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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약탈의 경제학 1편에서 수출 대기업이 '올 3분기 영업이익률이 가파르게 상승한 상황'에서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희망·명예퇴직을 밀어붙이는 역설적 상황을 알아봤다. 수출 대기업들의 실적이 좋아지면, 임금을 올려줘서 소비가 살아날 것이라던 정부의 기대가 깨진 현실도 함께 짚어봤다. 약탈의 경제학 2편에선 늘어난 이득이 흘러 들어간 '경로'를 분석했다.
■ 희망퇴직의 결과물=최근 진행 중인 대규모 희망퇴직이 경제 선순환의 고리를 끊을 것이란 의견이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올해 실질임금이 상당히 늘어날 가능성이 있어서다. 실질임금은 물가를 반영한 임금인데 2021년 이후 우리나라 근로자들 임금 증가율은 2021년 3.9% 2022년 3.8% 2023년 3.4% 2024년 3.8%(통계청)였다. 하지만 연도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2021년 2.5% 2022년 5.1% 2023년 3.6% 2024년 2.4%(OECD 전망)였다.
2022년과 2023년 임금 증가율이 물가 상승률을 밑돌면서 실질임금이 줄었다. 그런데 올해 예상 물가 상승률은 2020년 이후 가장 낮다. 인력 구조조정이 없다면, 올해 연간 기준 실질임금은 올라가고 이는 내수에 도움을 줄 게 분명하다. 그런데, 대기업들이 줄줄이 희망퇴직을 발표했다. 임금근로자가 사실상 해고되면, 1인당 평균 실질임금이 늘더라도 소비와 내수로 이어질 수 없다.
희망퇴직이 매년 반복되는 상수로 자리를 잡으면서 근속연수가 늘어도 임금은 예전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평균 근속연수는 2004년 5.9년에서 2014년 6.0년, 2022년 7.2년으로 길어졌지만, 근속에 따른 임금 증가율은 오히려 줄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9년 발표한 '기업성과, 생산성, 인구변동이 임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자가 20년 근무 시 1990년엔 임금이 평균 84.0% 증가했고, 2008년엔 평균 92.7% 늘었다. 하지만 2018년엔 70.2% 증가하는 데 그쳤다. 보고서는 "근속에 따른 보상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어 평균 임금 증가율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한다"고 결론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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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만든 독과점의 폐해=그렇다면 기업은 어떻게 고용과 임금의 주도권을 쥘 수 있었을까. 답은 우리가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정부가 수출 대기업 위주 경제정책을 유지하면서 특정 대기업들의 시장지배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학계는 기업의 시장지배력이 커지면 노동시장에서의 수요독점력으로 이어지면서 고용과 임금 모두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노동연구원 보고서는 "시장에서 가격결정력이 크고, 저임금 저숙련자가 많은 기업일수록 시장지배력이 커지면 임금에 부정적인 효과를 준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산업계의 '재벌 쏠림'은 심화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규모기업집단(재벌)이 전체 제조업 출하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2020년 경제총조사 결과·45.9%)에 육박한다. 자산 기준 상위 5대 재벌그룹의 출하액 비중은 29.5%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에 빗대 따져보면 이해하기 쉽다. 지난해 우리나라 4대 그룹 매출은 명목 GDP의 40%를 넘어섰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4대 기업집단(재벌) 매출의 GDP 대비 비중은 2019년 38.4%, 2020년 37.8%, 2021년 40.8%, 2022년 44.4%, 2023년 40.8%로 증가 추세다. 범위를 더 넓혀보면, 지난해 GDP의 76.9%가 30개 재벌에서 나왔다.
