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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예쁜 쓰레기" 취급받던 아바 음악의 숨겨진 승자 독식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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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금평의 열화일기] ①'아바 : 더 레전드'(against the odds : 역경에 맞서)

[편집자주] 20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끝났지만, 그 재미와 감동은 계속된다. 수많은 뮤지션들이 보여준 역량과 능력 뒤에 숨은 갖가지 사연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생'이다. 영광만 가득한 것 같아도 슬픔의 멍울이 가라앉지 않고, 재기하지 못할 것 같던 운명의 그림자도 열정과 의지 앞에선 자취를 감춘다. 결국 그들의 '특별한 삶'도 우리 인생을 대리하고 되돌아보게 한다. 그 순간들에 조명을 켜고 다시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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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아바(ABBA) 멤버들. (왼쪽부터) 베뉘 안데르손 (키보드, 보컬), 안니프리드 륑스타 (보컬), 앙네타 펠트스코그 (보컬), 비에른 울바에우스(기타, 보컬) 아바는 멤버들의 초성 알파벳 이름만을 모아 딴 그룹명이다. /사진=Rogan Credit Ala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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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국민그룹 아바(ABBA)가 인기를 서서히 얻을 무렵, 싸구려 비평들이 쏟아졌다. 비틀스를 보유한 영국은 대놓고 "싸구려 음악"이라고 평가했고, 스웨덴의 잘 나가는 청어 통조림 회사 '아바'에 비견하며 음악가(?)라는 물음표로 비아냥댔고, 심지어 멤버들 의상까지 "싸구려"라고 지적했다.

잘 빠진 멜로디 라인과 (지금 들어도 손색없는) 탁월한 리듬 감각으로 내는 음반마다 전 세계를 석권했지만, 미국만큼은 뜻대로 되지 않아 의지가 꺾이기도 했던 그들. 여기에 남미 쿠데타, 동남아시아 전쟁에는 전혀 무관심한 듯 상업적 노래에만 천착한 색깔의 음악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아바를 '악'으로 규정한 건 댄스 음악을 향한 일종의 시대적 분노였다.

노래를 일이 아닌 놀이로 여겨 10년을 즐겁게 노래하고 춤을 춘 그들도 "음악에 진심이 안 보인다"고, "예쁜 쓰레기 음악"이라고 예술의 적으로 보는 이들을 쉽게 넘길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아바는 호주에서 특히 인기가 절정에 달했다. 비틀스보다 더 큰 규모의 무대, 롤링스톤즈보다 두 배나 더 큰 무대를 통해 흥행에 성공했지만, 멤버들은 "나중에는 즐겁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듯, 인기의 침윤(浸潤)이 거세질수록 성희롱은 일상이 됐고, 음악 대신 몸 얘기로 대화는 채워졌고 여성 멤버들 사이가 나빠졌다는 가짜 뉴스까지 등장했다.

안니프리드 륑스타(보컬)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멤버의 불화 소식은 사실이 아니다"며 "우리는 그럴수록 서로 아끼고 챙겼다"고 했다.

뮤지컬 '맘마미아'를 통해 아바를 알게 된 젊은 세대들은 아바의 노래를 통해, 춤을 통해, 인기를 통해 4명의 콤비가 순항의 역사를 이어온 것으로 여기기 쉽지만, 과정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순탄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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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네타 펠트스코그 (보컬, 왼쪽)와 비에른 울바에우스(기타, 보컬)는 1970년대 초반 활동 초기에 결혼했다가 80년 이혼했다. /사진=Rogan Credit Ala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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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대체로 성공의 안위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어두운 단면들에 초점을 맞췄다. 1978년은 미국에서 음반이 가장 안 팔리는 해로 기록됐는데, "'앨빈과 수퍼밴드' 같은 노래"라는 악평과 함께 '김미 김미 김미'(Gimme! Gimme! Gimme!-A Man After Midnight, 자정의 사나이)는 동성애적 혐오의 표현이라며 디스코를 악마화하기까지 했다.

