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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아일랜드 보이즈, 그들의 공포와 아픔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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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감독이 20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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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너무 얼굴이 선하게 생기셨어요. 이분들 표정 보면 다 느끼실 거예요. 국가가 잘못한 게 맞는다고요.”



이제는 60살을 넘겨 중노년이 된 이들이 하나둘 카메라 앞에 앉아 저마다의 어린 시절을 증언한다. 결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게 묘사할 수 없는, 외딴섬에 납치돼 짐승 취급을 당하며 보내던 하루하루에 관해 말한다. 노역과 굶주림과 매질과 성폭행, 그리고 죽음과 암매장. 끔찍한 기억들을 담담히, 또는 울먹이며 토해내는 그들의 육성이 영화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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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보이즈’의 한 장면. 진실화해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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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보이즈’의 한 장면. 진실화해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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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보이즈’는 선감학원에 끌려갔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선감학원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2022년 10월부터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230명에 대해 인권침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지원으로 제작되는 첫 영상 작품으로, 25일 0시15분 문화방송(MBC)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를 통해 공개된다.



행정구역상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이었던 선감도의 선감학원은 1942년 조선총독부가 설립해 해방 직후인 1946년 2월 경기도에 넘겨준 아동강제수용시설이다. 경기도가 도유지 재산관리를 위해 1982년까지 직접 운영한 이곳에서 대한민국 현대사 최악의 아동착취가 벌어졌다. 연출을 맡은 독립제작사 ‘부뚜막고양이’의 김명환(54) 대표는 “얼굴을 드러내고 증언하는 선감학원 피해생존자들을 통해 그들이 겪은 공포와 아픔에 조금이라도 다가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명환 대표를 2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선감학원은 지옥이었다. 밤마다 곡괭이로 맞고 곰팡이 핀 보리밥을 먹던 아이들은 탈출을 꿈꿨다. 기어코 섬을 빠져나가려던 아이들은 갯벌과 바다를 건너지 못한 채 주검이 되어 돌아오기 일쑤였다. 동굴에 숨어있다 잡혀 온 형제 중 동생은 400여명이 지켜보는 강당에서 도르래로 올려졌다가 기절한 뒤 깨어나지 못했다. 공개처형이나 다름없었다. 영화를 채우는 그 증언들 사이로 외딴섬을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하늘과 바다, 갯벌의 풍경이 초고속으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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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보이즈’의 한 장면. 진실화해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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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대표는 “재연은 최소화하고 풍경 촬영에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생존자들의 증언과 함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고해상도의 포케이 유에이치디(4k UHD) 카메라로 촬영한 선감도 인근의 자연이다. 빈 갯벌에 물이 들어왔다가 빠지고, 노을 진 하늘에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긴 시간이 타임랩스 기법으로 순식간에 지나가기를 반복한다. 한국에서 자연 다큐멘터리 촬영의 일인자로 꼽히는 임완호 촬영감독이 참여했다. “피해생존자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들이 어린 시절 보았던 풍경들과 연결시키려고 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대한민국 최악 아동착취’ 영상으로
곰팡이 보리밥에 곡괭이 폭력 난무
탈출 꿈꾸다 죽음으로 돌아오기 일쑤
경기도 운영하며 82년까지 5759명 수용



재연 최소화하고 풍경 촬영에 공 들여
25일 문화방송·웨이브 통해 공개
진실화해위 지원 제작 첫 영상 작품





김명환 대표는 제이티비시(JTBC) 피디로 오래 일해온 방송인이다. 제이티비시 교양팀장에 이어 탐사제작부장을 맡다가 2021년 3월에 나와 독립제작사 ‘부뚜막고양이’를 차렸다. “선감학원은 2015년 제이티비시에서 ‘이규현의 스포트라이트’를 담당할 때 다룬 적 있어요. 피해생존자분들이 증언하시면서 너무나 눈물을 흘려 잊을 수 없습니다. 그때는 선감학원 문제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던 터라 사건 실체에 집중했지요. 진실화해위 조사로 어느 정도 진상이 규명된 지금 시점에선 피해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하면서 시청자들이 공감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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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보이즈’의 한 장면. 진실화해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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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증언자들을 위한 스튜디오 세트를 5가지 섹션으로 나눠 제작했다고 한다. 감금, 학대, 탈출과 죽음, 트라우마, 전문가 설명이다. 단조로움을 피하고 몰입도를 높이도록 미술감독이 효과를 냈다. 덕분에 상영 시간 50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선감학원 원아 대장에 따르면 1982년까지 선감학원 총 수용인원은 5759명이었다. 부랑아 수용시설을 표방했지만, 부랑아 수가 절대적이지 않았다. 영화 속에 나오는 이주성(64)씨는 수원문화원 사무총장의 아들이었고, 정효일(66)씨는 육군 중령의 막내였다. 원아 70%가 가족이 있었다. 이런 아이들을 역과 유원지와 거리에서 아무렇게나 잡아와 선감도로 넘긴 이들은 악마가 아니었다. 평범한 경찰과 도 공무원들이다. 영화 속에서 이주성씨는 절규한다. “저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저를 이렇게 만든 그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김 대표는 남북철도 연결을 꿈꾸는 ‘남북철도, 기적의 오디세이’로 2022년 통일언론상을 수상하는 등 묵직한 역사 다큐멘터리로 이름을 알려왔다. 다음 작품을 물으니 ‘아일랜드 보이즈’ 공개 4일 뒤에 곧이어 세상에 나온단다. 28일 엠비시에서 방영하는 ‘안중근, 다시 평화를 외치다’로, 뤼순과 하얼빈 등 현지 촬영에 상당히 힘을 쏟았다고 귀띔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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