미국 정부가 '시장 경쟁을 제한한다'며 반독점 소송을 제기한 기업들의 수치도 마찬가지다. 아마존 매출은 5750억 달러로 미국 GDP의 2%에도 못 미친다. 지난해 8월 인터넷 검색시장 반독점 소송에서 미 정부에 패소한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매출은 3073억 달러로 미국 GDP의 1%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 약탈적 양극화=수출 위주 대기업은 억울할 수 있다. 정부의 기대치를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300인 이상 기업의 월평균 실질임금이 2020년 이후 증가세를 띠고 있다. 대기업의 월평균 실질임금은 2020년 524만2000원에서 2021년 558만2000원, 2022년 592만2000, 2023년에는 607만1000원으로 급증했다.
고려아연 사태는 기업 유보금이 어디로 흐르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사진 |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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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대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은 갈수록 줄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대기업 일자리 비율은 2021년 기준 13.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 나라 평균인 32.2%의 절반도 안 된다. 미국의 대기업 일자리 비율은 57.6%, 일본은 40.9%, 영국도 46.4%다.
KDI 보고서처럼 사업체 기준으로 하지 않고, 통계청의 기업체 기준으로 해도 최근 몇 년간 32.0%에 불과하다. 통계청 사업체 수출 대기업들의 실적이 아무리 좋아도 내수와 민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다.
경제력 집중 문제는 임금에만 걸림돌이 되는 게 아니다. 대기업 이외의 모든 기업에 영향을 준다. 수출 대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이 고공행진하는 사이 납품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은 적자를 간신히 면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 재벌 총수 의결권=대외환경(고환율)과 정부 정책(세금감면 및 보조금) 덕분에 이익을 늘린 수출 대기업이 이를 직원들에게도 협력업체에도 나눠주지 않았다면, 그 이익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이 역시 기업의 시장지배력과 관련이 깊다.
기업들은 먼저 이익유보금을 늘렸다.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매출액 대비 사내유보금 비율인 유보율은 100대 기업이 2012년 46.7%에서 2021년 62.0%로 상승했고, 10대 기업은 같은 기간 53.4%에서 80.1%로 치솟았다. 사내유보금은 기업이 이익 중에서 주주에게 배당하지 않고 남은 돈으로 현찰, 부동산, 생산설비 등 형태로 존재한다.
사내유보금은 결국 재벌 총수의 의결권 확보에 쓰였다. 조덕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이 2018년 발표한 '기업집단을 중심으로 한 우리 경제의 자원배분 효율성 하락' 보고서는 "2011년 이후 우리 경제의 실질 GDP 성장률이 낮아진 이유는 대규모기업집단의 비효율적인 자원배분에 있다"면서 "대기업집단 소속 기업들이 다른 독립적 기업들보다 과도하게 많은 자본을 점유했고, 생산량 증가에 쓰여야 할 자본이 인적분할로 자본 투입 없는 총수(지배주주)의 의결권 확대 등에 쓰였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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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뒷받침하는 사례가 최근 논란의 도마에 오른 고려아연이다. 이 회사가 지난 10월 13일 회삿돈으로 자사주를 매입해 경영권을 지키겠다며 공개한 '고려아연 공개매수 설명자료'를 보면 기업 이익을 축적해 어디에 쓰는지 알 수 있다.
고려아연은 "자본시장법상 자사주 취득가액은 상법에 따라 이익배당을 할 수 있는 한도 이내여야 한다"며 "고려아연의 배당가능이익은 현재 6조원 이상 남아있다"고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 바로 이 6조9059억2512만8482원이 '세후 이익의 사내유보금'이다.
KDI는 2014년 발표한 '기업집단의 경제적 비중과 시장지배력'이란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기업집단(재벌) 문제는 재벌이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재벌 계열사가 다수 업종에 문어발식으로 진출하고, 계열사간 복잡한 지분 관계를 통해서 재벌 총수와 그 가족에게 소유가 집중돼 있으며, 그 결과 기업의 내부 견제 기능이 사실상 상실돼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약탈경제의 시작과 끝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 정부도 알고 국민도 알지만 '손대지 못하는' 성역聖域이기도 하다.
jeongyeon.han@thescoop.co.kr<저작권자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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