아바의 활동 중 가장 슬픈 그림자를 떠올린다면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녹화하던 날, 누구보다 행복한 부부로 보였던 '그들'이 크리스마스에 정작 결별했다는 사실이었다. 잉꼬부부처럼 보였던 이들은 방송 녹화 내용과 달리, 방송이 송출되던 크리스마스에 앙네타가 애들을 데리고 비에른을 떠난 것이다. 화자에 따르면, 방송 녹화 뒤 호텔로 들어가는 앙네트는 외롭고 슬퍼 보였다. 그리고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에는 머물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명제를 남기고 둘은 '따로 또 같이' 생활해야 했다.

아바를 향한 소수의 전세계적 비아냥에도 꿋꿋이 버텨낸 건 역시 음악이었다. 펑크(Punk)의 등장으로 착한 이미지인 아바는 벼랑 끝에 내몰리고, 거친 이미지인 섹스피스톨즈는 승승장구하던 그때,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됐다. 아바를 거칠게 몰아붙일 것 같았던 섹스피스톨즈가 사실은 24시간 내내 카세트에 아바 노래만 듣고 다녔던 아바의 '찐팬'이었다는 것이다.

당대 날고 기는 록스타인 레드제플린(Led Zepppelin)과 더후(The Who)까지 윔블리 공연장에서 열린 아바 공연을 관람한 것도 아바의 존재력과 음악적 가치가 무엇인지 방증하는 대표적 사례로 회자됐다. 아바는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깔봐도 내가 좋으면 그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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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보컬 멤버들인 앙네타 펠트스코그 (왼쪽)와 안니프리드 륑스타는 '사이가 안 좋다'는 소문과 달리, "그럴수록 더욱 서로 아끼고 챙겼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사진=Rogan Credit Ala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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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수의 정치적 무관심에 늘 비판의 화살이 쏟아진 아바도 '치키티타'(Chiquitita)라는 곡을 통해 감동적인 세계적인 그룹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남미의 어려운 국제정세 속에서 아이를 향한 따뜻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로 유니세프 모금과 함께 반향을 일으킨 것은 분명 정치적 연대 행위의 확장이었다.

제목부터 스페인어로 정하면서 '의도'를 드러낸 이들은 스페인어 선생까지 동원하며 배운 스페인어 가사를 '의식'적으로 불렀다. 세계는 이 곡으로 "아바에겐 '댄싱퀸'만 있는 게 아니었다"며 "예술은 영혼을 달래준다는, 연대의 더 큰 뜻이 담겼다"고 칭송했다.

여담이지만, 수입의 85%를 매기는 스웨덴 정부를 향한 아바의 애국심도 남달랐다. 인터뷰어들이 대개 "너무 세금이 많은 것 아니냐"고 따져 물을 때마다 멤버들은 "그래서 우리는 백만장자가 아니다"면서 "돈이 전부는 아니다"고 했다.

멤버들 중 유독 감성적이었던 앙네타는 '더 위너 테이크스 잇 올'(The Winner Takes It All, 1980)을 녹음할 때, "우리 네 명의 사랑과 인생이 담긴 곡"이라며 "내 모든 감정을 이 곡에 다 쏟아부으려고 했다"고 전했다.

"~어디 깊숙한 내면에/내가 당신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해요/하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건/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죠~."('The Winner Takes It All' 중에서)

자유와 규칙, 끌림과 자제를 오가며 오롯이 지켜낸 건 누구나 소유하고 싶은 승자 독식의 '음악'이었을지 모른다. "누가 스웨덴 음악을 듣겠는가"라는 회의로 유로비전에 참가했다는 아바는 스웨덴과 스웨덴의 음악을 더 많이 알리기 위해 세월을 이기는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켰다. 그 굴곡의 과정이 무엇이든, 우리에게 또렷이 기억되는 건 승자 독식의 음악뿐이다.

김고금평 에디터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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