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사본’ 통한 비대면 실명 확인 안 된다는 고등법원 첫 판결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김영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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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민사15부(재판장 윤강열)는 22일 60대 남성 회사원 조모씨가 인터넷 전문은행 케이뱅크를 상대로 낸 채무 부존재 청구 소송에서 케이뱅크 측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의 원고 승소 판단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비대면 금융거래에서 실명을 확인하는 방식은 대면거래에서 고객이 직접 창구를 방문해 실명확인증표(신분증)를 제출하는 것을 대체하는 방식이므로, 최대한 대면 거래에 준해 고객이 원본을 소지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인정할 수 있는 정도의 방법을 갖춰야 한다”며 “비대면으로 제출된 실명확인증표가 2차 사본인지 여부를 구분할 수 있는 기술 도입이 어려웠다는 사정만으로는 금융회사의 책임이 가벼워진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실명확인증표가 단시간 내에 무수히 복제돼 다수의 사본 제조가 가능하고, 실제로 부정한 목적으로 사용하려고 시도하는 자들이 타인 명의의 실명확인증표 사본을 대량으로 소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기술적인 한계로 인한 위험 부담을 고객들에게 전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신분증 사본을 다시 찍는 방식으로 실명 확인 절차를 거치는 것까지 허용한다면 범죄 등에 악용될 수 있어 안 된다는 취지로, 금융 회사는 실명 확인 책임을 엄격히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2022년 8월 23일 조씨가 아들을 사칭한 성명불상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은 것이 발단이 됐다. 앞서 2021년에 케이뱅크 모바일뱅킹 앱 계좌를 개설했던 조씨는 그날 오후 5시 40분쯤 ‘임시폰’이라는 대화명으로 아들을 사칭한 성명불상자로부터 “휴대폰 액정이 파손돼 수리를 신청하고 대기 중이다. 아빠의 휴대폰으로 보험금을 신청하려고 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이에 조씨는 이 성명불상자를 아들로 믿고, 메시지 지시에 따라 자신의 휴대전화에 원격 조종 앱을 설치한 뒤 자신의 운전면허증 촬영사진을 보내고 자주 쓰는 4자리 비밀번호도 알려줬다.
성명불상자는 같은 날 조씨 휴대전화를 원격 조종해 케이뱅크 앱에 접속했다. 이 앱에서 간편 비밀번호를 재발급 받기 위해 조씨가 보낸 운전면허증 사진을 재촬영한 사진을 썼다. 이후 성명불상자는 재발급받은 간편 비밀번호와 모바일 일회용 패스워드(OTP)를 이용해 신용대출약정을 체결한 뒤 총 2억2180만원을 대출받았다. 성명불상자는 조씨 통장에 입금된 이 대출금을 수차례에 걸쳐 다른 통장으로 빼돌렸다.
순식간에 2억원 넘는 채무가 생긴 조씨는 ”성명불상자가 명의를 도용해 대출약정을 체결했고, 케이뱅크가 이 과정에서 본인 확인 조치를 소홀히 했다”는 취지로 2022년 10월 은행을 상대로 채무 부존재 청구 소송을 냈다.
서울고법. /조선일보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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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은 조씨의 주장을 전부 받아들이며 조씨 손을 들어줬다. 1심은 전자문서법에 따라 이 사건 대출약정에 조씨 의사가 반영되지 않아 법률적 효과도 없다고 봤다. 전자문서법은 어떠한 전자문서가 작성자 본인 또는 그 대리인의 의사에 따라 작성된 것이라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 전자문서에 기재된 내용을 따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케이뱅크가 조씨라고 믿을 만한 이유도 없이 대출을 허용한 만큼 이 규정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케이뱅크 측은 “대출약정 당시 피고는 조씨의 자동차 운전면허증 2차 사본을 이용해 비대면으로 실명확인을 하는 등 본인 확인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기 때문에 대출약정에 따른 법률적 효과는 조씨에게 있다”는 요지로 항소했으나 이날 2심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휴대전화를 통한 모바일 뱅킹이 일상화되면서 이러한 2차 사본 허용 여부를 둘러싸고 각기 다른 견해의 법원 판단이 나오고 있다. 이날 판결로 2차 사본 제출 방식의 한계가 2심에서 처음 인정됐는데, 향후 대법원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가 관건이다. 앞서 지난 4월 수원지법 민사4-2부는 성명불상자가 피해자 이모씨의 2차 사본으로 명의를 도용해 페퍼저축은행에서 9000만원을 불법 대출받은 사건 2심에서 1심 판단을 뒤집고 은행 측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당시 “실명확인증표 사본 제출이 반드시 신분증 실물 소지 상태에서 그 실물을 바로 촬영한 파일을 제출하는 경우로 한정된다고 볼 근거가 없다. 만일 그렇게 좁게 해석한다면 다수의 전자금융거래를 하고자 하는 당사자는 거래를 할 때마다 따로 실명확인증표 원본을 준비해 촬영한 뒤 그 파일을 각각 업로드해야 되는데 그것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없다”면서 “금융기관이 실명확인증표 사본을 제출받는 경우 실물확인증표 원본을 직접 촬영 또는 스캔한 사본인지, 아니면 그 사본을 타인이 전달받거나 다시 촬영한 사본인지 식별하는 것 자체가 기술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이 사건은 피해자 측의 상고로 현재 대법원 판단을 앞두고 있다.
이처럼 갈리는 법원 판단에 대해 서울고법은 이날 “이 사건 쟁점에 대해 항소심 판단이 엇갈리고 있으므로, 최종 결론은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면서도 “이날 판결은 향후 유사 사건의 판결과 금융 회사의 실무 운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의의를 뒀다.
[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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