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상속인 권리 보호 위한 것”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교통사고로 숨진 카이스트 교수 신모씨의 아내와 자식 2명이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전원 일치 의견으로 원심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퇴직 연금과 유족 연금이 중복 지급되는 경우, 퇴직 연금에서 유족 연금을 ‘공제 후 상속’하라는 1994년 대법원 판례를 변경해 ‘상속 후 공제’하라고 한 것이다. 남은 가족들의 생계 보호 등을 위해 더 많은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 소송은 교수 신씨가 2016년 9월 충북 단양에서 오토바이를 몰다가 불법 유턴하는 택시와 충돌해 사망한 것이 발단이 됐다. 신씨 아내와 자식들은 사고 배상 책임이 있는 택시연합회를 상태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망인이 살아있었다면 받았을 급여와 퇴직 연금 등을 배상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신씨 아내가 이미 별도의 유족 연금을 지급받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됐다. 퇴직 연금과 유족 연금은 남겨진 가족들의 생활 보장과 손실 보상을 위한 것으로 중복 지급할 수 없다. 택시연합회가 지급해야 하는 퇴직 연금 성격의 손해배상금에서, 신씨 아내가 받는 유족 연금을 어떻게 공제할지가 재판의 쟁점이 됐다.
신씨 가족들은 퇴직 연금을 먼저 상속한 뒤 중복되는 유족 연금만 공제하는 ‘상속 후 공제설’을 주장했다. 예컨대 망인의 퇴직 연금 2억원을 먼저 배우자(8000만원)와 자녀 2명(1억2000만원)에게 나누어 상속한 뒤, 유족 연금 1억원을 배우자 몫에서만 공제하는 것이다. 이 경우 유족 연금을 받는 배우자는 퇴직 연금을 한 푼도 못 받게 되지만, 세 명의 가족이 수령하는 퇴직 연금 총액은 1억2000만원이 된다.
반면 대법원 판례는 그간 ‘공제 후 상속설’을 지지해왔다. 퇴직 연금 2억원에서 유족 연금 1억원을 공제한 뒤, 남은 1억원을 배우자와 자녀 2명이 나누어 상속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르면 가족들이 받게 되는 퇴직 연금 총액은 1억원으로 상속 후 공제하는 경우보다 적어진다.
1심은 가족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상속 후 공제설’에 따라 판결했지만, 2심은 기존 판례인 ‘공제 후 상속설’을 따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기존 판례를 ‘상속 후 공제설’로 변경하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사고로 사망한 공무원·교수 등의 가족들에게 더 많은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망인이 받을 수 있던 퇴직 연금 상당의 손해배상 채권은 상속인들에게 공동 상속되고, 그 후 유족 연금 수급권자가 상속한 손해배상 채권에서만 유족 연금이 공제돼야 한다”면서 “원심은 유족 연금의 공제 순서와 범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종전 판례는 유족 연금을 받지 않는 상속인들에 대해서도 연금을 공제하게 돼 손해 회복을 받지 못한 상속인의 배상 채권을 침해했고, 사회보장제도의 재원으로 가해자를 면책시키는 결과에 이를 수 있었다”면서 “‘상속 후 공제’ 방식을 채택해 상속인들의 권리를 더 보호하고 사회보장법률의 목적과 취지에 부합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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