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
메디치(Medici)은행은 1397년에 시작해서 약 100년간 지속되었던 이탈리아 은행이다. 메디치 패밀리 소유 은행이었는데 당대에 가장 크고 신용있는 금융기관이었다. 메디치가는 금융권력을 확장해 정치에까지 진출했다. 1434년부터 피렌체공화국의 비공식 군주였다. 교황도 배출했다. 볼테르는 이름 하나만으로 그렇게 권력을 유지한 가문은 없었다고 했는데 요즘 말로 브랜드 파워다. 파워와 돈으로 예술을 후원해 르네상스 시대 문화적 기여도 지대했다.
메디치은행 하면 복식부기의 창안자로 가장 잘 기억된다. 거래장부(원장)의 효율성을 한 차원 높였다. 코시모 메디치(1389-1464) 대가 전성기였다. 거의 전 유럽에 지점을 두었다. 은행업을 접은 후에도 메디치는 계속 번성했다. 1743년에 막을 내릴 때까지 전성기만 300년이 넘는다.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에 가보면 메디치의 화려했던 역사를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 안나 마리아 루이사 데 메디치가 유언으로 모든 예술품의 피렌체 외부 반출을 금지했기 때문에 모든 작품은 피렌체에 꼭 가야 볼 수 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다빈치의 '수태고지,' '동방박사들의 경배'도 거기에 있다. 피렌체 시민들은 75세로 타계한 마지막 메디치를 성대한 장례로 잘 보내주었다고 한다.
메디치의 퇴장 이유는 인류 역사에서 상당히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이유였다. 왕가이든 재력가이든 지속 가능하려면 능력있고 열정있는 후세를 최대한 많이 두어야 한다. 특히 정치권력이 아닌 금권을 가진 패밀리의 경우 자손들이 집안의 본업이 아닌 다른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일단 가업을 승계할 후보자가 많지 않게 되고 그 많지 않은 후보자 중에서 유능한 승계자가 나와야 하는데 사업이 커져 있을수록 쉽지 않다. 승계가 수백 년 지속되는 것은 더 어렵다. 메디치의 경우도 그에 해당한다. 메디치뿐 아니라 무수히 많은 가족기업이 긴 세월 사업을 지속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또, 가업을 승계해서 경영자가 된 2세, 3세라 해도 그중 많은 경영자들은 영어에서 말하는 '3루에서 태어난'(born on third base) 사람들이다. 그런데 배리 스위처의 말처럼 그중 어떤 승계자는 자신이 3루타를 친 것으로 생각하고 산다. 그 경우 대체로 거기서 가운은 방향을 틀게 된다.
로스차일드(Rothschild) 패밀리가 대조적이다. 16세기 중반에 역사에 등장한다. 가문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마이어 로스차일드(1744-1812) 때인데 마이어 로스차일드는 이탈리아에서 메디치가 막을 내린 바로 뒤에 금융업을 시작했다. 다섯 아들과 함께 전 유럽을 커버하는 금융 네트워크를 건설했다. 파리, 프랑크푸르트, 런던, 빈, 나폴리다. 가문의 문장에 다섯 개의 화살이 보인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신성로마제국과 영국에서 귀족 지위에 올랐다. 18세기 최대의 부호였다.
그 전에 16, 17세기의 부호들은 걸핏하면 재산을 남에게 빼앗겼다고 한다. 강도 아니면 권력자다. 그래서 이름이 오래 남아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런데 로스차일드는 재산을 남이 쉽게 뺏을 수 없는 형식과 방법으로 간수했다. 채권, 채무증서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분산시켜 고정 자산을 줄였고 남이 쉽게 찾지 못하는 방식으로 은닉했다.
아무도 로스차일드 패밀리와 그 사업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고 기록도 별로 없다. 그래서 한 역사가가 '로스차일드에 대한 헛소문'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쓰려고 하다가 그런 책은 그러면 진실이 무언지를 알려주어야 하는데 알 수가 없어서 접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비밀주의에 가장 요긴한 방법론은 가족 경영이다. 다섯 아들에서 출발해서 사업과 재산을 가족들이 관리했다. 혼맥도 왕가에서 쓰는 방식을 따라 잘 관리했다.
마이어 로스차일드는 아들들에게 "사람들(직원들)에게 사랑받으려 애쓰지 말고 사람들이 너희를 무서워하게 하라"고 가르쳤다 한다. 직원들은 소프트한 회장, 상사를 존경하지만 그 밑에서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성격이 나빠서 지독히 싫어하지만 무서운 상사가 시키는 일은 빠르고 빈틈없이 한다. 야단맞기 싫고 마주하기 싫어서다. 마키아벨리도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은 배신하지만 보복할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은 쉽게 배신하지 못한다"고 군주의 덕목(?)을 가르쳤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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