국의 지점들과 매우 유사했다.

장동선 교수는 “앞에 사람이 성공했을 때 이를 따라하면 나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심리를 ‘뜨거운 손 현상’이라고 부르는데, 로또명당에 사람들이 계속해서 몰리는 것은 이와 같은 논리라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궤도는 “로또는 ‘독립확률’로 시행된다. 과거의 자료가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게임이다. 로또와 관련된 통계를 아무리 공부한다고 해도 절대로 전문가가 될 순 없다”며 “복권 당첨 확률을 두 배로 올리는 방법은 두 장을 사는 것 뿐”이라고 말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매일경제

추첨볼에 삽입된 ‘무선인식(RFID)칩’ [김민주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석 등을 통한 추첨 조작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추첨볼 안엔 추첨 시 PC에 즉각 인식시키기 위한 ‘무선인식(RFID)칩’이 들어있어 이를 통해 조작이 가능하단 의혹이 항상 따른다.

궤도는 “구리성분 코일이 외부에 반응은 할 수 있지만, 추첨볼에 삽입된 RFID칩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고 무엇보다 추첨기 자체가 아크릴 성분으로 제작돼 자성이 생길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장동선 교수는 “로또 추첨기는 공기혼합방식에 의한 드럼링 회전추출방식인데, 이 원통 안에는 태풍과도 같은 바람이 불고 있다. 이 한가운데서 손톱보다 작은 자석을 원거리서 조작해 원하는 볼 하나를 짚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