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법원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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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을 받을 수 있었던 사람이 타인의 불법행위로 사망했을 경우,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을 유족들에게 먼저 상속한 후 그 한도 내에서 유족연금을 공제해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이는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에서 유족연금을 먼저 공제한 후 나머지를 상속인들에게 각자의 상속분 비율에 따라 공동상속한다”는 ‘공제 후 상속’ 방식을 채택했던 1994년의 대법원 판례를 30년 만에 변경한 것이다. 유족연금을 받지 못한 상속인들이 손해를 배상받을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취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퇴직연금에서 유족연금을 공제하느냐가 문제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심을 일부 파기하고 ‘상속 후 공제’ 취지로 서울중앙지법에 해당 사건을 환송한다고 21일 판결했다.
2016년 택시 추돌사고로 사망한 대학교수 ㄱ씨의 유가족인 피고인들은 가해차량이 가입된 공제사업자 ㄴ사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ㄱ씨는 1996년부터 대학교수로 재직했기에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의 적용 대상자다. ㄱ씨의 정년은 2034년이었던 만큼 재직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사망했기에 유가족들은 직무상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다.
손해배상금과 유족연금에 대한 상속·공제의 순서가 이번 전원합의체 사건의 쟁점이 됐다. ㄱ씨의 배우자는 유족연금을 받은 상황이었지만, ㄴ사는 유족연금 금액을 손해배상금에서 먼저 공제해야 하기에 두 자녀에게 손해배상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유가족 쪽에서는 자녀들은 수급권자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배우자에 대해서만 유족연금이 공제되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1심에서는 법원이 ㄱ씨 유가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손해배상채권이 먼저 각자 상속되고, 유족연금은 ㄱ씨의 배우자에게서만 공제되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하지만 2심에서는 이를 뒤집어 기존 대법원 판례였던 ‘공제 후 상속’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원심의 판단에 따를 경우 퇴직연금 일시금에서 배우자가 기한까지 받을 유족연금을 공제하면 그 후 남는 손해배상채권 잔액은 없다.
이날 대법원은 직무상 유족연금이 해당 수급권자가 상속한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금을 한도로 해 그 안에서만 공제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직무상 유족연금의 지급으로 수급권자(배우자)가 아닌 다른 상속인들(자녀)이 상속한 손해배상금에 대해 전보(보상)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며 “만약 이를 공제한다면 손해배상채권의 전부 또는 일부가 박탈당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종전의 판례처럼) ‘공제 후 상속’ 방식과 같이 공제 범위를 넓게 인정한다면, 사회보장제도를 유지하는 재원으로 가해자의 책임을 면제시키는 결과가 되고 수급권자의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을 위한 사회보장법률의 취지가 잊혀진다”고 설명했다.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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