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격전 당시 피해를 본 집을 리모델링해 만든 연평도 안보교육장. 이승욱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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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도 없고, 도망갈 수도 없고….”
60대 ㄱ씨가 겪은 포격전은 연평도에 들어온 지 1년이 되는 해인 2010년이었다. 2009년 부대 공사에 참가한 남편과 연평도에 발을 디딘 ㄱ씨에게 연평도의 첫인상은 ‘고요함’이었다. 뜨문뜨문 포격 훈련이 있었던 것 빼고는 말이다. 이듬해 11월23일 오후 2시34분 포탄 소리가 들렸을 때도 사실 걱정은 없었다. ‘오전 포사격 훈련이 오후에도 이어지는 모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다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든 것은 얼마 뒤 앞집으로 포탄이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을 때였다. 공포에 사로잡혀 대피하는 사람들에 휩쓸려 인근 대피소에 도착한 ㄱ씨는 당시의 모습은 그저 아수라장이었다고만 회상했다.
지난 8일 오전 11시30분 연평종합회관에서 만난 ㄱ씨는 “대피소도 엄청 좁았고 사람들이 많았다. 몸 하나 누울 곳이 없어서 쪼그린 상태에서 겁에 질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옹진군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지난해 섬 주민 중 195명을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를 벌였다. 이 결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인원은 29명, 전체의 14.9%에 달했다고 21일 밝혔다. ㄱ씨도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29명 중 하나다. 22개 항목인 이번 검사는 ‘사건충격척도 검사’와 2개 문항의 ‘우울증 건강설문 조사’ 등이 포함됐다. 29명은 이 두 검사에서 모두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주민들은 “연평도 포격전 당시 상황을 사진처럼 기억한다”고 답했다. 연평도 토박이인 ㄴ씨(70대)는 “당시 공공근로작업을 위해 마을에서 떨어진 산길에서 풀을 뽑고 있었는데, 포탄이 머리 위를 지나 마을에 떨어지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이에 산 밑에 숨어있던 ㄴ씨는 “마을로 돌아왔을 때 폐허가 됐다”며 “산 앞에 세워뒀던 자동차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남편하고 통화가 됐을 때 내 위치를 말해도 ‘몰라. 몰라’만 반복할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고 기억했다.
전수조사를 진행한 옹진군 정신건강복지센터 사회복지사는 “특정 장소에 가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는 게 전형적인 고위험군의 특징이다. 당시 자신의 선택으로 지인이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주민들은 그 경향이 더 크다”고 말했다.
트라우마는 그 자체로 질환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도가 심해지고 빈도가 반복적이게 돼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발전된다고 한다. 때문에 이들의 상황이 더욱 나빠지지 않도록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이에 옹진군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주민 중 희망자 6명을 대상으로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센터 관계자는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주민들은 일상생활은 가능하시지만, 워낙 큰 사건을 겪어 이제는 안전하다는 내용의 지속적인 치유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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