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흉화복吉凶禍福을 점치다." 길조와 흉조, 재앙과 복을 점치는 행위를 말한다. 참 이상한 일이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들은 길흉화복에 예민하다. 그래서 이를 미리 확인하려 드는 이들도 숱하다. 하지만 역사는 '미신'이나 '점' 따위가 기록하는 게 아닐진대,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많은 이들이 '흉조'를 운운했는데도 노량해전에 참전한 이순신처럼 권력자라면 '담대할' 필요가 있다.
권력자라면 미래를 점치기보단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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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소원을 비는 외침이 끝나자마자 하늘에서 큰 별 하나가 하얀 선을 그리며 이락파李落坡 앞바다로 떨어졌다. 모두가 고개를 들어 별이 떨어지는 하늘을 쳐다봤다. 진린 또한 이 모습을 보고 나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락파… 이락파라…." 천문과 관상에도 일가견을 자부해왔던 그는 이내 붓을 들었다.
"내가 밤에는 하늘의 모습을 보고 낮에는 인물을 살펴보는데, 동방의 큰 별이 희미해져 가고 있으니 공의 화가 멀지 않은 듯하오. 공이 어찌 모르시겠소. 어째서 제갈 무후의 양법(재앙을 물리치기 위한 제사 양식)을 쓰지 않으시오(吾夜觀乾象 晝察人事 東方將星將病矣 公之禍不遠矣 公豈不知耶 何不用諸葛武侯之禳法乎)." 이렇게 글을 써서 조선 함대의 지휘선에 전달하도록 지시했다. 전투를 앞두고 몸조심하라는 뜻으로 보낸 것이다.
이순신 제독은 진린의 서간을 보고 희미하게 웃으며 답서를 썼다. "나는 충성이 무후에 미치지 못하고, 재주가 무후에 미치지 못하고, 덕망이 무후에 미치지 못하오. 돌이켜보건대 이 세 가지가 모두 무후에 미치지 못하니 비록 무후의 양법을 쓴다 해도 하늘이 어찌 들어 주리오(吾忠不及於武侯 才不及於武侯 德不及於武侯 顧此三件事 皆不及於武侯 而雖用武侯之禳法 天何應哉.)"
1598년 9월 18일 새벽 2시. 경상우수사인 입부 이순신의 눈에 거대한 구름 같은 물체가 이동해오는 모습이 들어왔다. "쏴라!" 하는 경상우수사의 외침 소리가 적막을 깼다. 왜군의 선두 전함들을 향해 판옥선들이 일제 불을 뿜자 적선 몇척이 한순간에 부서졌다. 한 성깔 한다는 사쓰마번 군사들이 함대를 몰아 전속력으로 다가오자 경상우수영 함대는 재빨리 뱃머리를 돌려 후퇴했다. 이를 추적하는 적선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윽고 노량해협 서쪽 끝으로 몰려나왔다.
노량 해협을 막 빠져나온 왜군 함대를 향해 명군 함대가 먼저 포를 쏘아대면서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명군 함대는 멀리 순천왜성을 등지고 있는 반면 왜군 함대는 곤양 쪽을 등지고 있었다. 물때는 명군에 불리했다. 조수를 거슬러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상황은 이순신의 시나리오대로 진행된 것이다. 명군 함대가 해류를 따라 뒤로 물러서자, 왜군 함대가 압도적 기세로 진격했다.
노량해전을 앞두고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이순신은 개의치 않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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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관음포 섬 그늘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순신의 주력함대가 일제히 천지·현자 대포를 마구 쏘아댔다. 명군 함대가 겪어야 했던 역풍과 역조가 때를 맞춰 곤양 쪽으로 흐르는 순풍과 순조로 바뀌기 시작했다.
화공은 원래 명나라 수군 부총병인 등자룡의 주특기였다. 등자룡이 탄 판옥선에서 화약을 빚어 만든 각종 화공 무기들을 적의 갑판 위로 던져댔다. 순식간에 8~9척이 불타버렸다. 진린이 탄 판옥선도 화공무기로 적선 10여척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 진린의 병사가 화공무기를 잘못 던져 등자룡의 판옥선에 불이 붙었다. 엄청난 화력에 혼비백산한 명군 장졸들이 불을 끄려고 좌충우돌했다. 등선육박전에 능숙한 왜군 검객들이 갑판위로 떼로 몰려들어 등자룡과 휘하 장졸 70여명을 찔러 죽였다.
등자룡은 나이 70이 넘은 노장으로 강직한 기풍이 넘치는 인물이었다. 그 역시 진린과 함께 이순신의 충의용략을 흠모하면서 이런 말을 자주했다. "내 나이가 이미 70을 넘었으니 언제 죽더라도 아깝지 아니하다. 그런데 천하의 으뜸가는 조선의 이순신과 함께 전쟁터에 나선 것은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노량해협 일대에 치솟은 불빛이 강해졌다. 불타오르는 적의 함선이 하나둘씩 늘어났기 때문이다.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왜군 함선들의 숫자도 늘어나고 있었다. 대포 소리, 조총 소리, 군사들의 아우성 소리가 뒤섞여 강산을 뒤흔들었다. 마치 지옥문을 열어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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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8년 11월 19일 새벽 5시. 왜적 수군은 지옥 같은 노량 해역을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적의 사령관 도진의홍은 '이순신과의 싸움에서 절대로 질 수 없다'는 자존심으로 전투를 지휘하고 있었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소서행장이 이끄는 순천왜성의 군사와 합세하게 되면 승산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너무도 어이없는 상황에 화가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이때쯤이면 소서행장이 진린과 이순신의 배후에서 치고 나와야 하는데 감감무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도진의홍은 "남해도로 돌아 퇴각하라!"라는 명령을 내렸다. 적의 함대가 일제히 좌회전하면서 방향을 틀었다. 이때였다. 이순신의 함대가 더욱 맹렬한 기세로 대열 옆구리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토끼몰이하듯 왜군 함대를 관음포로 몰아붙였다. 왜군 병선들은 이순신 함대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신없이 속도를 높여갔다. <다음호에 계속>
이남석 더스쿠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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