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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유물 2000개로 보는 태초의 모계 사회[책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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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의 언어

마리야 김부타스 지음 | 고혜경 옮김

한겨레출판사 | 416쪽 | 7만5000원

경향신문

기원전 4800~4600년경 루마니아에서 만들어진 뱀 여신상. 한겨레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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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공동체는 태초부터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가부장제’ 사회였을까. 고고학자이자 선사학자인 마리야 김부타스는 부계 사회 이전에 모계 사회가 있었다는 역사를 밝혀냈다. 김부타스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남성 중심 문명은 일시적이며 전쟁과 지배의 문화는 병리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김부타스의 <여신의 언어>는 1989년 처음 출간돼 고대 그리스를 원류로 삼았던 서구 문명에 큰 충격을 줬다. 한국에선 2017년 초판이 절판된 이후 7년 만에 복간됐다. 이 책에는 기원전 7000년경부터 3500년까지 고대의 사원, 신전, 무덤에서 발굴된 조각, 인형, 프레스코화 등 2000개가 넘는 유물의 도판과 그림이 실렸다. 용어 해설, 연대표, 유물 출토지 지도까지 부록으로 담아 1만년 전 세계를 복원한다.

신석기 시대까지 신을 묘사한 석상의 90%는 남신상이 아니라 여신상이었다. 김부타스는 여신을 모성으로 설명하는 유럽 문명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여신들의 다양한 주제와 상징을 밝혀냈다. 특히 고대 유럽에 전쟁이 없었다는 주장은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김부타스는 고대 농경 사회에선 전쟁이 아닌 평화가, 권위가 아닌 평등이 중요한 가치였다고 설명한다. 여신 중심의 유럽 모계 사회가 유목민족인 쿠르간족의 침략으로 무너지고 남신 중심의 가부장제가 이식됐으며, 여신들은 남신들의 아내와 딸로 전락했다고 주장한다.

경향신문

1950년대부터 시작된 김부타스의 연구는 남성 중심 기존 학계에선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1970년대 여신 연구가 활성화되며 뒤늦게 조명받았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 작가 레너드 쉴레인, 페미니즘 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도 김부타스의 연구를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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