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 (3) 자산 시장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재집권이 확정되면서 미 증시가 연일 연고점을 경신하고, 비트코인과 금 등 각종 투자자산이 랠리를 펼치고 있다. 반면 국내 증시는 유독 디커플링(탈동조화) 장세를 보인다. 미국 대선 불확실성이 걷혔고, 금융투자소득세가 폐지됐으며,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데도 백약이 무효다.
전문가들은 국내외 투자 시장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목대균 KCGI자산운용 운용총괄대표, 최준철 VIP자산운용 대표, 박세익 체슬리투자자문 대표에게서 의견을 들어봤다.
지난해 8월 메리츠자산운용에서 사명을 변경한 KCGI자산운용은 출범 이후 6개월 만에 설정액 500억원 이상 국내 일반 주식형 펀드를 운용하는 종합자산운용사 23개사 중 수익률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VIP자산운용은 가치 투자를 지향하는 행동주의펀드로 이름나 있다. 박세익 대표는 자산운용업계에 30년 몸담으며 국내외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을 다룬 투자·운용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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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시에 미치는 영향
반도체 칩스법 철회할지 촉각
트럼프 당선인의 재집권 이후 국내 증시는 파랗게 질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1월 13일 기준 코스피는 전날 대비 65.49포인트(2.64%) 하락한 2417.08로 장을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11월 13일 2403.76 이후 최저치다. 코스피 시가총액은 1970조6632억원으로 지난 8월 5일 ‘블랙먼데이’ 이후 처음 2000조원을 밑돌았다. 특히 반도체·자동차 등 국내 증시를 지탱해온 시가총액 대형주가 크게 꺾였다. 같은 날 코스닥(689.65)도 20.87포인트(2.94%) 하락하며 700선이 무너졌다.
당초부터 시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강화 정책으로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 제조업 중심의 시총 상위 종목들이 발목을 잡힐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박세익 대표는 “2018~2019년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야기한 미중 무역 분쟁과 기습 관세로 국내 증시가 고전한 선례가 있다”며 “글로벌 펀드들이 돈을 빼며 주요 구성 종목이 함께 무너졌다”고 분석했다. 여기서 전문가들이 더 우려하는 대목은 트럼프 당선인이 2017년 취임 당시에는 ‘신참’ 대통령이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경력직’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그가 후보 시절 당시 백악관 복귀 첫날 시행하겠다고 공언한 행정조치만 무려 41개였다.
이를 두고 최준철 대표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와 달리 2기 행정부에선 허니문 기간 없이 미중 무역 분쟁, 나아가 유럽연합(EU), 이웃 국가인 캐나다, 멕시코 등과의 분쟁이 곧장 재점화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최 대표는 “(트럼프 당선인이) 두 번째 집권을 위한 밑그림을 이미 마련해둔 만큼 충성심 높은 사람들로 내각을 꾸리고 나면 백악관 입성 즉시 자국 이익을 위한 충격적인 정책을 내놓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무역 분쟁과 이에 따른 공급망 불안정성 심화는 국내 증시에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다.
이런 전망대로라면 대외 환경 영향을 크게 받는 산업재나, 반도체의 부진은 한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가뜩이나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미국 내 반도체 제조시설을 건설하는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반도체 지원법(칩스법)’을 축소·철회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다만 목대균 대표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미 칩스법에 따른 계약과 자금 지원이 상당 부분 진행 중이기도 하고 트럼프가 자국민 일자리를 저해하는 조치는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목 대표는 “삼성전자 공장이 있는 텍사스, SK하이닉스 공장이 있는 인디애나주, 대만 TSMC 공장 부지가 있는 애리조나주는 공화당 텃밭이 많은 곳”이라며 “중국 반도체에 대한 규제가 한국, 대만 기업에는 오히려 반사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1기 때도 한국, 대만 반도체 기업의 주가는 견조했다는 첨언이다.
비단 반도체가 아니어도 지금처럼 불투명한 국내 증시에서는 그나마 미국 영향이 적은 종목 중에서 투자처를 고르는 것도 좋은 투자 전략이라는 조언도 덧붙는다. 예컨대 대외 환경 영향을 덜 받으면서 지배구조 문제로 저평가돼온 밸류업 기업에 투자하는 식이다.
만약 암울한 국내 증시를 피해 미 증시에 투자할 요량이라면 대선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규제 완화, 법인세 인하 기대감으로 연말까지는 랠리를 기대해봐도 좋을 정도다.
목대균 대표는 “역사적으로 선거 이후 연말까지는 S&P500지수가 4%가량 오르는 경향이 있다”며 “여기에 최근 미국 내 견조한 경제 지표,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 인하는 증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다만 ‘트럼프 트레이드’를 맹신하지는 말라는 조언 역시 새겨들을 만하다. 최준철 대표는 소위 ‘트럼프 수혜주’들은 이미 3~4년 치 기대가 선반영돼 가격이 많이 오른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나마 최근 몇 년간 국내 방산업계가 업황이 좋고 트럼프 트레이드 덕도 많이 봤는데 이 역시 지금 투자하기에는 뒷북이 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박세익 대표의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2017~2020년 당시에는 트럼프 당선으로 유가와 함께 정유사 ‘엑슨모빌(티커 XOM)’의 주가도 덩달아 오를 거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시장의 장밋빛 전망과 달리 엑슨모빌 주가는 트럼프 재임 기간 동안 40%가량 하락했다는 것.
박 대표는 “정책 수혜주라는 것은 생각보다 수혜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트코인 시총, 韓 증시 추월
차기 SEC 위원장 따라 더 오를 수도
한편, 트럼프 2기 출범과 함께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시장이 전성기를 맞을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트럼프가 후보 시절부터 미국 정치권 내 대표 친가상자산파 이미지를 굳혔기 때문이다. 이미 비트코인은 장중 한때 9만달러(약 1억2640만원)를 돌파했고 가상자산 산업에서도 미국이 선두 지위를 뺏기지 않겠다는 트럼프 기조에 따라 비트코인 2억원 시대를 점치는 부푼 기대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동안 가상자산 랠리가 계속될 것으로 봤다.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비트코인 비축 법안’이다. 해당 법안은 미국 국가 부채를 줄이기 위해 연방준비제도가 비트코인 100만개를 20년간 준비 자산으로 보유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목대균 대표는 “이 법안이 실제로 이행될 경우 비트코인의 헤지 기능이 부각돼 가상자산 시장 전반에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봤다.
가상시장에 관심이 있다면 차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을 눈여겨보는 것이 좋다. 현 위원장인 게리 겐슬러는 트럼프가 후보 시절부터 “취임 첫날 자르겠다”고 말할 정도로 가상자산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겐슬러 위원장의 해임은 내년 1월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에 맞춰 단행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새 위원장이 트럼프 기조에 맞춰 그간 조였던 가상자산 규제를 완화한다면 시장에 새로운 수요가 유입될 것으로 봤다.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5호 (2024.11.20~2024.11.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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